연일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국가 초유의 사태를 바라보며 100만에 가까운 국민이 정의와 공의를 외치며 비폭력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도 이 행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신도를 독려하여 동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집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종교지도자도 있으며 신도들에게 참여하지 말것을 종용하기도 합니다.
집회 참여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의문을 갖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아마도 이러한 의문을 갖는 이유는 성경의 일관성 있는 가르침, “정부에 순종하라”(롬 13:1-3; 벧전 2:13-14)는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부정과 부패가 하나님 보시기에 분명한 악이라고 판단하는 성도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 정부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순종의 대상을 “모든 권세”(롬 13:1)라고 말합니다. 위와 같은 논증은 하나님의 주권 밖에서 그분의 허락을 벗어난 정부가 세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서 단순히 순종할 것인지의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의심과 의혹을 낳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고 말씀합니다(롬 13:1).
그래서 우리는 지금 세워진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았다는 논증을 그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악한 바로 왕, 앗수르 왕, 바벨론 왕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처럼 세워진 모든 권세는 우리 눈에 선하든 악하든 하나님의 주권 아래 허락된,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라는데 이견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은 선을 이루십니다.
그렇다면 촛불집회 참여는 정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일까요? 대답을 찾기 위해 “모든 권세에 복종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사도 베드로는 바울과 동일한 의미로 이렇게 정부에 대한 명령을 줍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벧전 2:13)
현재 대한민국의 제도에 따르면 국민은 비폭력 시위를 할 수 있습니다. 촛불집회를 하기 위해 정부에 허가를 받고 경찰이 제한하는 선 안에서 움직이며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 국민의 주권을 가지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권세(정치지도자)가 하는 모든 것을 지지하라.” 혹은 “모든 권세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성경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헤롯의 범죄를 지적한 세례 요한이나 유대 종교지도자를 심히 책망했던 예수님을 변호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위에 세워진 권세와 그가 정한 모든 제도에 순종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래서 불법을 행하지 않는 선 안에서 현 정부가 범하는 불의에 대해 정의와 공의를 선포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정부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이와 같은 특권이 법적으로 보장 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많은 자유와 발언 기회를 얻고 있는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불의에 대해 정의와 공의를 외칠 기회가 더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촛불집회 참여 그 자체가 성경이 말하는 “정부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음의 사항을 고려해야 합니다.
1. 불의한 방법으로 불의를 지적할 수 없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집회 참여는 그리스도인이 지양해야 할 일입니다. 제도를 거스르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은 하나님이 정부를 세우신 목적과도 벗어나며 정부에 관련된 명령을 주신 것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현재 주어진 제도와 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방식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정의롭지 않다면 그가 외치는 정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분노하여 불의한 정부의 심각한 부패에 비하면 자신들의 불법은 별것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불법을 정부의 불법과 비교하여 정당화합니다. 또 많은 분노한 국민이 이를 두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작은 불의도 하나님 앞에 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딤후 2:19)
2. 정의를 외치고 있는지 확인하라
수많은 군중이 모인 곳에는 군중심리가 있습니다. 올바른 것을 외치기 위해 모였지만 때론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것을 군중이 원할 수 있습니다.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집회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집회를 통해 선포되는 정의와 공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동의할 수 있는 메시지와 동의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분별해보십시오. 군중에 휩쓸리지 말고 군중 가운데 굳게 서서 분명한 정의를 외치십시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3. 죄와 싸우라
올바른 분별은 잘못된 판단으로 변하기 쉽고 죄를 지적하는 것이 정죄가 되기 쉽습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외침이 교만하고 부도덕한 아우성으로 변질 되기 쉽습니다. 더러운 말을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여 은혜를 끼치십시오(엡 4:29). 의에 굶주리고 불의에 공분할 수 있지만, 정욕에 따른 분노와 다툼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는 자가 되십시오(딤전 2:8).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 또한 죄인입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기억하십시오(약 4:12). 믿지 않는 자들은 집회 가운데 여러 가지 죄를 범할 수 있고 타고난 본성에 따라(전적타락) 죄를 범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바른 동기와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국법 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 12:4)
4. 복음을 품으라
예전에 어떤 분이 대통령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큰 악을 범했기 때문에 구원의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솔직히 대통령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지는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 죄인을 위해서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사랑의 깊이와 너비와 길이는 우리의 좁은 생각을 초월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심겨 영생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복음의 향기를 나타내야 합니다. 집회에서 들고 있어야 할 것은 촛불만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타락한 정치지도자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분노한 시민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침몰해가는 세상의 참된 소망입니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회의 유일한 빛입니다. 어떤 분이 현 세상에 정의와 공의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면 이 땅에 세워지는 정의와 공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5. 기도하라
기도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나라와 뜻과 의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촛불집회는 정부와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려는 목적을 갖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더 많은 힘과 영향력을 얻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거나 소용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때론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나 모습과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라와 뜻과 의를 이 땅에 세워나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은 내가 원하는 것과 바라는 바를 외치고 있더라도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품어야 하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그리스도인 가운데 어떤 이들은 촛불집회 참여에 대해 꺼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양심에 이것이 정부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정치 지도자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정부에 대한 반역이나 반란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성경이 합법적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일까지 막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물론 비판의 내용과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이나 참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나 서로를 판단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참여하지 않는 자를 소극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며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에 방관하고 있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여하는 사람을 정부에 대항하는 범법자 취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상의 음식을 먹는 양심의 문제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속한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주의 영광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단지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만 한다고 해서 소극적이고 방관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할 권리는 없습니다. 반대로 정의와 공의를 세상에 선포하기 위해 겸손과 온유로 옷입고 가슴에 복음을 품고 죄와 싸우는 성도를 범죄자 취급할 권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과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합시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한다면 위에 언급한 사항을 기억하십시오. 불법과 죄에서 떠나십시오. 외치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십시오. 복음을 들고 나가십시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죄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사랑이 밝게 빛나기를 기도합니다. 걸어가는 발걸음마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섬김의 흔적이 남기를 원합니다. 외치는 큰 목소리에 하나님의 나라와 뜻에 대한 열정이 담겨 있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어두운 이 세상에 밝게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