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정치적 관심이 급증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정치적 견해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기독교인도 다수 포함되며 기독교 단체에서 시국선언을 하면서 거리에서 외치는 구호를 그대로 기독교 단체의 선언으로 삼기도 합니다. 교회를 인도하고 섬기는 목사들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견해를 말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냐 싶겠지만, 목사가 한 교회를 이루는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한 교회 안에서 모두가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 가운데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진보적 성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정치적 발언을 할 때 몇 가지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발언의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반발을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역으로 목사의 지지를 얻은 쪽에서는 목사의 개인적인 견해를 성경이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반대성향에 대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아닌 세상의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지나치게 자주한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먼저 구해야 할 그 나라와 의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내지는 ‘목사의 정치적 견해를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딤전 2:2).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종하라고 말합니다(벧전 2:13-14). 세금을 내고(롬 13:6),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요구합니다(롬 13:7).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지만 이 땅에 하나님이 당신의 도구로 세우신 권세 역시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로 순종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롬 13:1-3).

국가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어떤 제도에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존경의 표현인가 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언과 지혜로운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목사는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할 수도 있고 이런 면에서 정치와 관련된 조언을 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정치 사회 구조와 틀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는 것이 양들을 먹이고 돌봐야 하는 목사의 임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 발언으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피하면서 성도가 살아가는 정치 사회 구조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도 편향된 정치적 발언으로 흐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원리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1.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요 18:36)

교회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온전히 임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정부가 세워진다 해도 하나님 나라에는 조금의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많은 제국이 세워졌다 무너지기를 반복하였고 열방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역사가 반복되었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당신의 나라는 단 한 차례도 무너지거나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획은 틀어지거나 무산되거나 수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하셨듯이 당신의 나라를 세워가실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아왔던 믿음의 선배들처럼(히 11:13), 하늘에 있는 시민권을 기억하며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이 바로 교회입니다(빌 3:20).

그래서 목사는 성도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힘쓸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들이 속한 곳은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땅이 조금만 노력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어떤 정책이나 선택을 하면 하나님 나라가 큰 타격을 입을 것처럼 선동해서는 안 됩니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이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면 흔들수록 견고하고 온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말해야 합니다. 모든 생각과 관심이 이 세상의 것에 집중될수록 우선순위를 바로 잡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2.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해야 합니다(신 4:8)

종종 목사가 ‘정부에 순종하라’는 말씀을 단순하게 해석해서 현 정부의 모든 불의와 부패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지지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성애나 낙태 등 특정한 죄에 대해서만 성경이 말하는 불의라고 생각하고 불평등, 차별, 억압, 착취, 부정, 부패에 대해서는 간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둘 다 불의라고 말합니다. 팀 켈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양대 정당 역시 상호 배타적인 두 갈래 관심사 가운데 어느 한 쪽에 토대를 두고 있다. 보수진영은 개인 윤리를 으뜸으로 생각하며 특히 전통적인 성도덕과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는 자세의 중요성에 강세를 두는 한편, 인종차별이나 사회적 불평등 따위의 이슈에 대해 진보 진영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진보 진영은 사회정의를 소중하게 여기며 보수 쪽에서 떠받드는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게 대부분 가식덩어리여서 정신적으로 해롭다고 주장한다. 물론, 양측은 서로를 독선적이며 잘난 체한다고 비난한다…

미국의 교회들은, 예수님과 선지자들의 사상보다 주변 정치 문화의 지배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수적인 교회들은 몇 가지 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반면, 진보적인 교회들은 또 다른 허물에 집중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 또한 윤리를 두 분야로 쪼개 생각하지 않으셨다…성경은 성적인 부도덕과 물질적인 이기심을, 하나님 아닌 자기 위주의 마음가짐에서 흘러나온 두 갈래 흐름으로 본다(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 97-8pp).

둘 다 하나님 앞에 회개가 필요한 죄며 해결책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교회가 외쳐야 할 정의는 죄에 차별을 두지 않고 교회가 외쳐야 할 은혜는 죄인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성경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의 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기준으로 성도들에게 무엇이 불의인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난이나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을 간구하는 마음과 같은 죄의 문제를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자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언제나 불의에 대한 언급은 회개의 길을 지나 은혜를 만나는 장소로 인도하는 안내가 돼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벧전 3:14-15)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의 정치 구조는 시민의 고통을 낳습니다. 시민의 노력으로 조금 더 괜찮은 사회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수고와 고통과 슬픔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를 고통받는 때라고 말합니다(딤후 3:1). 그 고통 속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는 신앙 자체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지만 동시에 세상이 겪는 고통에 흔들리지 않는 소망으로 견고하고 기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소망 없는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됩니다(벧전 3:14-15). 다른 말로 하면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이 세상에 참 소망을 말해줄 수 있습니다(마 5:14).

목사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소망을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고통받는 이웃에게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지금 위기의 시국 속에서도 성도가 가지고 있는 소망이 왜 현실을 압도하는지 상기시켜 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지극히 풍성하심이 모든 고통받는 자들의 참 소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웃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소망을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기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침몰하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멸망을 눈앞에 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해줘야 합니다.

 목사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시민들에게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닙니다(그래서 역할도 정치인이 아니고 정치인으로서의 능력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사를 세우신 이유는 사도들과 사도가 세운 제자들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말씀으로 양들을 돌보고 먹이고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 발언은 단순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경을 기준으로 죄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 앞에 죄인지 밝히 말하고 그 기준을 보면서 세상도 그리스도인도 회개하고 날마다 은혜의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목사는 성경을 기준으로 은혜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경험하도록 돕고 그 소망의 기쁨으로 어두운 세상에 참 빛으로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는 성도가 그들이 속한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도록 돕고 현재 모든 상황이 하나님 나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이 세상도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어두운 시국 가운데 성도들이 살아가는 정치 사회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왕을 기쁘게 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일에 저는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특정 정치인이 사퇴해야 한다거나 어떤 정책은 무산돼야 한다는 발언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목사로서 주님께서 세우신 목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정치 발언, 하나님의 공의로 죄인을 회개로 인도하는 정치 발언, 복음의 소망을 나누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 정치 발언, 그런 정치 발언은 목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정치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