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관계는 무엇인가?
칭의와 성화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언약주의와 세대주의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한 분이시면서 동시에 세 분이신가?
하나님은 성경을 어떻게 영감으로 기록하셨는가?
성경을 평생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어렵고 명확한 해답을 내기도 쉽지 않은 교리들을 공부하는 것이 신학이라면 모든 성도가 이 복잡하고 어려운 신학을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개혁 신학 대학(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교수인 존 M. 프레임은 신학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형태의 성경의 가르침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을 다룰 정도로 충분히 포괄적인 유일한 용어는 바로 적용이다. 성경을 적용하는 것은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고, 질문에 답하며,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다. 성경 텍스트, 성경 번역, 해석, 윤리학, 신자의 성장에 관한 질문들은 모두 신학에 필요하다. 성경이 어떻게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해결하는 가를 보여주는 것이(말씀으로 혹은 행동으로) 성경을 적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신학에 대해 더 개선된 정의를 내린다.
즉 신학은 신자들이 성경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성경에 더하여 신학이 필요한가? 나는 유일한 대답은 ‘우리가 성경을 적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존 M. 프레임, “성경론”, 416p).
성경에 신학을 더한다는 말이 부담스럽고 불쾌할 수 있습니다. 뭔가 성경의 내용이 아닌 것을 더한다는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우리가 세대주의라는 신학을 가르친다고 하여 그것이 성경의 내용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종말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을 연구하여 세대주의라는 신학의 틀을 갖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삼위일체라는 신학 용어 역시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분명 삼위일체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존 프레임의 개선된 정의에 동의합니다. 신학은 신자들이 성경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론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중병에 걸려 곧 죽게 되었다면 말입니다. 혹은 성도의 자녀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 당신에게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은 내 아이가 죽게 될 것을 모르셨는가?”라고 묻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그 성도를 위로하시겠습니까?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이기에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성경의 가르침이 실제 삶에 적용되는 지점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개방적 유신론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도 그런 끔찍한 상황을 미처 알지 못하셨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든 사실을 알게 되신 하나님이 왜 전능하신 손길로 돕지 않으셨나?’라는 질문에 답하기 더 어렵게 만듭니다. 결론적으로는 하나님이 정말 사랑이신지 더 많은 의심과 불신을 갖게 합니다.
칭의와 성화의 구분이 뭐가 중요할까요? 내 자녀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데 삶은 정말 엉망입니다. 물론 영적인 갓난아기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것에 전혀 관심이 없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지루해하며 성경이나 찬송을 대하는 것을 너무 싫어합니다. 그래도 내 자녀가 구원 받은 것은 확실한데 성장이 없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칭의와 성화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따라 극단적인 경우 태어나 숨도 쉬지 않고 먹지도 않은채 수년을 지내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지옥행 인생을 사는 자녀에게 영생이 있다고 잘못 확신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성경의 종말론을 어떻게 믿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는 날을 기다리며 주가 하신 명령에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미래와 소망의 모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왜 틀렸습니까? 신천지는 왜 거짓이죠? 모르몬교도나 이슬람교도는 왜 잘못된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까?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며 성령님의 역사를 갈망하는데 말입니다. 똑같이 성경을 거룩한 책으로 보는데 말입니다. 여러 다른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거절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의 관계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제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주의 계열의 기독교 내에도 성경의 영감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오직 영적, 종교적 영역에서만 성경이 옳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잘못 계시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 저자의 실수와 잘못이 성경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가르칩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을 보는 데 있어서 많은 제한이 따라올 것입니다. 영감에 대한 이해는 성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모두 같은 의미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적 용어를 모든 성도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언약주의, 세대주의, 개방적 유신론, 창조론적 유신론 등의 용어를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내 삶에 적용해 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방식입니다(벧후 3:18). 날마다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는 과정입니다(벧전 2:2).
국가적인 비극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과 다 이해할 수 없는 선하신 뜻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로 두려움을 몰아내고 헛된 염려와 근심을 없앨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학생들과 청년들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참된 하나님을 변호할 수 있어야 하고 성경을 일부분만 진리로 수용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성경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가 신학 용어를 알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신학을 알아야 할까요? 네, 그렇습니다. 모든 성도가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인 신학을 적용하여 살기 위해서 신학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 원합니다.
모든 성도는 결국 자신의 신학대로 살아갑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자신이 알고 있는 종말에 대한 교리, 자신이 알고 있는 교회에 대한 가르침…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학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신학을 알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무색합니다. 이미 그들은 알고 있는 신학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질문을 바꾸는 것이 옳습니다.
모든 성도가 바른 신학을 알아야 할까?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바른 신학을 알기 위해 성경을 제대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계적으로 신실하게 연구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성경이 그러한가 상고하면서 좋은 책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자매님은 신학적 용어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삶에서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허락하셔서 자신에게 그 일을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선하신 뜻을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간혹 올라오는 염려와 근심, 불신과 원망을 몰아내었습니다. 오히려 같은 어려움에 빠진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자매님은 비록 신학적 용어를 알지 못했지만 바른 신학을 알고 있었고 그 신학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가 바른 신학을 알아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 가르쳐야 하고 배워야 합니다(마 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