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리는 광복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 아래 식민지로 거의 36년을 사로잡혀 있다가 대한민국의 주권을 되찾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수많은 조국의 위인들이 민족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희생과 수고와 헌신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날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역사에 큰 관심이 없고 배울 기회가 적었던 공인들의 무지에서 흘러나온 발언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이러한 광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게 완전히 주권을 빼앗기고 노예민족으로 약 400년의 학대를 당합니다. 그들에게 광복의 날이 찾아왔는데 이는 그들의 반란이나 독립운동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기억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능한 팔을 펴셔서 애굽에 그분의 권능을 보이시고 자기 백성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구출하여 지배국가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광복의 날을 잊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단지 잊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2-13)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신 5:15)

하지만 광야에서 그들은 이 놀라운 역사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되찾은 자유보다 물과 고기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을 독립할 수 있게 한 하나님 대신 그들을 지배하던 국가가 섬기던 황소를 빚어 그들의 신이라 불렀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날을 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들의 광복의 주인공 대신 원수의 신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역사적 사건은 신약성경을 통해 완전히 성취된 영적인 광복을 그림자처럼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더 본질적인 실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광복의 역사를 신약성경을 통해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소수민족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창세부터 종말까지의 모든 인류에게 있어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저주를 받아 죄의 노예로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학대를 받아온 인류가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와 사망에서 완전히 놓임을 받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모든 백성에게 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광복의 날입니다. 일시적인 국가의 회복이 아니라 영원한 주권의 온전한 회복을 이루어 낸 날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이날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5-26)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딤후 2:8)

문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잊는다는 것입니다. 물과 고기 때문에 구원의 가치를 잊어버린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내 앞의 염려와 걱정으로 영원한 구원의 가치를 간과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보다 내 마음에 간절히 원하는 탐심, 인기, 명예, 부, 쾌락, 욕심, 방탕을 섬기기 원합니다. 우리가 바로 이것들의 지배 아래서 벗어났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황소처럼 우리 마음 중심에 세워두고 섬기려 합니다. 우리의 광복을 이루어낸 구원자보다는 우리를 지배한 것들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어쩌다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하지만 뭐든 잊어버릴 수 있다고 해서 뭐든 잊어버려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항상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위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처럼, 광복의 그 날을 잊지 말아야 하고 지금 누리고 있는 주권의 고귀한 가치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처럼, 주를 통해 죄에서 건짐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광복의 역사입니다. 우리 안에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주권의 가치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결코 이것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몇 주 전 저는 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분은 처음 구원받았을 때를 기쁨으로 이야기하다가 요즘은 어떻냐는 질문에 “뭐, 아시잖아요. 처음엔 뜨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예전만 못하고 식어버리는 거…”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한 신앙. 우리는 오래된 그리스도인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 미지근해질까요? 왜 식어버릴까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광복의 가치, 하늘나라 주권의 의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이 딱 이 정도라 그럴까요? 충분히 잊혀지고 별 볼 일 없어질 수 있는 정도라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미지근해지는 것은 우리가 어느새 기억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잊어버린 채 무감각하게 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불을 지피는 물은 끓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불을 줄이거나 끄면 물은 미지근해지기 마련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신약성경의 저자들이나 누가가 사도행전을 통해 묘사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점점 더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그들의 구원을 날마다 기억하고 그들의 구원자를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끓는 신앙,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해방을 맛본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여, 우리는 왜 그날의 의미를 잊고 사는 것입니까? 왜 우리 구원의 놀라운 가치를 기억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를 옭아매고 박해하던 죄와 탐욕을 도로 섬기고 있습니까? 

잊지 맙시다. 잊지 맙시다. 절대로 잊지 맙시다. 그 날의 의미를…

기억합시다. 기억합시다. 항상 기억합시다. 우리의 구원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