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리우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평화를 주제로 한 전 세계의 축제라고 합니다. 원래 올림픽이 대한민국 국민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휴가철에 열대야까지 겹치면서 시차를 극복하고 많은 분이 시청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도 몇몇 경기를 지켜보았습니다.

다른 나라끼리 경쟁하는 경기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대한민국 대표팀이나 대표선수가 하는 경기는 왜 그리 긴장되고 떨리는지 모릅니다. 많은 기대를 하기도 하고 응원하며 승리를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아마도 당연한 일이며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습니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실망이 분노가 되기도 하고 원망이나 판단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당연하고 그럴 수도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당연하니까 내버려 두어도 괜찮은 그럴 수도 있는 죄는 없습니다. 

스포츠를 보면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지만, 그 시간이 우리가 죄를 낳는 시간이라면 그렇게 만드는 생각이나 태도, 반응을 고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포츠를 보는 그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경주를 하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1. 결과를 인정하라

좋아하는 팀이 졌을 때 우리 마음에는 분노가 생깁니다. 결과에 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진짜 오심이 생기기도 하고 억울한 부분도 경기 중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재심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체로 우리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에게 더 기울어집니다. 상대방을 책잡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특별히 경기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를 때, 우리는 승패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사실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인데 실제 경기장에서 바로 승패에 굴복하며 예의를 다하는 선수를 지켜보면서도 결과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잠 20:24)

패배했지만 그 결과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며 영광을 돌리는 선수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지켜보는 사람도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합당한 반응입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분노하지 말라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판단의 문제입니다. 상대팀이나 선수를 판단하고 비방하게 됩니다. 또한 이상한 반응인데 오히려 내가 응원했던 사람에 대한 판단과 정죄가 시작됩니다. 이것이 악화되면 비방까지 이릅니다. 시합 자체에 대한 평가에서 시작해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고 그것에 대한 정죄로 깊어지면서 그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 25:28)

사실 안타까운 마음과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잘 제어하지 않으면 성벽이 없는 성처럼 분노와 원망과 다양한 종류의 악독이 내 마음속으로 쉽게 침투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저는 이러한 유혹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4년 동안 매일 짜여진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철저하게 절제된 삶으로 준비해온 선수들을 아주 잠시 마음을 쏟아 지켜본 것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를 냈다는 이유로 실망감을 넘어 분노와 비방으로 쏟아 내는 것은 내가 얼마나 악한지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분노로 가득 찬 가인에게 죄악된 마음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분노와 원망, 여러 종류의 악독한 마음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다스립시다. 강한 기대와 소망이 사라진 공허함과 실망감을 다스리는 법을 배웁시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 12:16)

 

3. 하나님을 경외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아마 어떤 분은 ‘스포츠 경기를 보는데 뭐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 많은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매사에 이렇게 영적인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가?’ 사실 이렇게 현실과 신앙을 구분하려는 현상을 우리가 “세속화”라고 합니다. 스포츠는 스포츠에 불과하지 하나님과는 특별히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과 신앙을 철저히 분리하여 신앙은 종교적인 삶의 영역이고 나머지는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지혜와 훈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근본으로 두고 있습니다. 조금 풀어서 신약과 연결시키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관계 없는 삶의 영역은 없다는 말입니다.

스포츠를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을까요? 사랑할 수 있을까요? 먼저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분노와 악독함을 다스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구속사”와 게할더스 보스가 쓴 “성경신학”을 읽으면서 성경 전체가 그려내는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창조부터 구속, 구속부터 영생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신실하게 일하십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추구하며 드높입니다.

스포츠를 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 주신 능력을 어디까지 발휘할 수 있는지 지켜보면서 그분의 능력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을 극대화합니다.

질서와 규칙에 맞게 정직하게 경쟁하며 경기 후 예의를 다하는 사람의 정신과 인격을 보면서 그 형상의 원본이 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스포츠맨십이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넘어진 선수를 일으키고 격려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은 모습입니다.

반대로 경기 중에 일어나는 의도적인 반칙이나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죄를 보며 우리의 영적 상태를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를 발견하며 그분을 경외하게 됩니다.

노력, 절제, 도전, 경쟁, 그리고 보상. 스포츠는 성경에서 우리 신자들의 구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고전 9:25). 이는 우리의 영적 보상을 기대하게 하고 심판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경기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도 경기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려갈 경주를 다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되는 그 날까지 우리는 경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주는 삶의 전 영역을 주 종목으로 삼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규칙입니다. 

저는 이번 유도 경기에서 아주 좋은 경기를 보여준 안바울 선수를 보면서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승리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모습을 보았고 패배했을 때 그 실망감과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잘 다스리고 결과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감사하며 기쁨으로 메달을 받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는 그리스도인도 마땅히 그와 같이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 경기를 위해 절제하며 혹독한 프로그램을 거치지도 않았고 많은 땀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그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한 젊은 그리스도인이 그토록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기에 열심히 임한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얼마나 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우리 마음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그분을 경외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