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Colin Marshall과 Tony Payne이 쓴 <The Trellis and the Vine: The Ministry Mind-Shift that Changes Everything>라는 책 4과 “Is every Christian a vine-worker?”의 내용을 읽고 참고하여 쓴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말씀 사역자라고 하면 교회 전체의 모임에서 가르치는 목사와 교사를 떠올립니다. 조금 더 광범위하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서 여러 교사들, 즉 주일학교, 학생회, 청년회 교사, 성경공부 교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직접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만 해당사항이 있을 것입니다. 가령 주일학교 교사이지만 설교를 하지 않거나, 분반에서 가르치지 않는 경우는 “말씀 사역자”의 큰 범주 안에 들어가지 않는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도록 은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8-11)

따라서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말씀을 공급하도록 세우신 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고 돌볼 것을 명하신 주님은(요 21:15-17), 제자들에게 자신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하셨고(마 28:20), 제자들은 그들의 제자들에게 이 사명을 넘겨주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음을 알고 디모데에게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엄히 명한 것은 바로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딤후 4:2).

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 사역자”를 세우셨다고 하여 그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성도는 “말씀 사역”과 관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늘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습니다. 몇몇 소수의 교사와 목사를 제외한 나머지 성도들은 그 사역을 돕기 위한 봉사만 하고, 말씀을 전하는 사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모든 성도가 어떤 측면에서 볼 때 모두 다 “말씀 사역자”라는 말입니다. 다음의 말씀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1) 위에서 살펴본 에베소서 4:11-12에서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 사도와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세우셨다고 말씀하셨고, 그 목적에 대하여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밑으로 내려와서 15-16절을 보면 온전하게 세워져가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해야하는 여러 가지 봉사의 일 가운데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합니다. 영어는 보다 명확한데, “Instead, speaking the truth in love”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사랑으로 해야할 것이 막연하고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자들이 성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고 돌보는 것처럼, 그 돌봄 가운데 자라나는 성도들 역시 서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서로를 세워줍니다. 16절은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의 연합과 사랑의 섬김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성도가 각각 받은 은사와 그 분량이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는 명령을 부여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몸을 자라게 하고 스스로 세우는 것입니다. 모두가 “참된 것” 혹은 “진리”를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두가 “말씀 사역자”입니다.

2) 에베소서 5장을 보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18절)고 명령한 후, 성도가 서로 서로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19-21절)고 명합니다. 이 일은 성도가 서로에게 하는 일이며(“서로 화답”), 대부분 말로 하는 일입니다(시, 찬송, 노래, 감사). “화답하라”(speaking)는 단어가 강조하는 것 역시 말로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서로서로에게 말해야 합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말입니다.

3) 에베소서 5장의 내용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가정에 적용되는데,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5:26-28). 또한 아버지는 자녀를 훈계하되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엡 6:4). 아내와 자녀를 섬기는 도구는 다름아닌 “말씀”(주의 교훈, 주의 훈계)입니다. 성도는 서로 아름다운 찬송과 감사로 화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가정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주의 말씀을 통하여 섬깁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성도는 “말씀 사역자”입니다.

4) 골로새서 3:16에서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간구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성도가 서로 가르치거나 권면할때(조언할때), 시와 찬송과 노래, 감사할 때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조언할 때 말씀에 풍성하게 거하며 한다는 것, 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권면할 때 역시 “말씀 사역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 로마서 15:14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로마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바울은 형제들이 서로 권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있는 능력은 그들에게 풍성한 지식때문이라고 말합니다.

6) 히브리서 3:12-13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죄의 유혹에 떨어지려는 형제를 피차 권면하여 붙들어주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오직 소수의 일꾼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피차”에게 주어진 것으로 성도는 내 지체가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권면해야 하고,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어진 영혼을 일깨워 줄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하는 “말씀 사역”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회중이 함께 모일 때 우리는 마치 콘서트장에 온 사람처럼 혹은 강연을 듣기 위해 온 사람처럼 수동적으로 임하기 쉽습니다. 물론 설교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성경 공부 시간을 통해 말씀을 배우는 것이 덜 중요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말씀 사역은 아닙니다. 소수의 일꾼들만이 말씀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함께 모일 때 서로가 서로에게 말씀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권면할 때, 조언할 때, 위로할 때, 격려할 때, 교훈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풍성히 거하여 그에 따른 모든 지식을 가지고 사랑의 태도로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서로를 섬깁니다. 서로를 세워줍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모두는 “말씀 사역자”입니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 우리 입술을 열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를 섬깁니다.

우리의 말은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로 서로를 세워주는 역할을 하는 “말씀 사역자”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가져다 줍니다.

1. 우리의 사명과 부르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처음에 사도들에게 주어진 명령있었던 지상 대위임령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신자는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아 모든 사람을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주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제자를 삼는 자”들이 해야 할 보편적인 사명입니다. 이 놀라운 특권과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2. 우리가 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진리를 말하는지, 말씀에 입각하여 권하고 격려하고 있는지 혹은 성경과 반대되는 세상의 사고와 사상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분별해 봐야 합니다. 설교시간에 성경 본문을 엉뚱하게 해석하여 말도 안되는 설교를 한다면 모두에게 유익보다는 해가 될 것입니다. 그 설교자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 모두에게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를 격려하고 권면하는 것이 또 다른 측면의 “말씀 사역”이라면 말하는 것을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내 말을 듣는 성도에게 유익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기준은 사랑이라는 태도와 진리라는 말의 내용입니다.

3.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지고 말하려면 그분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하며, 그것을 지키는 자로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거할 수 있도록 우리는 주야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콜린 마샬과 토니 페인은 구체적인 예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이 예시를 소개하면서 이 칼럼을 마칩니다.

1) 빌은 교회를 마치고 조지와 그날 들은 말씀을 서로 나누면서 그 날 말씀이 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과 격려가 되었는지 나누었습니다.

2) 앨리슨은 자기 친구 데비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데비는 여러 가지 염려로 문제를 겪는 중이었고 그래서 교회를 몇 주동안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앨리슨은 데비를 격려하는 편지를 쓰면서 말씀 몇 구절을 함께 적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데비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3) 워렌은 자신의 친구 여섯명과 함께 짐의 집에서 열리는 구역집회에 매주 참석하였습니다. 워렌은 구역집회 참석 전에 함께 공부할 성경 구절을 미리 읽어보고 묵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구역집회에서 함께 토론할 때 구역 사람들에게 진실한 말과 격려가 되는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4) 아이린은 나이가 너무 많아 집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린은 그녀의 친구 진에게 이틀에 한 번 전화하여 자신이 아침에 읽은 말씀을 묵상한 것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5) 클래어는 그녀의 친구 쉬얼리를 위해 몇 달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친구를 복음 집회에 초대하였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클래어는 쉬얼리에게 들은 말씀 내용이 어땠는지 묻고 그녀가 던지는 여러 가지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6) 필의 교회에서는 주일 집회 중 몇분을 할애하여 성도들의 간증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주에는 필의 차례였습니다. 그는 에베소서 5장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정을 어떻게 아름답게 바꾸셨는지 나누기 위해 준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