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한일서 2:27)
 
이 구절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구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이러한 적용이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다른 책을 참고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성령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신학교를 갈 필요가 없다!”
 
이러한 해석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교사가 되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니 인간교사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말씀 구절만 읽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데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맥락을 무시한 성경읽기는 해석학적 우상숭배”라는 말이 있듯이 성경은 반드시 그 문맥 안에서 제대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말씀은 절대로 신학대학이나 주석, 성경교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가르침을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을 근거로 이야기 해봅시다.
 
첫째, 사도요한 스스로가 자신의 서신서(요한일서)를 통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라고 기록한 요한이 서신서를 통해 어떤 것이 그리스도의 도인지, 그리스도인의 삶인지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가 모든 인간 교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라면 사도요한은 스스로 자신이 지적한 부정적인 일들을 자신의 서신서를 통하여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사도바울은 자신의 서신서들을 통하여 “교사”의 은사에 대하여 계속해서 강조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28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교사들을 직접 세우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6절을 통해 바울은 교사의 은사를 가진 자들이 교회의 모임에서 계속해서 그 은사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바울은 잘 가르치는 자를 교회의 일꾼으로 삼을 것을 명령하고 있으며 (딤전 3:2) 디모데 자신도 교사로서 교회에서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라고 강력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딤후 4:1-2). 만약 사도요한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가 모든 인간교사를 불필요한 것으로 보는 것이라면 사도바울이 계속해서 강조한 교사의 은사와 가르침의 중요성등은 사도요한의 가르침과 모순이 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 28:20).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그것을 새신자에게 가르치는 것은 모든 신자가 순종해야하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만약 사도요한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를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니 인간 교사는 불필요하다”고 해석한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명령과 모순되는 것입니다.
 
넷째, 사도요한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를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니 인간교사, 책, 주석, 신학교는 불필요하다”고 해석하는 것은
말씀을 조명하여 주시는 성령님의 역할에 대한 일관성 없는 해석에서 비롯됩니다.
 
주석이나 신학교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인간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때 순전히 성령님의 도움으로 나는 그것을 깨닫지만 책이나 학교의 도움을 받으면 인간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가 바로 이러한 주장에 뒷받침 구절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말씀을 보이시고 깨닫게 하시며 조명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석을 기록한 성실한 형제에게는 조명하지 않으셨을까요?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를 신실하게 믿는 교수들에게는 말씀을 깨닫게 하지 않으실까요?오로지 나 혼자 성경을 가지고 성령님의 힘만 의지하며 공부할때만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신가요?
 
주석이나 신학교를 다른 특별한 이유없이 인간적으로 치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성경만 가지고 성령의 힘을 빌어 공부하는 것은 더 순수하고 더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할에 대한 일관성 없는 해석입니다.
 
다섯째, 만약 사도요한의 가르침이 모든 인간교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라면, 교회의 모든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실한 교사들, 마틴 루터, 칼빈, 조나단 에드워드, 존 파이퍼, 존 맥아더, 윌리암 맥도날드 이러한 교사들의 성실한 삶의 의미가 무색해질 것입니다.
 
사도요한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가 인간교사의 불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뜻일까요?
 
문맥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도요한은 26절에 27절을 기록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사도요한은 성도들을 위협하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우리는 사도요한이 여러번 같은 경고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2:18-19; 3:7; 4:1-3; 5:10-12).
 
그들은 거짓교사요 성도들을 미혹하여 진리를 벗어나게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22절을 보면, 이 거짓교사들은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요한은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그들이 처음에 들었던 진리에 거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요한은 거짓교사들이 예수에 대하여 새로운 교리를 가지고 올지라도 그것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그들이 처음 들었던 그 진리 가운데 거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도들은 거짓교사들을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의 가르침이 그리스도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그것이 27절의 내용입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일서 2:27)
 
“기름부음”은 성령을 가르킵니다. 요한은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에 대하여 같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와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처럼 요한의 서신서를 읽고 있는 성도들에게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요한은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라는 요한의 가르침도 예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철학, 과학, 역사학 등 모든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요한이 우려한 거짓교사들이 예수님의 진리와 다른 새로운 가르침을 가지고 온 것과 달리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들, 즉 처음부터 들어온 진리, 그것을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한번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
 
거짓 교사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거짓 가르침을 가지고 성도를 미혹하지만 성령께서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하시는 진리를 가지고 성도를 가르치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요한은 “기름부음,” 성령을 가르켜 참되고 거짓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 부르신 이유도 이에 있습니다.
 
이 문맥 안에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는 어떤 의미일까요? 요한의 서신서를 읽는 성도들에게 요한은 너희들이 처음부터 들었던 참된 진리 그 진리에 대하여 성령께서 너희 안에 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며 진리를 가르치시니 그 어떤 사람이 와서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주어도 그 거짓에 속지 말라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참된 진리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아무도 너희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라는 의미로 이 구절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의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는 절대로 성경을 공부하는 여러가지 노력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지지하는 구절이 아닙니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사도들이 전해준 교훈과 가르침 외의 다른 거짓 교리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 구절이 주는 참된 의미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1) 내 안에 살아 계셔서 나에게 그리스도의 참된 진리를 굳게 붙잡을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께 감사하는 것
2) 성경이 말하는 참된 그리스도와 그 말씀들과 교묘히 섞이어 성도를 미혹하는 여러가지 포스트모더니즘과 심리학, 번영신학, 기복신앙, 세상적 가치관들을 철저히 배척하는 것
3) 세상에서 여러가지 말씀해석과 설교와 가르침을 들을때, 과연 말씀이 그러한지 베뢰아 성도처럼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하여 말씀으로 재검증하는 것
 
사도요한의 말씀은 성도로 하여금 성령을 의지하며 인간적인 노력들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을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말씀을 연구하게 만들어줍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온전한 섭리로 되어지지만, 인간의 믿음이 요구되는 것처럼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이지만, 우리의 역할,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공부해야하는 역할을 게을리 하면서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심을 핑계삼아서는 안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