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로 “교회”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에클레시아의 의미는 “불러낸 무리(called-out ones)”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무리”로 부르셨습니다.
복수의 형제들, 자매들이 함께 한 몸을 이루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여러 군데서 이와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를 조화롭게 이루어진 한 건물로 묘사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로마서는 교회를 유기적인 조직인 한 몸에 비유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참고-고전 12:12-31)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모든 성도
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성도가 서로 짐을 지라고 명합니다.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골로새서에서도 아주 강하게 성도의 연합을 묘사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 2:19)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베드로 역시 모퉁이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로서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명합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이 외에도 우리는 서신서의 각 구절마다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연합하는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항상 교회에 대한 명령은 “너희,” “우리” 등 복수형을 사용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무리”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으셨지만,
우리를 “한 교회”로 사셨습니다(행 20:28).

그리스도는 우리 각 사람의 머리가 되시지만,
”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엡 5:23; 골 1:18).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구원하셨지만,
”교회”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벧전 2:9).

초대교회 성도들인 이와 같은 교회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교회의 원리를 아주 잘 드러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4:46)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입니다.

주일 교회에서 성도와 만나 잠시 교제하는 것으로
한 몸으로서 필요한 모든 교제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주중에 한 번도 다른 성도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서
마음에 아무런 부족함도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합니다.

아픈 지체, 어려운 지체, 영적으로 연약한 지체, 도움이 필요한 지체…
내 눈에 그 지체가 보이고, 내 귀에 그 지체에 대한 소식이 들려도,
실질적으로 내가 하는 행동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기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말세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딤후 3:1-2)

어떤 사람들은 성도를 돌아보는 책임이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물론 인도자들은 성도를 돌아볼 책임이 있습니다(히 13:17).
그러나 성경은 성도에게도 서로 도우라고 가르칩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11)

골로새서에서도 같은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히브리서 기자 역시 같은 가르침을 줍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성도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넘어질 때 누군가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갈급할 때 말씀으로 격려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릴 때 누군가가
우리가 서 있는 굳건한 진리로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앞날의 염려로 근심할 때
환경을 초월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과 산 소망을 상기시켜주며
기쁨을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떠나 미혹되려고 할 때
강력하게 경고하는 꾸짖음도 필요합니다.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거울 때
누군가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함께 울고 함께 즐거워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한 몸인 우리가 서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가 그렇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우리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 홀로 교회”인 것처럼 신앙생활을 합니다.
나 그리고 내 가정이 좋은 말씀으로 공급받고,
찬양과 예배시간에 만족하며
그 시간에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을 돌려드렸다면
신앙생활이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옆에 다른 가정이, 성도가 영적으로 연약하고, 미혹되는 것을 보면
왜 저럴까? 어떻게 저렇게 신앙생활을 할까? 판단하거나
비방하거나, 피하는 것이 참 쉬운 요즘의 신앙생활입니다.

나 그리고 내 가정에 피해를 주지 않게 해달라고
인도자에게 부탁하기도 합니다.

나 그리고 내 가정이 먼저 주님 앞에 바로 서는 것,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한 몸인 교회가 건강하려면 지체 하나 하나가 건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 그리고 내 가정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 옆에 다른 지체가 영적으로 병들어 가고,
심신이 지쳐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한 몸 된 교회 안에서 나도 병든 것입니다.
나도 지쳐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권면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내 손이 썩고 있는데 발인 나는 건강하니까…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서로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예수님이 남겨진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도하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7,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