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은 유평교회 청년회에서 현재 공부하고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Theology>
7번째 시간에 다루었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만큼 우리가 쉽게 잊어버리는 주제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진실로 안다면
우리가 평소에 하는 염려와 근심
불평과 두려움의 대부분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 만큼 그분의 사랑을 잘 표현하는 단어도 드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며
그 안에서 영원히 즐거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그분을 더 사랑하기 원할 것입니다.

 

“신실”이라는 단어의 뜻은 ‘믿음직하고 착실하다’(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직한 분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분은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계시며
진리이시고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는 특별한 대상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신실하신 분이시지만
또한 그 특별한 대상에게 신실하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대상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히브리어로 “신실하다”는 “헤세드”로
한글 성경에 주로 “사랑,” “인자하심”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영어로는 Steadfast love(변함 없는 사랑),
Unfailing love(실패 없는 사랑),
Covenant Faithfulness(언약에 신실하심)
Lovingkindness(자애)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창조 언약과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모세를 통해 맺으신 이스라엘과의 언약,
그리고 다윗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언약…

지금의 우리가 속해있는 새언약…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항상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관계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경의 가장 대표적인 네 가지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살펴봅시다.

이 언약의 체결 당사자인 하나님과 언약의 대상자를
주의 깊게 보시기 원합니다.

언약의 대상자들이 얼마나 불성실하고 나약한 죄인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얼마나 신실하신지
그 차이에서 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신을 섬기고 있던 아브라함을 일방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축복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이 언약의 대상자로서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은 이 언약의 대상자가 되었습니다(창 15:18).

그 이후 아브라함이 한 일을 보십시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여 자기 목숨을 부지합니다.

창세기 16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자기 자신이 하갈을 아내로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것이 가정의 문제가 됩니다.

창세기 20장에서는 또다시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이 얼마나 언약에 불충실한 모습입니까?
언약의 상대이신 하나님의 속성과 얼마나 거리가 먼 모습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크고 크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사라를 애굽의 바로에게서 건지십니다.

창세기 14장에서는 롯과 재물을 네 왕이 사로 잡아갔을 때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는 하갈과 이스마엘 사건이 있은 후에, 하나님은 언약을 파기 하지 않으시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창세기 20장에서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사라를 아비멜렉의 집에서 구하셨습니다.

창세기 21장에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2절)

모세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러 간 아브라함의 시종은 리브가의 부모를 만나
아브라함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봤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신실하게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는지도
다 지켜본 증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여호와가)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헤세드)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창 24:27)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넘어졌고 그는 언약에 불성실했으며, 그는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습니다.

 

자, 다음은 모세의 언약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하나님은 또 다시 당신의 사랑으로
지극히 작은 백성 이스라엘을 언약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신 7:6-9)

언약의 백성이 얼마나 불성실했는지 아마 다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열 가지 놀라운 재앙으로
애굽을 거의 망하게 하시기 까지 보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친히 맛본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들은 ‘우리가 매장지가 없어서 이곳까지 와서 죽어야 하겠냐’고 불평했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고 애굽 군대가 몰살되는 장면을 보며
찬송을 부르고 기뻐 뛰던 그들은
삼 일만에 마라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합니다(출 15장).

출애굽기 16장에서는 고기가 없어서 불평을,
17장에서는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32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율법을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 써주시는 그 때,
그들은 황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건진 신입니다”라고
엎드려 절합니다.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불평과 불신, 의심과 시험…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만약 이들과 언약을 맺은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파기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죄를 덮고도 남습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 모세는 애굽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모세가 황금 송아지를 섬기는 백성들 앞에서 첫 번째 돌판을 깨뜨리고
두번째 돌판을 받으러 올라 갔을때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 없이 넘어지고 실패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약에 충성스럽지도 않았고
언약의 상대인 하나님의 속성에 걸맞지 않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은 차고 넘쳤습니다.

 

세 번째로, 다윗의 언약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

다윗이 자신은 좋은 성전에 거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장막에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길 때
하나님은 그것을 좋게 보시고
다윗과 이 언약을 맺으십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예배할 때
하나님은 이 언약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셨습니다.

내가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하리라(대하 7:18)

예,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그 역시 하나님의 언약에 합당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살인자요 간음한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많은 아내와 첩을 누렸지만
남편이 있는 다른 여자를 범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충신 우리야를
전장 최전방에 배치시키라고 명하여 죽게 하였습니다.

나중에 요압이 우리야가 죽었다고 보고했을때
다윗이 ‘전쟁하다보면 그럴수도 있다’고 답장하는 장면은
다윗이 얼마나 죄로 물들어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자로 다윗은 합당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언약의 공동 수혜자인 다윗의 후손들은 어떻습니까?

솔로몬의 타락으로 시작하여 나라가 분열되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좋은 왕과 악한 왕이 반복되어 세워지나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타락의 길로 급격히 기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합, 여호람…계속해서 더 악한 왕들이 등장합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대하 21:7)

다윗은 여러 시편을 통해 그의 인생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합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헤세드)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시 5: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시 36:5)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대상자들로서
너무도 나약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불성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이 인자하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넘치고 넘쳤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믿는 우리가 속해 있는 새 언약을 살펴봅시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새언약은 이전의 모든 언약의 완성편입니다.

창조 언약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으며
새언약을 맺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여자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겠다고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모세 언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림자였습니다.

다윗 언약에서 약속된 영원히 다스리실 왕,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새 언약 가운데 이방인인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르십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

우리 중 누구도 이 언약에 합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었습니다.
약속도 없고 소망도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언약의 백성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자, 언약의 백성으로서 당신은 얼마나 신실하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옛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언약의 관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발견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반응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발견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계명을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신 6:5; 레 19:18).

새언약의 백성이 순종해야 할 명령도 같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19:19).

옛 아브라함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윗과 그 후손들처럼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실수합니다. 이 엄청난 사랑의 언약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속성에 반하는 죄를 반복적으로 범하기도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와 여전히 싸우는 중입니다.

우리의 언약의 상대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옛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에게처럼
여전히 변함없고 무궁합니다.

신약에서 “미쁘시다”(faithful)로 표현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새언약 가운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을 찬양합니다.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가(살후 3:3)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우리는 계속해서 죄를 짓지만
미쁘신 하나님은 새언약 가운데 신실하시어
자백할 때마다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으십니다.
용서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지만
미쁘신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시며
시험 가운데 피할 길을 신실하게 예비하십니다.

우리는 악과 시험에 대해 염려하고 근심하고
때론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고 불신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게 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빈약하고 불완전한 성화의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새언약 가운데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에
신실하게 역사하시어 반드시
이루어내십니다.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언약에 대한
당신의 신실하심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사 54:10)

이 놀라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기에 내 영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기에
내 영혼은 만족합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은 풍성하여 넘치고 또 넘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찬송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 143:8)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시 85:7)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에 관계없이
풍성하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그 사랑에
온 맘 다해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시 89:1)

범죄했을 때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구하여
담대하게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 51:1)

풍성한 주의 인자하심을 기억하며
그분의 사랑에 순종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11)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 인자는 무궁하시기에
우리는 영원히 그분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하십니다.
이전에도 그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신실하셨고,
지금도 신실하시며 이후에도 신실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영원 무궁하십니다.

그 긍휼을 맛본 자들은 순종으로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 인자와 긍휼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온전히
즐거워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