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하신 예수님께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
차라리 주(주인)라 부르지 말든지,
주라고 부른다면 그 말에 순종하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입술로는 주인님! 주인님! 하면서도
정작 주인이 말하는 것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참된 주인으로 영접한 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혹시 그들은 지식적으로 예수에 대해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종교적으로 여러 가지 예식에 참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인생에 예수님은 주인의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책망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대한 일인지 잘 보여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충격적이게도,
아무리 내가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어도,
사복음서를 외우고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에 능통해도,
조직신학과 여러 교리에 해박할지라도,
교회의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충성될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내 삶에 제대로 세워지지 않아
나의 삶의 주인이 여전히 나로 남아있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면
예수님 앞에 서게 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
이것은 단순히 하늘나라에 들어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영원한 형벌 가운데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극심한 심판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특징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인정과 그에 따른 순종입니다.
반대로, 교회를 얼마나 다녔든지, 직분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거짓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말들이 당신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면 조심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이 그렇다는 거 알지…그래도 세상 사는데 있어서는…”
“하나님 말씀은 이상적이야 누가 그것을 다 100% 지키겠나? 적당하게…”
“말씀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내 생각엔…”
“내 상황이 지금 말씀에 순종하기엔…”
“내 감정과 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씀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인과 종의 관계를 비유로 말씀하셨던 그 시대에는
주인의 말에 종은 아무런 토를 달 수 없으며, 즉각 순종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대명사이므로
그러한 관계를 요구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신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7-38)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신중하고 중대한 결정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적당한 삶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자기를 부인하라).
예수께서 자신의 보혈로 우리를 사셨습니다(고전 6:20; 7:23).
더 이상 “내 생각, 내 소유, 내 시간, 내 물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를 위해서 살고 죽는 것이며(롬 14:8)
주를 위해 먹고 마시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고전 10:31).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내게 주어진 재능, 지능, 물질, 시간 등을 지혜롭게 사용하되
그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는 말과 행동은 궁극적으로 나의 주인님이신 하나님의 유익과 영광에
직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시며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귀신도 그렇게 믿고 떨면서 반응하는 것입니다(약 2:19).
예수님이 사랑이 많으시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실을 믿는다!는 고백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다는 나의 말로 나의 믿음이 증명되지 않습니다.
야고보는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구원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당신의 반응입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지키면 좋겠지만 못지켜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다면
구원에 대한 중대한 점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아주 무서운 상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분명하게 제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품고
현실과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가려는 마음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만이며
다시 말해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에 즉각 순종하려는 마음,
내 생각과 환경이 그것을 따르기 어려울지라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아래 복종시키는 마음,
여러 가지 변명과 부당함에 대한 이유들이 마음 속에 수 없이 떠올라도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 앞에 모든 것을 잠재우고 겸손히 순종하려는 마음,
그것이 참된 구원을 얻은 자들의 분명한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