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소아시아 성도들에게
갓난 아이가 젖을 사모하듯 말씀을 사모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갓난 아기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milk of the WORD)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바울은 이 신령한 젖을 먹여야 할 교사인 디모데에게
말씀을 전할 것을 강력하게 명하였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말씀이 없이는 구원도, 성화도,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도 불가능합니다.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진리이며(요 17:17; 고후 6:7)
성도가 거듭난 것이 바로 이 영원토록 살아있는 말씀으로 된 것이고(약 1:18; 벧전 1:23)
성도가 영적인 전쟁을 할 때 필요한 무기입니다(고후 6:7; 엡 6:14, 17)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 교회 안에서
말씀을 공부하는 것과 읽고 묵상하는 일을 마다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성경공부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 성경공부는 지식적이다.

지식적이라는 말은 성경에 대한 정보만 머리에 넣는다는 말입니다.
말씀의 원리대로 사는 것,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지
지식적으로 많이 쌓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성경은 머리로만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예수님도 지식적으로만 알고 말로만 순종하는 자들에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머리에 지식적으로 성경에 대한 정보를 넣는 것 자체가 잘못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거절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성경에 대해 많이 알면 뭐해, 그대로 살아야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성경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을 들어보십시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빌립보 성도를 위해서도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바울이 가장 고상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었습니다(빌 3:8)

히브리서 기자 역시 진리의 지식을 받은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하였고(히 10:26)
베드로는 지식에 절제와 인내와 경건을 더하라고 명하면서(벧후 1:6)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명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일관성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명하고 있으며
지식이 풍성하게 넘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오직 성경에서 찾을 수 있고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지 아니할 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절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가 지식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공부가 지식적으로 자라나는 길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공부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

“공부도 하는 사람이 해야지…나 같은 사람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초대교회 시대 지식,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있었고(고전 12:8)
특별히 지식에 풍성했던 교회도 있었습니다(고전 1:5).

그러나
”특별히 말씀을 분별하고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경공부가 필요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디모데후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유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온전해져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즉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아이처럼 사모하라고 한 것은
모든 성도가 영적으로 자라기 위해 말씀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청년들에게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 119:9)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노인들에게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딛 2:2-3)

위와 같은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전함에 이르는 것에 유익한 것이
바로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게 말씀한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인 중 성경 공부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학, 과학, 물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 그 과목을 포기할 수 있지만,
성경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며 포기 해서는 안 되는 과목입니다.

오직 말씀만이 성도의 삶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하며
영적으로 성숙하게 만들고 구원을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핑계로 거절할 수 없습니다.
성경공부가 필요 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셋째, 너무 바빠서 성경공부 할 시간이 없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너무 바쁘다”입니다.
사실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너무 바쁩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밤이 되야 퇴근하는 가장,
맞벌이로 나가서 오래 일하고 들어와서 육아를 담당 해야 하는 엄마들,
학교, 학원, 독서실…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전까지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

앉아서 성경을 필 시간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참 이상한 현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 공부가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압니다.
말씀이 내 영혼의 건강이 달려있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등한시 되는 것,
가장 마지막에 할 일로 치부되는 것이 또한 말씀입니다.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이 성경 읽기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일 설교 시간에 40분 동안 듣는 설교가
내 영혼을 위해 말씀을 공급받는 유일한 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공부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6-9)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시편 119편에서 우리는 여러 번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발견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시 119:97)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7-148)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을
가난한 성도를 돕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행 6:2, 4).
그래서 성도를 돕는 일에 일꾼을 세우고, 자신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사역의 우선순위에서 말씀은 첫 째 자리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하면서
자신이 밤낮 쉬지 않고 삼 년이나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며
가르친 것을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행 20:31)
바울의 선교에서 첫 째 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할 것을 하나님 앞에서 엄숙하게 명하였습니다(딤후 4:1-2).
매 순간이 말씀을 전해야 할 때이고, 매 순간이 말씀을 들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듯 말씀을 사모하라고 명하면서
말씀은 바쁘다고 뒤쳐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였습니다(벧전 2:2)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매 순간 공급받아야 하는 양식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와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하면서 몰래 성경을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옆 방에서 성경을 읽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삶의 중심에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자리잡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어떻게 해서든 말씀을 묵상하고 듣고 읽어야 합니다.

시편기자처럼 말씀을 사모하여 읽기 위해 새벽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라디오로 뉴스나 음악을 듣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검색순위나 최신 기사를 찾아볼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집에 와서 피곤해서 쉬고 싶어서 보는 TV대신
나의 영혼을 먹이고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씀에 대해 정말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정말 그 중요성을 깨닫는 다면
아무리 바빠도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에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쁘다는 것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내는 것에 어려움이 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성경공부를 거절하는 이유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공부…중요하지…그런데…

“그런데”라는 말은
먼저 그 앞에 것이 제대로 되었을 때 가능한 말입니다.

말씀공부 중요하지…그런데 성도와의 교제와 어울림도 중요하다

성도가 교회의 지체로 온전하게 되는데 필요한 힘과 능력은 말씀에서 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력과 같은 원동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어떤 화려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기계도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성도와의 교제가 중요합니다. 아픈 성도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활동과 조직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역과 활동들이
그 것에 원동력이 되는 말씀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친목회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들도 아픈 회원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로 모여서 밥을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기도 합니다.

성도의 삶 가운데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지게 만들고
그렇게 성화되는 성도가 다른 성도들과 함께 모여 서로에게 덕을 끼치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 권면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온전히 세워질 때
세상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세상 가운데서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에겐 반드시 그분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을 먼저 바로 해야 합니다.
말씀 공부 중요하지…그런데 라고 “그런데”라는 말을 붙이지 말고
먼저 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씀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다른 것들을 하는데 필요한 힘과 능력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은 성경이 유일합니다.
성령께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역사하십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자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묵상할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확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성경이 오늘날 성도들의 삶 가운데
가장 볼품없는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단지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명제 하나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한 번 핥아보고 그 맛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영혼을 흡족하게 만족시킬 놀라운 진리가 담겨있는 말씀을 더 이상 먹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당신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기 원하십니까?
당신이 현재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