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분별이 없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세상의 분별력 없음은 진리에 대한 교회의 자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어떤 드라마에서 한 목사가 나와
결혼 전에 임신한 것으로 오해 받은 두 남녀에게
”괜찮아요. 요새 그런 건 죄도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진리의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의 입에서 이와 같은 말이 나오니
그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분별력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 안에서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과
그러한 청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비그리스도인과의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만 좋으면 신앙이야 나중에 따라올 수 있으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조건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구원 받을 가능성도 있는거니까…”
“그리스도인 중에 인격적으로 비그리스도인 보다 덜 성숙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사람하고 결혼한 사람은 다 잘못한 것이게?”
분별없는 교회, 분별 없는 세상…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고한
”그 때” 인 것 같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교훈이며
진리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케케묵은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금이 어떤 세대인줄 아느냐고 묻습니다.
자유와 평등, 인권이 보장되는 이 세대에
노예와 주인, 왕정시대에 주어진
성경의 낡은 가르침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들이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을 소설책 따위로 여기는 자들이 아닙니까?
문제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겠다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도 유통기한이 있습니까?
말씀의 진리가 세대에 따라 수정되고 변경 되야 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론들과 하나님의 말씀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만약 성경의 어떤 부분은 시대에 맞게 수정 되야 한다면
누가 수정 되야 할 부분과 변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정할 수 있을까요?
누가 되었든 그는 하나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원래 말씀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 말씀을 수정하고 변경할 수 있는 권리와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그리스도인여, 우리가 따르는 주요 왕이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8)
비그리스도인과의 결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우리는 이 변하지 않는 성경의 관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 7:3-4)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정복할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가나안 백성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배우자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출 34:16).
부부 관계 안에서
세상 신을 섬기는 배우자의 영향을 평생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내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전 2:9)
“내 백성”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
진노의 자녀, 불순종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엡 2:3).
구원 받기 전 우리도 역시 그와 같았습니다.
우리의 아비는 마귀였습니다 (요 8:4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자녀가 되었으며
영원한 기업을 이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몸 된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한 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찌 하나님과 마귀가 사돈이 될 수 있겠습니까?
신약의 가르침도 이와 일치합니다.
고린도후서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 되리요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하셨느니라 (고후 6:14-18)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믿지 않는자와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과부에게 결혼할 것을 명하면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전 7:39)
엘리스 프라일링은 <비그리스도인과의 결혼?>이라는 책자에서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은 삶의 각오를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나의 삶을 당신께 맡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당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를 맡기고자 합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나중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결혼이 그리스도와 그의 몸된 교회를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목적을 갖는 다는 것(엡 5)을 고려할 때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결혼의 모습과 목표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루어줄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찾았고
저의 행복이 결혼의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이 결혼은 아주 만족스럽고
충분히 행복한 결혼이 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확고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진 가르침입니다.
문제는 당신이 그것을 인정하고 그 권위에 순종하려고 하는가?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을 “주인님(lord)”이라고 부르는 자입니다.
당신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주를 좇는 자”입니다(마 16:24).
당신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자입니다”(롬 14:8).
당신은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입니다(마 7; 약 2:17).
당신의 주인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선택은 당신의 몫이며 결과는 당신의 순종에 따라 올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내 이성은 주를 따르고자 해도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너무 큰데 어떻게 합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여 죽게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핏방울처럼 흘렸던 땀, 그분의 가슴속에 있던 감정들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분은 그 감정을 하나님의 뜻 아래 두고 순종의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우리가 주를 따르는데 감정은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감정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원하신다면 말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무 죄 없으신 분께서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내려 놓으셨다면
나 역시 그분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내 감정이 이런데 어쩌란 말이냐?”라는 마음이 든다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당신의 왕께서 얼만큼 당신을 위해 낮아지셨는지
당신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셨는지 다시 한번 예수를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또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 연애하거나 결혼하여
상대방이 오히려 주님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네, 그러한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은혜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교회를 떠난 형제 자매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을 아예 떠나버린 성도가 얼마나 많은지요.
당신의 인생을 걸고 당첨이 희박한 이 도박에 뛰어드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미 말씀으로 금하셨고 경고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거짓말이나 속이는 것 등 다른 죄와 같은 죄입니다.
다시 말해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이 최악의 죄이고
나머지는 가볍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다른 성도의 죄를 비방하고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죄에 대해 알려주고 붙들어주어 회개하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연애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권고해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려는 것에 대해
온유한 마음과 섬김의 자세로 말씀이 기록한 것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회개하기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미 결혼 했다면, 믿지 않는 배우자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고
그 안에서 겪는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그거 봐 내가 뭐랬어”라고 하기 보다
함께 울어 주어야 합니다. 격려해주고 함께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죄인에 대한 사랑의 자세와 죄에 대한 자세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간음중에 잡힌 여인에게 은혜와 용서를 베푸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은 마지막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용서하셨지만
죄 자체에 대해서 별일 아니고 그럴 수 있다고 결코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에 대해서 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그리스도인과 결혼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라고
성경의 권위에 순종함으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