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 “나는 기독교 우파도 좌파도 아닌 전파에 힘쓰겠다”에서는 제2차 냉전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 땅의 시민으로서 정치적 참여를 할 때, 극단적인 정치 집단이 취하는 태도를 그대로 따르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하나님의 뜻을 좌절시킬 수 있다거나 성취하도록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버려야 한다. 성경의 가치관으로 위에 있는 권세가 행하는 악한 일들과 결정들을 비판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 곧 존중의 태도를 갖추고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뜻이고, 정치 참여 또한 그 우선순위에 부합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반성경적인 정책이나 법을 미워하며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원수로 여겨서 지나친 적대감을 쏟지 말아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독교 우파도 좌파도 아닌”이란 말 때문에 다음과 같은 오해를 한다: 그러면 좌파가 입법하고 집행하려고 하는 반기독교적인 정책들에 관하여 우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인가? 정치에 관해서는 눈 감고 귀 막고, 입으로는 복음만 말하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앞선 칼럼에서 웨인 그루뎀의 책, “성경과 정치(상)”(새언약, 2024)을 언급하며 성경에서 하나님이 드러내신 뜻은 정치적으로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에 많이 부합한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말을 아껴 “기독교 우파도…아닌”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단지 우파가 주장한다고 하여서 그것이 성경이 지지하는 가치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파든 좌파든 추구하는 가치가 성경과 다르면 반대하는 것이지 진영 논리에 따라 편드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지만, 거주하고 있는 곳은 이 땅이 맞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지만, 이 땅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이 현재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 사역자들인 이 땅의 권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지 또는 가리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 할 의무가 있고, 귀를 열어 신중히 들을 책임이 있다. 기독교가 입을 열어 복음을 말할 땐, 보고 들은 것에 관하여 성경을 근거로 죄를 지적하거나 의를 요구해야 한다.
구르뎀은 “성경과 정치(상)” 1장에서 “기독교인과 정부에 대한 5가지 잘못된 관점”을 제시했다: 1) 정부는 종교를 강요해야 한다, 2) 정부는 종교를 배제해야 한다, 3) 모든 정부는 악한 마귀의 역사다, 4) 정치하지 말고 전도를 하라, 5) 전도하지 말고 정치를 하라. 첫째,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 정부는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둘째,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는 정부가 하는 일에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반영되기를 바랄 수 있다. 종교인들도 정부가 섬기는 국민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단지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셋째, 성경은 모든 정부가 하나님의 허락 아래 세워진다고 분명히 말한다. 악한 정부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이 아니다. 선한 왕과 악한 왕 모두를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그리고 세워지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세워질 수 없는 권세였다는 측면에서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다(롬 13:1). 마지막 두 가지 관점 중 “전도하지 말고 정치를 하라”는 관점이 지난번 칼럼에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는 말로 비판한 태도라면, 이번 칼럼을 통하여 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은 “정치하지 말고 전도를 하라”는 관점이다.
정치와 전도는 완전히 별개의 활동이 아니다. 어떤 정부는 종교를 강요한다. 그 정치권 아래에서는 전도가 불법이고 그래서 제약이 많다. 전도는 일차적으로 영혼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전도자는 반드시 구도자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이 미워하시는 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를 역리로 바꾸고 사형받을 죄를 평범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회를 개혁하는 정치 활동은 그래서 크게 보면 전도에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이 더 이상 죄가 아니라고 하는 행위에 관하여 사람들은 그나마 있던 죄책감마저 상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가 달성하기 원하는 정치 참여의 목적은 기독교 왕국을 세우는 것(기독교를 강요하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 왕국은 그리스도께서 천사들을 데리고 다시 오시는 그날에 세워질 것이다. 기독교의 정치 목적은 이 땅의 정부가 하나님의 사역자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도록 돕는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은 특정 정당이나 그 정당의 대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그 이유를 반대쪽 정당과 그 정당을 이루는 정치인들보다는 인품이나 도덕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종종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이 경제나 사회 전반에 더 기독교적인 가치를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할 때도 있는데, 빈부 격차를 줄이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을 돕는 것을 귀중한 성경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지지하는 그 정당이 당의 주요한 정책으로 생명윤리 분야에서 기독교 관점에서는 치명적으로 큰 범죄를 적극 권장하고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독교인은 생명윤리 분야에서는 문제가 있고 동의할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정당 대표의 상대적 도덕성과 다른 분야에서 얻을 유익을 감안할 때 여전히 지지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든 기독교인이 극우 기독교가 주장하는 정치적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외교적 전략의 차이나 사회복지 및 경제적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인정하는 중립적인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모든 기독교인이 절대로 지지할 수 없는 몇 가지 분명한 사항이 있다. 생명윤리와 가족에 관한 반성경적 사고와 정책이다. 실제로 모든 기독교인이 이 부분에 관하여 같은 의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이 점점 많아지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고 철저히 인간 중심적으로 성경을 곡해하는 기독교인들은 오랜 세월 기독교 윤리로 변함없이 지켜져 왔던 가치를 매몰차게 버리고 있다. 성 정체성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아주 명확하지만, 그들은 현대 신학이 만들어낸 이론의 다양성 때문에 성경의 가르침을 좀처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결혼과 가정에 관한 성경의 관점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하고 분명하지만, 그들은 성경의 권위보다 훨씬 더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성경의 관점을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폄훼한다.
복음주의, 그러니까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고 오류가 없는 성경의 가르침을 삶의 전반에 적용하기 위해 힘쓰는 이들은 그루뎀처럼 정치가 다루는 모든 주제에 관하여 성경의 가치가 적용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적어도 생명윤리와 결혼 및 가족, 성 정체성 부분에 있어서 더욱 강력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고, 인류 전체의 존속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가장 악하고 잔인한 정부가 무자비하게 죽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아기들)을 죽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정당은 더 많은 생명을 죽일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통에 버리는 이물질 취급할 수 없다. 그렇게 하겠다는 권세를 절대로 지지할 수 없다. 성 정체성을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방치하는 수준을 넘어 미성년자에게 그렇게 하도록 권장하고 부모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어떨까? 소수를 차별하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다수가 성에 관한 자기 입장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성과 결혼이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창조 질서(성과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오리지날 계획)에서 벗어난다면, 인류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 질서가 무너지는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세상을 더욱 그렇게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은 ‘나는 동성애나 낙태는 반대한다’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의 말을 의심하게 만든다. 정말 반대한다면 왜 그 반대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을 지지하는가? 다른 이유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 것은, 어쨌든 당신의 지지를 받은 그 정당과 정치인이 생명과 인류에 막대한 해로움을 끼칠 그 일에 전념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그들 중엔 기독교인들도 다수 포함된다) 왜 교회는 항상 동성애, 낙태만 이야기하냐고 따져 묻는다. 왜 이렇게 교회마다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공포심을 조장하냐고 비판한다. 그런데 단순히 그 주제에 관해서만 관심을 두는 건 아니다. 기독교인은 사회 전반에, 정부가 시행하는 모든 정책에 하나님의 공의와 가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동성애, 낙태 등에 관심을 두는 것은 지금 성 정체성을 파괴하는 운동과 풍조가 극심해지고 있고, 생명을 값싸게 여기는 나쁜 사상이 무섭게 세상을 전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하나님의 선을 권장하고 하나님이 악이라 칭하신 일을 부여받은 칼로 심판해야 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이 선이라고 하신 것을 악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은 권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을 한목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그것은 죄라고. 하나님이 분명히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악을 선이라 말하지 말라고. 악을 권장하고 선한 것을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은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다. 성령님은 그것을 위하여 교회가 전도만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것도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렇게 할 때,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제도가 보장하는 다양한 정치적 참여를 통하여 경건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가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 우파” 혹은 “기독교 좌파”를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독교” 그 자체를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와 전도 그리고 정치 참여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