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의 가장 치명적인 실패, 그것은 그가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의 죄를 책망하셨고, 다윗은 즉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회개했다. 나단은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지만 동시에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다’라는 희망적인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삼하 12:13-14).
하나님께 전심을 드리지 못한 죄를 가리켜 성경은 영적 간음이라 칭한다(대상 5:25; 렘 3:8; 약 4:4).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히 드려져야 할 전인(마음, 뜻, 힘)이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이나 때로 허락하신 것을 하나님보다 더 강렬하게 원하여 나뉘는 것, 성경은 그것을 탐심 곧 우상숭배라고 부른다(골 3:5). 하나님은 우리의 전심을 원하시고, 우리는 자주 여러 가지 탐심으로 인해 또는 육신의 정욕 때문에 영적 간음, 우상숭배에 빠진다. 그러면 어떻게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 전심을 하나님께 돌려드릴 수 있을까?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 쓴 시편 51편을 통해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기도를 배워보자.
1. 죄와 그 결과를 인정하는 상한 심령을 고백하라
다윗의 시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첫 번째 특징은 그가 죄를 깊이 통회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절대 죄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단순한 수치심, 후회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죄가 자기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에 가슴 아파하며 회복을 갈망한다.
다윗은 자기 죄과를 안다. 어쩌다가 실수한 것이 아니라 명백한 죄라는 것을 안다.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3절). 다윗은 죄가 하나님 앞에 범한 반역의 문제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고백했다(4절). 죄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상실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11-12절).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키려면, 우리는 먼저 죄와 그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않으신다(17절). 상한 심령에는 핑계가 없다. 책임 전가도 없다. 다른 사람의 죄가 나에게 미친 영향, 내가 자란 배경, 나를 둘러싼 환경,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등의 구차한 변명도 없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절). 날 때부터 나는 분명한 죄인이고,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오롯이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를 인정하고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당신의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죄를 인정하라. 그리고 그 결과에 관하여 상한 심령을 가지라. 다시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간구하라. 그 간구를 할 때 다음을 고려하라.
2. 하나님의 인자, 은혜, 긍휼을 겸손히 간구하라
회복을 원하는 다윗의 간구는 두 번째로 하나님의 성품에 온전히 기대를 건다는 특징이 있다. 1절부터 다윗은 자기 죄악을 지워달라고 요청하면서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주소서”라고 하나님의 성품 곧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생각하며 간청한다. 내 죄가 용서할 만해서가 아니다. 죄를 범한 것 외에 내가 행한 여러 가지 공로가 참작되어 용서를 얻어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용서는 오직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불쌍히 바라보시고 그들에게 가당치 않은 자비를 한없이 쏟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의로움을 선포하시는 분이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심판 주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4절). 하나님은 홀로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 우리는 수평적 관계에서 용서를 구하고 때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도 하지만, 수직적 관계에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판결과 처벌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의 죄를 말갛게 씻으시고 깨끗이 제하실 수 있을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당신의 죄를 십자가에서 말갛게 씻으시고 깨끗이 제거하셨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다윗은 공의로운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7절).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8절).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9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절).
십자가 복음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전심을 드린 첫날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둘로 나뉘는 마음의 문제, 영적 간음의 문제를 회개하고 다시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이킬 때마다 십자가 복음이 필요하다. 복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새 언약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진다.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죄 사함과 구원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3. 다시 당신의 전심을 하나님께 드리라
다윗의 시, 시편 51편에서 세 번째로 나타나는 특징은 다윗의 전심이다. 그는 자기 죄를 용서받는 것 그래서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것을 회개의 최종 목표로 삼지 않는다. 하나님께 다시 자기 전심을 바치고 풍성한 친교를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 시켜 달라는 간구(12절) 그리고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는 간구(12절), “내 입이 주를 찬송하며 전파하리이다”라는 예배의 소원(15절), 온전한 회개(상한 심령) 없는 제사를 원하지 않지만 회복된 이후에는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로 그분과 친교를 나눌 것을 갈망하는 장면에서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19절).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나뉘지 않는 마음으로 영원히 나눌 친밀한 사귐을 기대하고 갈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땅에서 그 풍성하고 즐거운 사귐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간헐적으로 죄를 지어 심각한 죄책감에 시달릴 때 거기서 놓임 받고 싶어 시편 51편의 기도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 목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요 14:20), 성령을 통해 우리는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도 영생을 맛볼 수 있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리기 위해 계속해서 투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전심을 원하신다. 다른 말로 하면 배타적인 관계 안에서 최상의 기쁨과 만족을 누리기 원하신다. 하나님과 당신 사이에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 끼어들 때, 그래서 당신의 마음이 나뉘기 시작할 때, 시편 51편을 기억하라. 당신의 죄를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고 그 결과를 인정하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기억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무궁한 자비를 간구하라. 그리고 죄 사함과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다시 당신의 전심을 바치라.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전심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과 우리가 누리는 사귐은 말 그대로 영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럽고 보배롭고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과 만족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땅에서 당신이 드린 만큼 누릴 것이고, 천국에서 당신이 드리지 못한 만큼 후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