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따" – "불법다운로드"를 소리나는 대로 줄인 줄임말이다.
몇달전 금요일 성경공부를 하러 친구네 집에 아내와 함께 찾아갔다.
보통 외국에서는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한 방에 모여
빌려온 애니메이션이나 교육용 DVD를 보곤 한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들어가보니
몇일전 내가 인터넷으로 불법 다운로드하여 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아이들과 영어를 하면서 영어실력도 늘릴겸
애니메이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한 아이가 물었다.
"이거 어제 DVD로 출시된 건데, 극장에서 봤어요?"
"…"
뭐라고 대답해야될지 몰라서 상당히 당황하였다.
이 아이들은 물론이고 이 아이들의 부모도
살면서 한번도 "불따"를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옳지 못하다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도 "죄"로 여기는 불따를
나는 신학공부를 하면서도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은 조금 복잡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면 안되지..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이제 불따는 거의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돈이 충분히 있다면야 상관없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개발자들이 잘못이야 그렇게 돈을 벌었으면 싸게 팔거나 공짜로 나눠줄것이지…
성경 말씀을 우선시 하는 한 베뢰아 사람으로써
이 같은 사람들의 여러가지 의견들과 이유들에
귀기울 이유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과연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이 진리이다!
도적질 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5)
이 말씀은 사람이 기록한 말씀이 아니며,
심지어 사람들이 하나님께 듣고 기록한 말씀도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을 준비하시고 그 것에 직접 기록하신 십계명 중 여덟번째 말씀이다. (출 24:12)
하나님은 참으로 거룩하시고 전지 전능하시며 홀로 의로우시며
마지막 심판이 되시는 분이시다.
시내산 위에서 보인 여호와의 영광은 맹렬한 불같았으며 (24:17),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며 죽을 것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8,19).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사람은 참으로 미천한 존재이며
그 거룩하신 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자 같이 넘어지게 되는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분이다.
그 하나님께서 직접 기록하신 말씀이 바로 "도적질 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누가 이 말씀 앞에 핑계대랴!
불따는 엄연한 도적질이다.
소유주가 있고 주인이 있는 물건을 아무런 댓가 없이 가져오는 행위이다.
그냥 몇분만 기다리면 받아지는 몇메가 바이트의 파일조각에 불과한 것이아니다
영상매체들은 그것을 만들기위해 밤낮으로 고생한 사람들의 수고가 담겨있으며
프로그램들은 수년간 그것을 짜내기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프로그래머들의 땀이 담겨있다.
그냥 마우스 클릭 몇번으로 이루어지는 참으로 가벼운 행위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사실 너무도 쉽게 우리는 하나님께서 번개와
우뢰와 나팔소리로 암흑가운데 직접 기록하신 말씀
도적질하지 말라는 그 말씀에 정면으로 대치하는 죄를 계속해서 짓고 있는 것이다.
도적질하지 말라!글쎄요,
저는 이게 도적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냥 다운 받겠습니다!
내 생각과 판단이 진리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지 생각해보라.
당신의 판단과 의견이 하나님 말씀보다 우선된다고 생각된다면 계속 그렇게 하라.
당신의 판단과 의견은 당신의 숨이 거두어질때 모두 사라지겠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당신의 판단과 의견이 옳았는지
심판받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구약에 기록된 말씀으로
신약의 은혜의 복음 아래 있는 우리에게는 직접 적용할 수 없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인간의 육체를 입고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보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7-18)
이 말씀은 어떠한가?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마태복음 5:29,30)
실족케한다는 것은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대로,
구약의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의 의의 기준은 변함이 없다.
예수님은 오히려 내 눈과 손이 짓는 죄의 댓가로 눈을 빼고
손을 찍어버리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다.
간단히 말하자면, 도적질하는 죄는
신약에서도 역시 우리를 지옥에 가게 만들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하는 죄이며 잘라 내어버려야 할 죄라는 것이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라 (눅 12:15)
도적질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 "탐욕"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갖고 싶고 내 것으로 삼고 싶고,
내 소유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이냐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탐욕" 때문이다.
"불따" 역시 바로 이 탐욕이 그 마음 중심에 있다.
생각해보면 많은 이들이 불따로 이용하는 자료들, 영화, 드라마, 오락프로, 게임, 유틸리티, 등
이 모든 것들이 거의 대부분 우리가 돈을 제대로 지불하고도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절대로 이용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용가능한 수단이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돈이 있었으면 충분히 지불하고 이용하지,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진리가 여기에 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데살로니가후서 3:10)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있는 규모없는 자들
즉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들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가 그 교회 안에 있을때 명하였던 명령으로
게으르고, 정당한 댓가를 치르려 하지 아니하면서도
교회에서나 다른 이들에게서 값없이 양식을 얻으려 했던 자들에 대한
사도바울의 경고이다.
규모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살후 3:6)
"불따"는 게으름이며 정당한 댓가를 치르지 아니하고
유익을 얻으려는 규모 없는 행동이다.
돈이 없으면 이용하지 않는 것이 옳다.
사실은 꼭 돈을 지불하면서 까지 얻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따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돈을 지불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 가운데 있다면
아마 우리가 지금 불따하는 수많은 자료들 중 많은 것들을 이용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사단은 얼마나 쉽게 우리의 판단력과 생각을 흐리는가?
참으로 짧은 시간동안 너무도 쉬운 방법으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규모 없이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심각한 죄를 수도없이 짓고 있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탐욕과 욕심은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에 있다.
내 안의 육신적인 욕심
(야고보서에 기록된 이 "욕심"이란 단어는 원어로 육신적인 탐욕을 말한다)
그것이 죄를 낳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불따"는 내 욕심과 탐욕에서 흘러나와 결국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다.
죄…
죄다…
그리스도께서 이 죄때문에 십자가에서 모든 물과 피를 쏟으셨다.
겟세마네 동산위에서 이 죄를 지고 가실 일 앞에서 심히 고민하여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흐르도록 기도하시고 슬퍼하셨다.
양 손과 발이 나의 이 죄때문에 못에 찔리셨고,
수많은 모욕과 조롱과 핍박가운데 채찍질 당하시고 허리에 창질을 당하셨다.
바로 이 죄때문이다…
죄…
"불따"는 나의 탐욕과 욕심이 만들어낸 도적질이며 하나님말씀을 매몰차게 무시해버리는 죄다!
도적질 하지 말라!
네 손이 범죄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온갖 탐욕을 멀리하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
규모없는 자들에게서 떠나라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역사이래로 딱 두가지 양상을 보인다.
당신은 아담과 하와 처럼 여러가지 당신이나 사람들이나 사회가 만든 핑계를 댈수도 있다.
하나님 당신이 만들어서 내게 준 하와 때문입니다!
너무 율법주의적인 생각이야… 어떻게 말씀 그대로 다 살수가 있나?
돈이 충분하지 않은으까 돈이 생길때까지만 이렇게 조금마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에게 당장 그리고 꼭 필요한 자료들과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지우나, 차근 차근 말씀을 따라야지…
혹은 다윗처럼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꿇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않는 진리이며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려는가?
이러한 생각들로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생각해보았다.
시속 70마일로 집으로 오는데, 내 뒤의 거의 대부분의 차들이 나를 추월하여 간다.
마치 내가 혼자 바보같이 규정속도를 지키기 위해 뒤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해도, 내 주위 사람들이 다 아니라고 말해도,
내 마음이 여러가지 온갖 핑계와 이유들을 나에게 제시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 한번 정하시고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그 기준에 맞추어
끝까지 달려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와 외장하드 등에 들어있던
모든 찬양파일과 영상들 그것들을 받는데 필요했던 프로그램들,
그리고 많이 유익했던 성경프로그램들도 모두 지워버렸다
이토록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대적하면서
하나님의 종이라 말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몸에 베어버린 불따의 유혹은 순간순간 나를 유혹하지만
늘 말씀안에 당당하게 서서 나의 탐욕과 욕심을 잘라 내어버리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깨끗하고 정결한 그릇이 되고 싶다.
내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움 없는 그분의 자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