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기피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율법주의일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 이 “율법주의”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 이 “율법주의”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예를 들어 어떤 성도가 “집에 있는 TV를 없애야겠다”고 하면
그것을 듣는 성도가“너 그러다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어..”라고 말해 주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것을 듣는 성도가“너 그러다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어..”라고 말해 주는 경우가 그러하다
정말 이 경우에도 “율법주의”라는 말이 합당한가?
또 다른 예로 만약에 어떤 성도가 “락 음악을 듣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치 못한 것이다!”라고
락 음악을 좋아하는 한 청년에게 권고한다면 이는 “율법주의”인가?
성경 어떤 말씀에 락음악이 죄라고 적혀있는가?
만약에 없다면, 그 성도는 하나님 말씀이 아닌 자신의 기준을 말씀에 추가하고
그 기준을 하나님말씀처럼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마치 바리새인처럼 말이다.
그 기준을 하나님말씀처럼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마치 바리새인처럼 말이다.
이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주의”라는 말 자체를 굉장히 혐오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율법주의”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율법주의”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삶의 여러가지 분야에 있어서 이 “율법주의”라는 것을 어떻게 피하고 멀리할 것인지
잘 알지 못하게 된다
잘 알지 못하게 된다
과연 율법주의는 무엇인가?
이 율법주의를 만들어낸 장본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통하여 한번 제대로 알아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당시 죄인들이라 여겨졌던 세리나 창녀들에게는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셨지만
오히려 종교지도자들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였던 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제사장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마태복음 23:33)
라고 크게 꾸짖으셨다.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예수님도 율법주의를 굉장히 싫어하셨다는 것이다.
율법주의는 외식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저주하신 이유는
그들의 외식 때문이었다 (마태복음23장).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1-39절에서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7번이나 부르셨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들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23:3a)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23:3b)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는 외식하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마태복음23:3b)
그들은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높임을 받는 것을 너무 좋아하였다. (마태복음 23:5-7)
그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였다 (마태복음 23:5)
경문(Phylacteries)이라 하여 기도하는 시간에 유대인들이 머리나 팔에 차는 것으로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신명기 6:4)
그 안에 말씀이 기록되어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이 것을 일부로 크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하여
자신이 얼마나 경건한지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기도할때 쓰는 옷술을 일부러 크게 늘어뜨렸고, 잔치에 가면 높은 자리를 찾아 앉기를 좋아하였고
사람들이 자신들을 "선생님" 이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였다.
율법주의자의 특징 1: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먼 사람
우리가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는 모든 것이 외식이며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이다.
집에서 TV를 없애는 것이라든지, 아침에 일찍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하는 것, 교회에 일찍 나와 기도하는 것,
밖에 나가 전도한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찬양을 부르는 데 열심을 내는 것 등
주님 앞에 참으로 아름다운 이 모든 것들이, 만약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이 바로 외식이요 율법주의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 주님만이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 일들을 하는지
내가 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잘 살피고 돌아보는 것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좀더 겉으로 드러나는 율법주의의 특징을 살펴보자.
율법주의는 판단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는 자 (마태복음 23:4)"라 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외식으로 지키는 모든 법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모두 지키도록 강요하였고, 지키지 아니하는 자들을 책망하였고 판단하였다.
사람들은 그들의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움으로 그 법들을 지켰다.
심지어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으로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기 자식이 눈을 떴는데도
그 자식의 부모는 바리새인들이 두려워하여 담대히 말하지 못하였다. (요한복음 9장 22절)
율법주의자의 특징2: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아니하는 자들을 판단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나"를 가르키신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항상 기뻐하라 하셨고, "나"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 하셨으며
"나"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무엇을 하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라하셨다.
"나"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이 성도는 사랑이 없어!" "저 성도는 기도가 부족해!" "저 형제는 경건하지가 못해."
"이 교회는 찬양하는 사람이 부족해." "이 교회는 전도에 대해 관심이 없어."
율법주의자들은 이렇게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킨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한다, 전도는 이렇게 해야한다, 찬양은 이렇게 드려야한다…라는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만들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따르게끔 강요하고
그것이 잘 안될때에는 그들을 판단한다. 이런 면에서 율법주의는 교만과 아주 친하다는 것을 알수있다.
율법주의는 자신이 만든 법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강요한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법 외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법들
(특히 안식일에 관련한 법들)을 지키기에 힘썼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법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강요하였다.
우숩게도 그 법을 지으신 하나님, 그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들의 법을 지키라고 강요하였던 그들이었다. (마태복음 12:8)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너희들의 유전(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고 (마태복음 15장 3) 그들을 책망하셨다.
율법주의자의 특징 3: 자신이 만든 법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주장한다
예를 들어 락뮤직은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든지,
TV를 보면 죄라고 한다든지, 새벽기도를 빠지면 죄라든지…
이러한 기준들이 대부분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준이라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것처럼 권위를 가지고 지켜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율법주의자들은 "형제를 사랑하고, 온유하게 대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기준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온유하지 못하게 대하고,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어겨가면서 자신의 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율법주의자는
첫째: 외식주의자로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으로는 먼 사람
둘째: 판단하는자로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아니하는 자들을 판단하는 사람
셋째: 자신이 만들어낸 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주장하는 사람
이다
만약에 어떤 성도가 집에 TV를 없애고 하나님 말씀을 보는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이는 율법주의인가? 한번 이 기준을 적용해보자.
첫째, 그 성도는 진심으로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하였는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그리하였는가?
둘째, 그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다른 성도들을 나무라고 마음속으로 혹은 겉으로 판단하는가?
셋째, 그 성도가 하고자하는 "TV를 없애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의견 혹은 자기 자신의 의견에 기초하는가?
만약에 그 성도가 이 세가지 기준을 다 통과한다면, 그 성도의 열심은 주를 위한 열심이지 율법주의가 아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그 기준으로 판단치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삶 속에서 더 경건하고자 노력하는 주의 귀한 성도이며 자녀인 것이다.
반대로 같은 "TV를 없애고 하나님 말씀을 더 보기" 라 할지라도
첫째, 그 마음에서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동기가 없다면 이는 율법주의이다.
예) 내가 이렇게 TV를 없애면 다른 사람들이 볼때 거룩해보이겠지?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성도들이 좀 깨닫는 게 있겠지?
예) 내가 이렇게 TV를 없애면 다른 사람들이 볼때 거룩해보이겠지?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성도들이 좀 깨닫는 게 있겠지?
둘째, 그렇게 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향한 판단이 속에서든 겉에서든 일어나면 이도 율법주이이다.
예) 나는 TV를 없앴는데, 저 성도는 TV가 2대나 있네! 완전 세상적이구나!
아무개 형제! 당신네도 TV를 없애야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 수있어!
셋째, 그 행위가 직접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말씀 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오히려 "사랑하고 온유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인것이다.
예) 이봐 형제! 자네가 TV보는 거 하나님 앞에서 죄인거 알고 있나? (사랑 없는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