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원리
본문: 빌립보서 4장 8절~9절
설교: 최 종 혁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서 4장 1~9절의 말씀은 한 마디로 “주 안에 굳게 서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 안에는, 그들에게 주 안에서 굳게 서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믿는 자들의 신앙을 공격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험, 환란, 유혹이라고 부르는 ‘어려움’들입니다. 약1:2에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벧전 4:12). 우리에게 오는 시험과 어려움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들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 때가 있습니다.

욥기를 읽을 때면, ‘만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삶의 기반을 흔드는 그와 같은 큰 시험을 당할 때 욥과 같이 반응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던 아내가 오히려 우리가 보이기 쉬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끔찍한 상황에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신앙이 굳게 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별 것 아닌 것이 신앙을 흔들기도 합니다. 어떤 성도가 지나가며 무심코 던지고 간 말에 신앙이 흔들립니다. 집에서 남편이, 아내가, 부모님이, 자녀가 한 말에 우리는 상처를 입고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가 뭔가 잘 해보려고 하면 의견이 부딪치는 사람이 있어 어려움이 됩니다. 직장에서 빛과 소금이 되고자 굳게 다짐하지만 그날따라 나의 결심을 공격하는 이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순종하려고 하면 사단이 더 공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삶에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시련과 유혹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빌4:1-9의 말씀을 통해 그에 대한 답을 말해주고 있는데,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겸손)을 품으라”(2),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5),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라”(6,7)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염려제목을 기도제목으로 내 놓을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치료약’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것은 어떻게 시련과 환란 앞에서 평안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예방약’입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하며 명령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형제들과 이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명령합니다. 믿는 자, 형제자매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순종해야 할 것에 대해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첫 번째 명령 – 바르게 생각하라
“이것들을 생각하라”(8절 하) “생각하라”는 것은 ‘마음 속에 품으라’, ‘마음을 쏟으라’, ‘곰곰이 생각하라’, ‘생각을 메어두라’, ‘마음 속에 간직하라’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저 스쳐가는 생각이 아니라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여 집중한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을 때나 어떤 일을 할 때 생각이 그것에 깊이 빠져 다른 사람이 부르거나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실제로 수학이나 회계 용어로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정확한 계산과 논리를 따라 결론을 내리는 것, 생각을 고도로 집중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말씀에서 사용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신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과정이 이와 같은 사고과정과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 23:7) 이 말씀은 마음에 가진 생각이 그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안다면 또 어떻게 행동할 지도 알 것입니다. 당시 빌립보 성도들은 많은 신들과 철학의 영향으로 사고하고 논쟁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6가지로 제시되고 있는데,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사용한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어들입니다. 오히려 당시 철학자들이 사용하던 단어들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당신들의 철학에 따라서 한번 살아보라고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9절에서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것들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가치있는 것들,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가르쳐줬던 것들을 생각하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이 6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참된 것”은 진리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참된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참된 것은 없습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진리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이 있고, 그것이 자신에게 좋으면 좋은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경건한 것”은 평균보다 뛰어난 것, 존경받을 만한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존경받는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돈이 많은 사람, 눈에 띄는 업적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뭔가 큰 결과를 얻어낸 사람입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좋으면 인정받는 사회입니다. “옳은 것”은 정의를 가리킵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 내용에 권선징악이 뚜렷했습니다. 주인공은 착하고 악인은 계속해서 악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뭔가 이유가 다 있어서 그것을 설명해주니 시청자는 그에게 측은함을 느낍니다. 선과 악이 잘 구분되지 않는 것입니다. “정결함”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도덕적 깨끗함은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속으로 무슨 나쁜 생각을 하든지, 나 혼자 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랑받을 만한 것”, “칭찬받을 만한 것”은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사람에게 사랑받고 칭찬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이 대한민국의 생각과 가치의 기준은 분명 ‘사람’에게 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된 것과 옳은 것, 정결한 것 등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 생각에 옳은 것이면, 정결한 것이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나에게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하는 이것이 오늘날의 생각입니다. 이것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참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경건한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입니다. 성경에서는 나이든 사람(딛 2:2)이나 집사의 자격(딤전 3:8, 11), 혹은 성도의 삶의 모습(딤전 2:2)을 설명하는데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존경받을 만하고 경건한 것입니다. “옳은 것”은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옳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입니다. “정결한 것”은 더렵혀지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요일3:3에서는 예수님의 깨끗하심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되었고 고후11:2에서는 처녀의 정결함을 지칭할 때, 딤전5:22에서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정결함은 완전한 깨끗함입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조금 낫지’ 생각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흠 없고 완전한 깨끗함입니다. “사랑과 칭찬받을 만한 것”은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사랑받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입니다.

세상에 말하는 철학, 심리학, 과학은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들은 참된 것, 옳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와야 존경받을 만한 것이고 우리가 추구할 것이라고 말하고 눈에 보이는 해만 끼치지 않으면 좋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나를 높이는 것, 그것을 추구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런 생각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이 세상은 계속해서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텔레비전를 켜는 순간, 인터넷을 여는 순간, 세상은 우리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려고 합니다. 그런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대신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없애버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3-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이 세상과 육신의 것을 생각하지 마시고, 영적인 것과 하늘에 속한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는 것들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들 앞에는 “무엇에든지”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함께 나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2) 주님 안에 굳게 서기 위해, 그 평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생각하시기를 바라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들을 버리시고 그러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십시오. 무엇에 여러분의 생각이 집중되어 있습니까? 어디에 마음을 쏟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된 것, 경건한 것, 옳고, 정결하고, 사랑과 칭찬받을 만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명령 – 바르게 행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9). 사도 바울은 이제 그것을(참된 것, 경건한 것 등) “행하라”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행동하여 그것이 삶의 방식이 되라는 것입니다. 생각이 그저 생각에서 그치면 ‘공상’, ‘망상’, ‘이론’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행할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철학은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라고 하지만, 성경은 행할 수 있는 것을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고 주님께 받은 것입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전 11:2)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의 사자(메신저)로서 그들에게 전달해 준 것입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간증을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이 가장 효과적으로 구체화되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그것이 드러날 때입니다. 그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사도 바울은 가르쳐주고 삶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너희도 그렇게 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빌립보 성도들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사도들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드러내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을 우리 안에 넣어주셔서 그것을 깨닫고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믿은 자들’로서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우리는 이런 말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 나중에 믿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가장 설득력 없는 논리가 ‘나는 이러했으니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입니다. 적어도 노력을 하면서 그렇게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성경을 통해 배운 것들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 동생, 친구에게 “그렇게 행하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쳐주셨고 우리가 행할 수 있게 도우신다, 내 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내가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속의 말씀 – 평강의 하나님
그런 자들에게 주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 7절에서 하나님의 평강이 지켜주신다고 했는데, 9절에서는 평강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심지가(마음, 혹은 생각이)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주 안에서 굳게 서서 요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하고 사랑과 칭찬받을 만한 것을 생각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감정의 산물이 아닙니다. 뜨거웠던 경험은 신앙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말씀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합니다. 우리를 온전하게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말하면서 자신이 그것을 증명했다고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1-12). 그는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그 안에서 만족하기를 배운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자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살았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텔레비전을 켜실 때, 책을 펴고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 일하실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참되고 경건하며 옳고 정결한 것,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을 생각하시고 그런 것을 선택해서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 사람의 속임수, 간사한 유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세상은 계속해서 여러분을 간사한 속임수에 빠뜨리려 합니다. 세상의 풍조에 밀려 요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에 메어두시고 그것에 순종함으로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