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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형제를 사랑하라

 

본 문: 베드로전서 1장 22-25절

 

설교자: 조 정 의

 

 

“너 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성 경에서 말하는 가장 큰 계명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께서 직접 해주셨습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28-31)”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두 계명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포함하는 것이고 구약에서부터 신약까지 모든 말씀이 이 두 계명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40)”

 

본 문 말씀은 ‘형제 사랑’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고,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는 방법이며 셋째는 형제를 사랑하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형제를 사랑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형제 사랑이 마음에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치 않는 자에게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게 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이유

 

“너 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22)” 이 말씀은 해석하면서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영적으로 성장해서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해석입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아서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없고 용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모든 구원받은 성도는 마음에서 형제 자매를 향한 거짓없는 사랑이 흘러나온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진리를 순종함’이라는 것은 복음에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복음에 순종한다’는 말은 ‘복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롬10:16)”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 복음을 순종하여 영혼이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은,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영혼이 깨끗하게 되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혼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도 점점 깨끗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닌,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는 완료형의 의미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는 순간,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렇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체험적으로 알고 계신 사실일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가슴 속에서 형제 자매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법

 

우리는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본문 말씀은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은 앞에서 말했던,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흘러나오는 거짓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이나 원어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외식적이거나 계산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체면을 차리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계산적인 사랑이 흔하지만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사람은 그런 사랑이 아닌 순수한 사랑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뜨겁게 사랑하라’입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뜨겁게’라는 말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 말은 참 애매합니다. 어느 정도가 뜨거운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용한 ‘뜨겁게’라는 단어는 성경에 3번 등장하는데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구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이 말씀에서 ‘간절히’라는 말이 바로 ‘뜨겁게’라는 단어와 같은 말입니다. 즉,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방물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만큼 간절히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는 사랑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런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집과 땅을 팔아 가난한 형제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베드로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인 것입니다. 저는 어느 날 제 방에 있는 먼지 앉은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어쩌면 내 형제 자매들이 이 물건을 살 여력이 없어서 지금 기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사랑은 이것밖에 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예수님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성도를 위해 기도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성도를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뜨거운 마음으로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52번이나 ‘서로’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20:35)” 주님은, 섬기는 자가 큰 자이고 낮아진 자가 높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받는 자가 아닌, 사랑을 주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이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몸의 장기가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섬기고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체계적으로 건축된 건물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게 하는 힘

 

그 러나 우리는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할 수 없고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만 성도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 할 수 있거든 이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은 없다”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주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힘으로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너 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24, 25)”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씨앗과 대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모든 씨앗은 땅 속에 들어가 썩어서 없어집니다. 그것이 썩어서 잎이 나오고 풀이 되고 열매를 맺습니다. 어떤 오래되고 큰 나무라도 결국은 꽃이 시들고 잎이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씨앗은 땅에 들어가 죽게 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썩지 않으며 시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는 말씀이고,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구원시키셨고, 어둠 가운데서 헤매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의 씨앗은 우리 안에 심긴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여러분은 의사가 세포 하나하나에 붙은 암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세세하게 수술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예리한 칼보다 더 예리하고 하나님의 손길은 어떤 의사의 손길보다 위대합니다. 의사의 손길은 실수가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손길은 실수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심기었습니다. 여러분이 부족하고 이기적이어서 형제를 사랑할 수 없을지라도 여러분 안에 심긴 능력의 말씀이 여러분의 연약함을 채우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영원히 살아있는 것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통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이 말씀인 것입니다.

 

그 러므로 여러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살아서 여러분을 도와 성도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살아있는 말씀을 힘입어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심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연약함을 무너트리고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도우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계십니다.

 

 

결론

 

구 원받은 모든 형제 자매에게는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습니다. 혹 우리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을 알게 한 능력의 말씀이 우리를 도와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형제 자매를 순수한 마음과 뜨거운 마음으로 먼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1956 년에 짐 엘리엇과 다섯 명의 친구들은 명문 휘튼 대학을 졸업하고 남미 에콰도르에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도착 5일 만에 원주민인 아우카족의 창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간호사 훈련을 받은 후 아우카족에게 가서 5년 동안 그들을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5년 뒤에 잠시 조국으로 돌아올 때 아우카족의 추장은 그녀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추장이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그들의 손에 죽었던 남자의 아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우카족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10년 후 선교사들을 죽였던 원주민 중 키모라는 사람이 그곳 최초의 목사가 되었고 짐 엘리엇의 자녀 중 2명이 그 목사에게 침례를 받게 됩니다. 그들의 아버지의 순교의 피가 흘렀던 팜비치 강가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순수한 사랑이고 뜨거운 사랑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에게 심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심기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원수를 사랑하게 한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 형제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