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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 죄악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초대

 

본 문: 창세기 4장 5-7절

 

설교자: 최 종 혁

 

 

“가 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여 러분이 가장 최근에 지은 죄는 무엇입니까?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말합니다. 저는 한 청년 형제에게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있었지만 차마 그것을 말로 꺼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차마 말하기 어려운 죄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죄악된 인간을 향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 하시는지 보기를 원합니다.

 

창 세기 1, 2장에서는 창조에 대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완전한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부터는 그 세상이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신약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타락의 역사는 반복됩니다.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고, 4장에서는 그 아들도 부모와 같은 죄를 짓습니다. 그 죄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더 심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인간,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그 인간이 이제는 다른 인간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해 가는 인간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본문 말씀을 통해 인간의 죄악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죄의 유혹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죄악

 

5 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죄악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인과 아벨, 둘 다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의 반응은 대조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가인과 그 제물을 거절하셨을까요? 어떤 사람은 가인이 땅의 소산을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또 가인이 첫 열매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합니다. 혹자는 가인이 아벨보다 제사를 늦게 드렸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벨 때문에 가인을 거절하신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지 궁금해 했다면 아마도 그 원인은 아벨이 아닌 자신에게서 찾았어야 합니다.

 

“믿 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 가인은 아벨보다 더 나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왜 가인의 제사가 더 나쁜 제사일까요?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나쁜 제사는 무엇이고 더 나은 제사는 무엇일까요?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6-10)”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태도가 그 예물에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어떤 제물을 드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그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1:13-14)” 하 나님은 절대 외식하는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마음에 경멸히 여기는 것, 불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삼상15:22).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그의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가 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가인이 아우를 죽인 이유는 자신의 행위는 악하고 아우의 행위는 의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도 의지적으로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3장의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뱀이 말한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뱀은 죽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택할 수도 있었고 뱀에게 순종하는 것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택한 것은 뱀의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의지적인 불순종입니다.

 

흔 히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는 이유는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지 죄를 사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해결했을 때 그를 받아주십니다. 인간이 끝까지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교만하면 하나님은 그 죄인을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 구원받은 자들을 끊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죄인을 죄가 있는 채로 받아들이시지는 않으십니다. 불순종하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소망 잃은 죄인

 

죄 인인 우리들에게는 어떤 소망이 있을까요?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5)” 하나님께서 가인을 거절하셨을 때 그는 분을 냈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절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분을 냈고 안색이 변했습니다. 가인은 자신이 드리는 제사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제사를 드렸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거절하시자 화를 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아도 그에 합당한 대가가 돌아오면 그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에 쫓겨 숙제를 하다보면 교수님께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부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안 된다고 하면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것과 자신이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것 등을 생각하며 분을 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악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거절하시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는 지금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는 안색이 변했습니다. 안색이 변했다는 것은 7절에서 ‘낯을 들지 못한다’고 표현합니다. 가인이 안색이 변했던 것은 화가 나서 울그락불그락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아우의 제물은 열납되었는데 자신은 열납되지 않자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았을테니 가인은 수치심을 느끼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이 소망 없는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화를 냈고 수치심을 느끼며 좌절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우리는 나면서부터 죄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또한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있는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을까요? 인간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충고

 

“여 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6)”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질문을 하시는 데는 다른 의도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네가 왜 분하여 했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왜 지금도 분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가인은 진작에 회개를 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계속해서 화를 내고 있었고 화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가인이 그렇게 하고 있었던 이유는 그가 죄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고생하며 힘들게 추수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거절당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상황이나 환경에 대한 것은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악된 행동에 대해 묻고 계십니다. “네가 왜 여전히 안색이 변해있으냐”고 물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비슷한 책망을 하십니다. “왜 너는 화를 내고 있느냐, 왜 너는 좌절하고 있느냐, 왜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왜 교만해져 있느냐, 사랑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고 인내하지 않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세 상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죄악된 행동을 보이는 것은 과거의 어떤 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이나 부모 때문이라고도 하고, 어릴 때부터 당한 성적 학대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모두 “당신 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는 죄악된 모습은 바로 인간 자신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욕심에 미혹되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대답은 과거의 어떤 것이나 부모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저 자신 때문이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무릎 꿇고 제가 죄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답입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초대

 

하 나님은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셨을 때 그가 자신을 돌아보고 낮아져서 회개하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대로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동성애자들은 “나는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태어난 것은 맞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 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마약 중독, 알콜 중독, 교만한 사람, 인내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선 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7)”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는 것은 아주 가까이 와 있는 것입니다. 죄가 가인을 다스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서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아벨을 살해한 것은 죄가 그를 다스린 것입니다. 죄가 마치 먹잇감을 잡으려고 웅크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5:8)” 다윗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한가롭게 있을 때 유혹을 받았고 죄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심판입니다.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 그는 회개했지만 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는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그냥 넘어가지도 않으십니다.

 

 

맺음말

 

우 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과 죄에게 순종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은 지금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교제의 기쁨으로, 영원한 하늘나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죄악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믿을 때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이 초대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 나님을 믿고 계신 분들에게도 이 땅에서 죄와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 우리가 죄악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 죄와 계속해서 싸우는 것은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고 배우며 우리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 고통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싸움이 결코 패배로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 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한 때 죄를 사랑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여러분이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전의 습관을 좇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어려움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넘어지고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유일한 도움이시고 여러분의 소망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