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장 22-25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장로들을 대신해서 인사드립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입니다.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야고보서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야고보서는 서기 49년 경에 쓰인 책으로 당시 교회는 아주 어린 교회였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교회는 많은 고난을 겪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라는 교사들의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쁨으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단지 말씀을 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온 마음을 원하십니다. 믿는 마음을 원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낮아진 마음, 하나님과 합해진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볼 때 말씀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야고보는 본문 말씀에서 ‘믿는 것’과 ‘사는 것’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22절에는 분명한 명령이 나옵니다.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에게 사기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설교를 들을 때, 전해진 말씀의 진리나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설교자의 웅변스타일에 영향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듣고 감동만 받을 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거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속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 지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그렇고 그런 말들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매주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셔야 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21절에서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구원받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설교를 들을 때 ‘그건 이미 들었던 말씀이야. 이것 내가 들을 얘기가 아니고 내 아내(남편)이 들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 교만을 부수실 것입니다.
 
말씀 듣기를 속히 해야 하고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것은 “입을 닫으시고 귀를 여십시오”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말씀을 이해하시고 그것을 삶에 적용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죄악된 욕망을 다스리게 합니다. 우리 마음에 심겨진 말씀이 우리의 영적 건강에 필요한 것입니다.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의 터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회에는 고백만 하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감정적인 것 때문에 교회에 나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얇은 믿음의 시련이 닥쳤을 때 믿음이 흔들립니다. 믿음에는 ‘실제’가 있어야 합니다. 시련이 올 때 이 실제가 없는 사람은 공기 중의 수중기가 사라지듯이 믿음이 사라져 버립니다. 야고보가 여러 번 강조하고 있는 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라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2:13)” 사도 바울도 야고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마13:3,4)”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전도할 때 이 씨가 뿌려지는 것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를 새들이 날아와서 먹어버리는 것은 복음을 들었지만 세상의 것들에 방해를 받는 것입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5,6)” 이것은 처음에 말씀을 듣고 행복해하면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침례를 받을 때 함께 받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와 함께 각 가정을 방문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는 문을 닫으려고 하면 발을 넣어 문을 못 닫게 하면서까지 전도하던 사람입니다. 몇 달 뒤 친구가 사라졌고 그의 아내가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는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전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불타는 열정이 있었지만 곧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 거해야 하고 계속해서 그 말씀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시련이 올 때 여러분은 도망갈 것입니까, 믿음 안에 거할 것입니까. 야고보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7절)”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련이 있을 때 더 이상 주님 안에서 살기 원하지 않는 모습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8,9)” 분명히 말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분들 중에 주님을 알지도 못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의 고백이 고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8)” 주일에 교회에 와서 사람들과 교제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준비가 되셨을 때, 따르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 여기 “모든 족속”에 한국이 포함된 것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또한 20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침례는 좋은 것이고 교회에 가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명령입니다. 저에게는 16살이 어린 동생이 있습니다. 그에게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아직까지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내 삶을 더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저는 “네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하고 그 다음 행함이 따라와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지난 2천년 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앞으로 올 일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고 말했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곧 주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셨습니까? 듣고 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믿는 자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진 것은, 믿는 자가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서 멀어졌지만, 그 형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을 통해 다시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데 실패하는 사람은 복음에 실패한 것이고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교회에 오고 헌금도 하고 봉사도 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그런 교회를 보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존 칼빈은 “순종은 하나님을 아는 것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가 말한 분명한 명령은, ‘명령형의 완료’입니다. 이것이 강조하는 것은 ‘계속되는 의무’입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고백을 나타낼 것,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합니다.
 
논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웃사람이 와서 논에 대던 물을 빼 갔습니다. 그 물을 빼서 자신의 논에 물을 댄 것입니다. 그리고 곧 물을 빼간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는 다시 그 물을 돌려주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받아주지 않는 논 주인을 위해 기도하고 지속적으로 찾아갔으며,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결과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단지 훔쳐온 것을 돌려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서 다른 어떤 종교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우리 교회들은 영적인 스펀지들로 가득 차 있어서 가만히 앉아서 썩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듣기만 하고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1:15,16절)” 야고보가 말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25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찾아와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이었는데 그는 저에게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고후13:5)” 이 테스트에 실패하는 사람은 복음에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하기를 원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완전하다면 은혜를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순종하게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말씀을 받을 때 옛 삶을 뒤에 내버려두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는 것은 ‘고백의 진실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순종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듣기만 하려면 절에 가서 들어도 되고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서 들어도 됩니다. 단지 말씀을 듣기만 할 뿐 삶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과 행동을 바꿀 것입니다.
 
23, 24절에서 야고보는 분명한 예를 보여줍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거울 통해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집에서 나오기 전에 거울을 보셨을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문제를 알았는데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거울을 떠나는 것은, 말씀을 읽고 무슨 의미인지 알았는데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하고 있는 행동을 말합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보려면 관심을 갖고 봐야 합니다. 거울을 제대로 봤다면, 삶 속에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면,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본다’는 말은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 계속해서 시험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삶을 되돌아 볼 시간을 가지십시오. 삶을 늦추시고 그리스도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붙잡아 줄 사람을 찾으십시오.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그렇게 할 것을 권합니다.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변해야 할 것이 있다면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볼 때 ‘잊어버린다’는 것은 고의적인 것을 말합니다. 단지 휙 보고 자신을 대면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어떤 변화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중에 많은 사람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변한다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양심에 무뎌집니다. 그 결과는 더 많은 죄이고, 거울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무언가 실제가 아닌 것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늘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말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거울과 같습니다. 그것을 단지 쳐다보는 것은 충분치 않습니다. 영적인 것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 합니다. 거울이 우리의 흠을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마음속의 흠과 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할 것을 말합니다. 바꿔야 할 것을 가르쳐줍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25)” 여기서 ‘들여다보는 것’은 진심으로 보고 있는 것,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진실된 반응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말씀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그리고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더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것을 봅니다.
 
25절에서 본다는 말은,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있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사용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것을 그들이 주의 깊게 본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여러 가지 면을 바라보십시오. 열심히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변화입니다.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사람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보고 삶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그에 따라 삶이 변할 것입니다.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 도망가게 내버려두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학원 진학을 앞둔 한 부부가 저에게 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 부부는 아이도 없고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알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통해, 사람은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진 사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과 같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이 여러분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쳐서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을 강권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설교가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속적으로 그런 일들에 신실할 때, 하나님께서 복음이 전파되는 많은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아침 아고보서를 통해 하나님의 (제안이 아닌)명령을 보았습니다. 분명한 명령과 예를 주셨고, 그것에 진실 되게 반응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들을 통해 우리가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성도들이 잘 듣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분들의 삶에서 하나님을 행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한국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모든 나라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좋은 일들에 대해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