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 Part 2

본문: 에베소서 4장 11-16절

설교자: 조정의

하나님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실 때 어떤 사람을 목사와 교사, 복음 전하는 자로 삼으신다(11절). 하나님이 택하신 일꾼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이다: ①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 ②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12절).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는 것은 말씀이고(딤후 3:17), 일꾼은 기도와 말씀 사역에(공적/사적) 힘쓰는 것으로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행 6:4; 딤후 4:1-2). 일꾼만 힘쓰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13절).

3.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 통하여 교회를 세우신다

말씀에 이어서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일꾼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는 수단은 바로 사랑의 봉사이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절). 이는 앞에 있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알고 믿는 일에 하나가 될 때, 각 성도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고 믿음이 자란다. 그리고 그럴 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사역(일)에 적합한 자가 된다. 세상은 인격과 성품보다 실력과 재능을 보지만, 교회는 정반대다. 교회는 주님 닮은 성품과 주님을 향한 견고한 믿음, 주님께 충성하는 삶이 어떤 기술, 실력, 재능보다 중요하다.

또 한 가지, 건강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 모두가 봉사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서로 연결되고 결합한 교회의 각 지체가 분량대로 역사하도록 도우신다(16절). 몸의 지체가 각각 제 기능을 할 때, 몸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성도가 각각 자기 분량대로 일할 때, 교회는 건강하게 자란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모습을 건축에 비유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1-22).

튼튼한 건물을 세우려면 터(기초)가 견고해야 하고, 적합한 주춧돌을 세워야 한다. 건강한 교회의 터 그리고 모퉁잇돌은 사도와 선지자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증언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엡 2:20). 터가 견고할 때,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건물을 이루는 각각의 자재가 서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하고 제자리에 잘 배치하는가다. 벽돌이 일정한 간격으로 잘 맞물려 쌓아질 때, 모든 힘의 균형이 골고루 분배되어 튼튼한 벽이 세워지는 것처럼, 성도는 각자에게 주어진 분량대로 다른 성도를 지지하고 세워주기 위해 일한다. 그렇게 건강한 교회는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함께 지어져 가는 건물의 비유에서 가장 경이롭고, 전율하게 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엡 2:22).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곧 성전이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맺은 열매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성령이 주신 은사로 서로 봉사할 때, 건강하게 세워진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면 아버지와 함께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하겠다고 말씀하셨다(요 14:23; 계 3:20).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 살아있는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교회, 하나님의 영광 곧 그분의 지혜와 능력과 사랑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교회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성도가 사랑의 봉사로 서로 섬기는 일을 방해하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 은사에 관한 오해다. 어떤 사람은 직분자(목사, 장로, 집사)나 리더(교회 안의 크고 작은 무리)만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오해한다. 교사, 찬양 인도자 등 특별한 재능이 드러나는 은사를 가진 자만 정식으로 섬기는 것이고, 나머지 봉사는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돕는 것뿐이라고 본다. 이것은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은사를 “신령한 것”으로 본다(고전 12:1).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성령께서 자기 뜻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셨다(고전 12:11). 성경이 말하는 은사 중에는 “교사” “다스리는 것”도 있지만, “서로 돕는 것”(고전 12:28)과 “섬기는 일”(롬 12:7),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롬 12:7), “봉사”(벧전 4:11) 등도 있다. 모든 은사가 요긴하고, 필수적이고, 귀하고, 아름답다. 

많은 사람이 은사를 생각할 때, 세상의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여온다. 머리와 입술로 하는 일을 하면 고급 인력, 손과 발로 하는 일을 하면 상대적으로 저급인력으로 취급한다(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 오용, 눅 10장).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봉사의 일”은 절대로 세속적인 방식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 봉사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디아코노스는 기본적으로 “하인”을 뜻하고, 동사형 디아코네오는 “수종 들다,” “섬기다”의 뜻을 갖는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인 자신의 직분을 가리킬 때(롬 11:13), 집사의 직분을 가진 자를 가리킬 때(빌 1:1), 각각 이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직분과 상관없이, 하는 일과 상관없이, 우리가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종처럼 섬기는 일이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서로 큰 자가 되려고 싸우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마 23:11).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라고 하셨다(눅 22:27). 직접 본이 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겸손히 서로 섬겨야 한다. 건강한 교회는 그렇게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는 교회다(16절). 

둘째, 부르심에 관한 오해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봉사의 일로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지 확인하려고 애쓴다. 가령, 주일 아침 주보를 나눠주며 성도를 문안하는 봉사가 자기에게 적합한지 따져보는 것이다. 낯을 많이 가리고, 성도와 인사하는 것이 어색한 자신을 하나님이 그 봉사의 일로 부르실 수는 없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서 자기 말고 보낼 만한 자를 보내시라고 거부하는 모세를 끝까지 부르셔서 사용하셨다. 나에게 맞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제의받았을 때 내키는 일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지 말라. 봉사(디아코노스)의 어원은 식탁에서 하인이 시중드는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하인은 주인이 무엇을 요구하든지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섬김이 요구되는 일이면 뭐든지 주께서 부르시는 일로 여기라.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혹은 적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15절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라고 말한다. 더 정확한 해석은 우리말 성경이 번역한 것처럼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며”이다. 교회가 함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데 있어서 성도는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서로를 섬길 수 있다. 진리를 사랑 안에서 말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대단한 재능, 엄청난 지식과 경험,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체 성도를 앞에 두고 할 수도 있지만, 가까운 성도 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섬김이기도 하다(모든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두 가지를 주의하라. 항상 진리만을 말해야 한다. 성도가 듣고 싶어 하는 말, 기분 좋게 하는 말만 하려고 하지 말고, 그에게 꼭 필요한 진리, 하나님의 뜻을 담대하게 전하라. 하지만 항상 사랑 안에서 하라. 오래 참고 온유하게, 무례하지 않게 그리고 자기를 나타내거나 반대로 상대방을 깎아내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여 말한다는 것을 상대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겸손한 태도로 말하라. 우리는 말로 서로를 섬길 수 있다.

이제 봉사의 일을 할 때 쉽게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겠다. 첫째, 원망과 시비의 문제다. 성경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명령한다(빌 2:14). “원망”의 또 다른 뜻은 ‘투덜거림’이고, “시비”는 ‘논쟁,’ ‘언쟁’을 의미한다. 우리는 봉사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쉽게 투덜거린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서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빌립보 교회에서 바울과 함께 복음에 힘쓰던 두 여인,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원망과 시비로 봉사의 일을 함께하는 데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바울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두 사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했다(빌 4:2). 성도들이 봉사에 힘쓸 때, 반드시 주 안에서 같이 품어야 할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이다(빌 2:5). 

겸손은 주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자기 권리를 자기 유익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기꺼이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 목숨을 자발적으로 내어놓기까지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이다. 

당신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를 깊이 생각하고 그 본을 따르라. 그분의 섬김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다(요 13:1, “자기 사람들을…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리고 그분의 사랑은 겸손과 온유로 옷 입은 섬김으로 나타났다. 가장 낮은 계급의 종이 해야 할 발 씻기는 일을 주와 선생으로서 친히 행하셨다(요 13:4-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때로는 가장 헌신적으로 많이 봉사하는 성도가 원망과 시비의 문제를 만든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성도가 못마땅한 것이다. 성도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자기 역할을 하여 건강한 교회를 함께 이루어가기를 바라는 건 좋은 마음이다. 하지만 분노와 원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왜 봉사하지 않냐’고 책망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주님처럼 사랑으로 이끌라.

둘째, 자랑과 교만의 문제다. 고린도 교회는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교회다(고전 1:7). 특별히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한 교회였다(고전 1:5). 하지만 그들은 주께서 맡기신 은사로 성도를 섬기는 일에 충성하는 청지기 자세가 아니라, 주께 받은 은사를 자기의 것으로 여기고 자랑하는 교만한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이렇게 책망했다: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성도가 받은 은사로 서로 봉사할 때, 반드시 ‘자랑하지 않는’ 사랑의 특징을 가져야 한다.

내가 몇 사람에게 전도 했고 침례를 줬다고 자랑하지 말라. 내가 얼마나 오래 봉사했고 또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자랑하지 말라. 어떤 교회는 헌신과 봉사를 자랑하도록 부추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건강한 교회는 언제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난다. 건강한 교회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미천한 그들을 통하여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를 자랑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자. 성도를 섬기는 일에 수고하는 이들을 알아주는 것은 서로에게 격려와 기쁨이 되는 좋은 일이다: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고전 16:18). 문제는 ‘자신을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분노하고 불평하고 실망하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알아주시는 것을 기대하고 또 주가 알아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편지하실 때,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안다고 말씀하셨다(계 2:2). 주께서 다 아신다.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진실로 약속하셨다(마 10:42).

당신은 둘 중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하는가? ① 만 명의 성도로 구성된 교회인데, 세계 최고의 설교자이자 목회자와 100여 명의 헌신적이고 뛰어난 일꾼이 섬기고 있고 나머지는 참석만 하고 있는 교회. vs. ② 백 명의 성도로 구성된 교회인데, 평범한 수준의 성실한 목회자와 99명의 사랑으로 봉사하는 성도가 함께 섬기는 교회. 어떤 교회를 이루어 가기 원하는가?

여기 분명한 사실이 있다. 당신은 분명히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 건강한 신체, 정신, 체력과 열정, 시간과 물질, 재능과 소원 능력과 지혜 등 하나님은 분명히 당신에게 필요한 만큼 주셨다. 따라오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교회를 사랑으로 세우기 위해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우리 모두가 일하는 지체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하고, 당신이 기능해야, 교회가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