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진노의 일곱 대접

본문: 요한계시록 16장

설교자: 조정의

대한민국은 1997년 12월 30일 이후로 20년 이상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었다. ‘사형’은 가장 극심한 형벌이라서 ‘극형’이라고도 한다. 수형자의 목숨을 끊어 존재를 영구적으로 말살하는 형벌이다. 갱생 및 교화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않는 최종 심판이다.

교회 시대가 휴거로 막을 내린 후 약 7년동안, 이 땅에 쏟아질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는 본문에 나오는 일곱 대접 심판 이전까지 회개의 기회와 함께 주어졌다. 일곱 인의 심판과 일곱 나팔의 심판은 끔찍하고 파괴적이지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노하기를 더디 하심이 반영된 심판이었다. 공의와 함께 은혜를 베푸셨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노의 일곱 대접은 다르다. 끝까지 반역자가 되기를 고집하는 악인에게 결국 하나님은 인내를 멈추신다. 

일곱 대접 심판은 직전에 쏟아진 일곱 나팔 심판(계 8-11장)과 같은 종류도 있지만, 1) 오직 악인을 표적으로 한다는 점, 2) 최고의 강도라는 점, 3) 최종적 즉 회개의 기회가 박탈되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둘 다 구약 시대 애굽에 쏟으신 하나님의 진노의 가중형이지만,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인 일곱 대접 심판은 그중에서도 최고 극형에 해당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악인을 영구적으로 말살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인내하기를 멈추셨을 때, 죄인에게 선포하신 심판과 의인에게 약속하신 복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인내심엔 끝이 있다

① 첫째 대접(땅): 악하고 독한 종기(2절; 출 9:8-12)

역겹고 독한 농양(고름)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른다. 치료 불능이다. 걷든지 앉든지 눕든지 쉼 없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하루 종일 질그릇으로 자기 몸을 긁으며 고통스러워했고, 친구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한 모습이 됐다(욥 2:7-13). 언약궤를 가져간 블레셋 도시들.

하나님께서 이 끔찍한 심판을 내리시는 대상은 분명하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2절). 하나님은 땅에 있는 자기 백성은 보호하시고(계 12:14), 오직 반역자의 편에 서는 자들에게만 최종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전염병에서 자유로울 죄인은 없다.

② 둘째 대접(바다): 바다가 피로 변함(3절; 출 7:14-25)

이미 둘째 나팔 심판으로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었다(계 8:8-9). 하지만 둘째 대접 심판은 극형이다. 조금도 남겨 두지 않고 바다 전체를 죽은 자의 피 같이 되게 하신다. 유동적이지 않고 응결되어 굳는다. 응고되어 썩는다는 말이다. 생명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모든 바다 생물이 죽고,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대양의 파괴로 사람들은 매매에 회복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입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③ 셋째 대접(강과 물 근원): 수원이 피로 변함(4-7절)

마찬가지로 세 번째 나팔 심판 때 하나님은 강들과 여러 물 샘의 삼분의 일을 오염시켜 많은 사람을 죽이셨다(계 8:10-11). 하지만 세 번째 대접 심판은 최고 강도이다. 모든 강과 물 근원이 피로 변한다. 식수를 얻기 위해 깊이 땅을 파도 소용없다. 마실 수 없는 독한 피가 흘러나올 뿐이다. 식수 부족으로 전 세계적인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5-7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이렇게 무서운 극형을 왜 내리시는지 두 음성을 통해 들을 수 있다. 먼저, 물을 차지한 천사(바람, 7:1, 불, 14:18)는 일곱 천사에게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큰 음성으로 명령하신 하나님(1절)을 가리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라고 높여 불렀다(5절). 그리고 그분의 심판이 의롭다고 그분이 하신 일을 인정하고 찬양했다. 왜?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6절).

하나님은 임의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오직 적그리스도의 백성만 심판하신다. 왜 이런 방식과 강도로 심판하시는가? 그들이 하나님 백성을 박해하여 피를 봤다면, 그들도 피를 마시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시 78:44). 곧바로 제단이 “그러하다” 화답하며 했다(7절). 제단은 순교 당한 성도의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께 바쳐진 곳이다(계 6:9; 8:3).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7절). 하나님은 대 주재이고 전능하신 심판 주시다. 그분께 반역하는 자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혜와 자비를 거절한 자들을 이렇게 처벌하시는 것이 공의롭고 진실하다.

④ 넷째 대접(해): 태양이 불로 태움(8-9절)

네 번째 심판은 새롭다. 출애굽 때나 대환난 기간에 없었던 재앙이다. 하나님은 를 통하여 심판의 권세를 휘두르신다. 맹렬히 타는 불로 사람들을 태워 화상으로 죽을듯한 고통을 겪게 하신다. 정관사가 붙은 “(그) 사람들”은 심판의 대상이 계속 같다는 걸 말해준다. 온몸에 종기가 나 쉼 없는 고통에 시달린 자들은 굶주림과 갈증에 허덕이다가 심각한 화상까지 입게 될 것이다.

⑤ 다섯째 대접(짐승의 왕좌): 암흑(10-11절; 출 10:21-29)

넷째 나팔 심판으로 광명체(해, 달, 별들)의 삼분의 일이 이미 빛을 잃었다(계 8:12). 하나님의 최종 심판, 다섯째 대접이 미치는 범위는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영역(짐승의 왕좌)에 국한되지만, 강도는 최강이다. 삼분의 일이 아니라 완벽한 암흑이다. 빛이 공급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지만, 직접적인 고통을 가하진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아픈 것과 종기로(11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고통은 증폭된다. 얼마나 괴로운지 사람들은 아파서 자기 혀를 계속 깨물 지경까지 이른다(문자적: 씹다).

⑥ 여섯째 대접(큰 강 유브라데): 큰 강이 말라버림(12-16절)

다섯째와 여섯째 나팔 심판 때, 하나님은 무저갱에서 나온 황충(악한 영적 세력)과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를 통해 불러낸 마병대를 통해 땅에 전쟁을 일으키셨는데(계 9장), 이와 유사한 방식이지만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하나님은 무저갱 소속 거짓 삼위일체 입에서 나온 더러운 영을(귀신의 영, 14절) 통하여 온 천하 왕들을 불러 모으신다. 본문에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개구리로 상징된 세 더러운 영은 각각 , 짐승,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왔는데, 14절에 나오는 것처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을 미혹하고 한 곳으로 모은다(16절). 하나님께서 큰 강 유브라데를 마르게 하신 이유도 같다.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예비하신 것이다(12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군사력이 한 곳, 아마겟돈에 모인다(16절). 아마겟돈은 므깃도(메깃도)라고 하는 산악 지역(하르)을 가리킬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에서 수많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치러졌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14절, 욜 2:11; 슥 14:2-3; 19장).

⑦ 일곱째 대접(공중): 지진과 우박 심판(17-21절; 출 9:23-4)

마지막 일곱째 대접이 공중에 쏟아질 때, 성전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났다: 되었다!”(18절). 이제 ‘다 끝났다’는 말이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의 죗값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치르셨다고 외치신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를 버린 자들의 죗값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찾으셨다고 외치신 것이다.

큰 음성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가장 강력한 형태로 이 땅에 나타난다. 번개, 음성들, 우렛소리 그리고 큰 지진(계 8:5; 11:19). 얼마나 큰 지진인지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다고 말한다(18절). 지진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으로 없어지고 산악도 땅으로 꺼진다(20절). 전 세계적으로 지질학적인 대변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19절에서 큰 성, 만국의 성들, 큰 성 바벨론의 땅에 격변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 먼저 큰 성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계 11:8), 선지자 스가랴(14:4-5)가 예언한 것처럼 주의 날에 도시 지형의 변화를 맞게 될 것이고, 이방 민족들의 성들은 무너질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큰 성 바벨론 곧 적그리스도 왕국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원수의 나라를 기억하시고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게 하실 것이다. 

지진과 함께 하늘에서 쏟아질 심판은 무시무시한 우박(큰 우박)이다(21절). 무게가 한 달란트(50~60kg)에 육박한다. 1986년 방글라데시에 1kg 대형 우박이 내려 92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50-60배 무게). 딛고 있는 땅이 무섭게 흔들리고 하늘에서는 살인 우박이 쏟아져 내리는 것으로 진노의 일곱 대접 심판은 막을 내린다.

히브리서 기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히 10:31).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참고만 계신 분은 아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지만, 죄악을 방관하시는 분은 아니다. 지금 인내하신다고 해서 그 인내심에 끝이 없을 거라고 기만하지 말라. 당신을 향하여 펼친 손을 거두실 날이 곧 온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고, 구원의 날이지만, 그날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얻을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하라’고 당신을 부르신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날마다 당신에게 값없이 제시하신 생명수를 끝까지 거절한다면, 그 값을 제대로 치르게 될 것이다. 

2. 죄인의 반항심엔 끝이 없다

진노의 일곱 대접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훨씬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죄인들이 보인 반응이다(9, 11, 21절). 

그들은 괴로워한다. 큰 재앙으로 고통스러워한다. 그들은 누가 심판하는지 안다. 하지만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끝까지 거부하고 도리어 비방한다. 그분의 이름을 모욕한다. 마치 수많은 전과를 가진 범죄자가 감옥에서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고 나와서 실행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조금도 교화되지 않는다. 갱생이 불가능하다. 완고하고 반항적인 마음을 돌처럼 굳혀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한다.

비그리스도인도 신사적일 수 있다. 도덕적일 수 있고, 그리스도인보다 더 부지런하고 성실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착하고 인격적인 사람도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라는 지속적인 초청을 받으면, 고집스럽게 거절하는 반항심을 보인다. 그 반항심은 끝이 없다. 60kg 우박이 떨어지고, 맹렬히 타는 불로 몸이 타고, 밤낮 종기로 고생해도, 그 고집은 꺾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으로 약속하신 복음의 능력은 딱딱한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시는 것으로 시작한다(겔 11:19; 36:26). 당신 마음에 있는 돌 같은 반항심을 보라. 문제의 심각성을 알라. 유일한 치료자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의 영혼을 의탁하라. 운명을 걸고 간절히 구하라.

3. 의인의 신실함엔 복이 있다

본문은 온통 악인에 관한 내용뿐인 것 같지만, 딱 한 구절 의인에게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있다: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5절).

주님은 믿는 자들이 항상 깨어 있기를 원하신다(눅 21:36).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말라’는 권면과 ‘부끄러움을 보이지 말라’는 권면은 같은 내용이다. 성도가 입고 있는 옷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거룩한 의복이다(계 7:14).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성도들이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말했다(계 19:8). 그러므로 주님의 권면은 예수님 안에서 거룩함을 입은 그대로 경건하고 거룩한 행실을 계속해서 가지라는 권면이다. 정결하고 의로운 신분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삶을 버리라는 것이다.

많은 신자가 주님의 권면을 참고할 만한 조언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주님은 임금의 잔치에 왔다가 손발이 묶여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져지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 사람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그는 예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마 22:12-13).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 오직 그런 자만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보호를 받는 백성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벧후 3:11-12). 신자의 마음에서는 고집스러운 반항심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충성심이 발견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복을 상속받을 자처럼 오늘 복 있는 삶을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