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예수님께 열정을 배우다
본문 : 요한복음 2장 13~22절
설교자 : 이 병권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여러분은 누구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으십니까? 우리가 누구와 닮았다는 말을 들을 때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때로는 그것을 부정하며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말은 누구와 닮았으면 하는 대상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상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닮고 싶으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고 그 분을 닮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을 닮는 것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분을 닮도록 빚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은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외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보통 잘 생각하지 않는 예수님의 특징적인 모습인 열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모습을 닮을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께 열정을 배우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월절을 맞아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세 절기 때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 세 절기는 유월절이 있고, 다음으로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칠칠절이 있고, 그리고 수장절이라고도 하는 초막절이 있습니다. 세 절기를 맞으면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성전에 와서 그 명절을 경축해야만 했습니다.

특별히 유월절은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의 탈출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매년 봄에 찾아왔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때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가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상징적인 식사를 하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 묵상하며 학습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데리고 유월절 절기를 기념하러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가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드리는 교회 건물, 예배당 같은 곳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그곳에 임재하시겠다고,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한 굉장히 특별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향해 가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마 큰 기대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그분의 임재와 위엄을 경험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보기를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런 부푼 마음을 갖고 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성전에 도착해서 그분이 본 것은 그분이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라기보다 마치 시장 바닥 같았습니다. 대목을 맞아 한 몫 크게 챙기려는 장사치들과 뭔가 좋은 것을 사려는 군중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본 것을 14절에서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것을 보셨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 그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희생 제물들입니다. 사람들이 성전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먼 곳에서부터 오기 때문에 제물들을 가지고 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편리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희생 제물을 팔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돈 바꾸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20세가 넘은 유대인 남자들은 매년 성전 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 잡힌 후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외국 돈을 가지고 오거나 성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돈을 가지고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성전에서 사용가능한 동전으로 바꾸어 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서비스는 예배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들이 이 절기를 이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예배자들이 희생 제물을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악용해서 가격을 부풀렸습니다. 쉽게 말해 바가지를 씌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일이 성전에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있는 ‘이방인의 뜰’이라는 장소에서 장사가 행해졌습니다. 이방인들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그 곳에서 이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장사꾼들이 이방인을 위한 그 자리를 가득 매워서 막상 이방인들이 기도하고 예배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빛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사명은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전에도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을 위한 공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장사꾼들이 자신의 배를 채우는 공간으로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인을 위한 자리를 없애버렸습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저버린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서 이렇게 한다면 어떨까요? 헌금을 내실 때는 반드시 교회 도장이 찍혀있는 봉투에 넣어야 합니다. 다른 봉투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리고 예배당 뒤편에 여러분이 봉투를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판매를 시작합니다. 봉투 한 장의 가격은 10만원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으니 모두 10만원을 내고 이 봉투를 구입해서 헌금하십시오. 만약 교회에서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교회가 다 있어? 그러면서 다른 교회를 찾아 떠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라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드리고 싶은데 예배드릴 수 있는 장소가 여기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당하고 말이 안 되는 일이라도 어쩔 수 없이 봉투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사람이 장사하는 장소로 변질되었고,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자리에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입니다.

가장 추한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 그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릴 때입니다. 가장 더러운 것은, 거룩한 것이 타락했을 때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 사람의 욕심에 의해 더러워지고 그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성전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몹시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을, 정말 극적이고 도발적인 행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그것 휘두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채찍으로 희생 제물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양과 소들이 막 “메에에” 하며 도망가고, 사람들도 놀라서 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돈을 쏟아버리시고 상을 뒤집어엎었습니다. 동전들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튕겨져 나갑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파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들이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리고 그분은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에게 소리를 치십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예수님께서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일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세상에 향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는 열정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이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보셨을 때, 그분은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품으시고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렇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상인들은 아마 “멘붕”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에 젊은 30대 청년이 이렇게 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 때 당시 예수님의 나이는 저랑 비슷했을 것인데, 제가 이렇게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교회에서 콘서트나 어떤 행사를 하면 CD나 책들을 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거기다 ‘화가 난다 화가 난다’ 이러면서 상을 엎고 CD파는 사람을 내쫓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를 그냥 두시겠습니까? 그 후로 저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을 본 제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고 계신 동안에 제자들은 아마도 한 발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속에 구약 시편에 기록된 한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것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적인 말씀이었습니다.

17절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복음서를 보면 구약 성경이 예수님의 행동을 설명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옛적부터 약속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온전히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열정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하나님께 드려진 예배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제사장들이 용감하게 일어난 모습을 본적이 있었던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눈앞에 행해진 불의에 대해서 분노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본적이 있었던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하고도 간절한, 그 열정적인 모습을 언제 보았던가?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따르고 있는 예수님에게서 그런 열정을 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얼마나 열정적인 분이신가를 극적으로 묘사해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냥 사람 좋은 분이 아닙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유 없이 ‘허허’ 웃기만 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아무렇게나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막 폭발하는 그런 분은 더더욱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열정으로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피 끓는 마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으로 살았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안전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사실 오늘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 예수님에게 굉장히 위험한 사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장사하는 사람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그 당시 성전을 장악하고 있던 실권자들인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제 서른 살이 넘은 젊은 랍비가, 아무런 정치적인 힘도 없는 랍비가 그 거대한 권력에 맞선 것입니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위험을 무릅쓴 것입니다.

이것은 랍비로서 예수님의 이미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성에 흠이 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이 수근 거리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입고 돌아서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이미지 관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께 그 마음이 완전히 사로잡힌바 되어서 더 중요한 것을 바라보시고 그것을 위해 일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시장처럼 장사하는 집이 되고, 이방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며, 성전이 “성전” 되며, 예배가 “예배” 되는 것. 이것이 예수님 평생의 열정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채찍을 드셨습니다.

우리가 더 예수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런 열정을 본받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교회와 사명에 대해서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열정은 어떠하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나의 열정을 온도계로 측정한다면 얼마가 나올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지금의 열정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만족하실 수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과 같은 열정을 가진다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예배당에 앉아있거나, 그냥 예배를 구경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진 않을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 해야 하는 숙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더 주님을 닮도록 하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윌버리스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해줍니다. 제가 좀 수정한 내용입니다. 들어보십시오.

"나는 3만원어치 하나님을 사고 싶습니다.

나의 인생이 사로잡히지 않을 만큼, 나의 수면에 방해 되지 않을 만큼만, 따뜻한 한 잔의 우유와 같은 하나님, 햇살 속의 졸음 정도에 해당하는 하나님을 나는 원합니다.

나는 호주머니에 넣을 만큼의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이웃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도록 만드는 하나님은 거절합니다. 나의 마음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 시간이 날 때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정도면 됩니다.

나는 감격스러운 느낌을 원하지만 변화는 바라지 않습니다. 새로운 탄생이 아니라, 그냥 엄마 뱃속의 따뜻함을 즐기고 싶습니다. 나에게 종이가방에 담을 수 있는 만큼의 영원을 담아주십시오. 그 이상을 사야 한다면, 무르고 돈을 되돌려 받겠습니다.

나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버릴 수 있을 만큼의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을 만큼만, 내 안에 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나를 보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면 됩니다.

이렇게 3만원어치 하나님을 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정도면 충분한 겁니까? 정말 이 정도의 하나님이면 되는 겁니까?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께 쓰임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들에 대해서 반드시 열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열정은 우리의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18세기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았던 사람 중에 조지 휫필드가 있습니다. 이 분은 20대 부터 시작해서 56세, 죽기 직전까지 설교를 하신 분입니다. 불타는 열정으로 영국은 물론 미국 전역을 7번이나 돌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일주일에 보통 40시간, 많은 경우 60시간 이상, 말씀을 전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부흥이 일어나고 수만 명이 회심했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야외에서 설교를 하는 옥외 설교의 창시자로 유명합니다. 그 당시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바깥에서 설교를 한 것입니다. 탄광에서, 시장에서,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설교를 했습니다. 한 번은 3만 명까지 사람들이 모였고, 마이크도 없이 설교를 하는데 3만 명이 들었다는 겁니다.

조지 휫필드가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마음속에 있는 확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성령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18세기 부흥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지 휫필드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썩어서 죽기보다 닳아서 사라지고 싶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열정으로 충만한 예수님을 닮은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실 18세기 설교자인 조지 휫필드만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서 이런 열정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고, 책으로 접할 수 있는 많은 위인들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뜨거운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 안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으로 수고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계속해서 그런 분들이 더 많아지고 더 뜨거워지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혹시 이 가운데는 나도 그런 열정을 가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저는 딱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열정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열정을 가진 분과 함께하십시오. 열정은 불과 같습니다.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불은 번지게 됩니다. 정말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과 함께 하면 그 열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열정은 전염성이 강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변화를 일으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적으로는 열정으로 충만하신 우리 주님과 교제하십시오.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초청해서 말씀과 기도로 그 분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주님과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분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더욱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자기 부인인 지니 헨드릭스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여자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꼭 그런 분이십니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더 섬기고 싶고, 정말 내 인생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말 내 헌신과 열정과 충성을 이 위대한 분에게, 이 고상한 분에게, 이 놀라운 분에게 드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주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교제하십시오. 여러분의 열정을 위해서 열정을 지닌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십시오. 개인적으로 만나서 교제할 수도 있고,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여러 책을 통해서나 정말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열정을 개발하는데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예수님은 영적으로 미지근한 상태를 견딜 수 없어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으로 하여금 구토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우리 교회를 보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는 열정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열정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으로 말씀하시며 자신의 희생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전을 주시려는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열정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온전히 희생하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예배가 허락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장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새로운 예배, 그 참된 예배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허무시고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그분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한 목적으로 오셨고 그 목적을 이루는 일에 뜨거운 열정으로 충만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을 향한 열정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뿐만 아니라 장소에 관계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고,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우리에게 힘든 일도 감당하게 하며, 다시금 새 힘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십시오. 우리의 예배가 열정으로 가득차서 드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진다면, 우리의 삶과 신앙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열정이 전염되어서 누군가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십시오. 그런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열정과 생명력으로 충만한, 그래서 이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이곳은 세상과 다른 곳이다. 이곳에는 뭔가 열기가 있다.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예수 닮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을 맺으면서, 시인 안도현의 연탄 한 장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여러분은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연탄 한 장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자신을 다 태워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연탄 한 장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기꺼이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인생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누구에게 연탄 한 장이 되겠습니까? 지금 주님을 위해 연탄 한 장처럼 살겠다고 결단하십시오. 하나님과 그분이 사랑하시는 교회와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연탄 한 장이 되어 자신을 태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