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향력있는 삶의 비결
본문 : 창세기 19:1-38
설교자 : 이 병 권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라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명절이 되어서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을 만나고, 친척들과 함께 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족들과 친척들을 생각하면, 마음에 큰 부담이 있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날만큼 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2주전에 저는 작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저의 친척 중에 또 한분이 예수님을 모르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어떤 간증을 남기고 있나? 나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가족과 친척들에게 정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데,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내가 믿는 예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고 싶은데,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영향력 넘치는 삶을 살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번 추석을 맞으면서도 가족을 만날 수 있어 즐겁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마음의 부담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믿는 자로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저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입니까?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며, 가족과 친척에게는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친구나 회사 동료나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특별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롯을 통해서 그 방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롯이 잘해서가 아니라, 롯의 실패를 보면서 그의 영향력 없는 삶을 통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창세기 19장입니다(창19:1-38).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 말씀을 따라 정든 고향을 떠났을 때,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나섰던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롯도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7절과 8절을 보면, 베드로는 롯을 ‘의로운 자’라 말합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을 믿었던 의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자였습니다. 자신의 속한 지역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가족에게도 아무런 선한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14절을 보면, 롯이 자신의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무엇이 롯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저는 두 개의 키워드, 두 개의 핵심 단어로 그 원인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영향력 있는 삶의 비결! 그 첫 번째 키워드는 “기준”입니다. 창세기 19장은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기 위해 소돔에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롯은 그들을 보고 간청하여,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큰 소동이 벌어집니다. 소돔의 백성들이 롯의 집에 특별한 사람들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은 롯의 집으로 몰려와서, 그 사람들을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겠다는 겁니다. 소돔의 백성들, 그러니까 소돔의 남자들이 천사들과 동성애를 하겠다는 겁니다. 소돔은 이처럼 너무나 타락하고, 악하고, 무례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롯은 어떻게 했을까요? 롯은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 밖으로 나가서 그 남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7과 8절입니다.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롯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게 아버지가 할 말입니까? 무슨 이런 아버지가 다 있습니까? 너희 눈에 좋을대로 하라니요. 롯은 자신의 손님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자기 딸들을 소돔의 남자들에게 내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정말 말이 안 되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롯은 소돔에 살면서 소돔에게 영향을 주기 보다는 그 타락한 도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또 다른 악을 제안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어떻게 도덕적인 힘을 가지고 살겠습니까? 윤리적인 기준이 제대로 서있지 않고,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이익이 되면 이렇게 했다가 아니면 저렇게 했다가 기준 없이 상황에 따라 그냥 살아가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기준이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가치 있는 것을 분별하는 기준이 뒤죽박죽되었습니다. 마치 사사기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준 없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 기준을 분명히 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사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왜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욕을 먹는 걸까요? 그것은 세상과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기준으로, 세상의 가치대로, 세상의 방법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세상과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내가 편한 대로, 내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뭔가 달라야 영향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서로 아무런 차이가 없고, 비슷비슷한데 무슨 영향력을 미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분명한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저희 집 벽에 선반을 달았습니다. 드릴을 가지고 벽을 뚫고 못을 박았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기술이 늘었다는 아내의 말에, 선반을 두 개나 달았습니다. 그런데 선반을 달면서 좌우 수평이 맞아야 되는데, 제가 보기에는 왼쪽이 올라간 거 같고, 아내는 계속 오른쪽이 올라간 거 같다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아내의 의견에 따라 조정했습니다. 결국 저희 집 선반은 삐딱합니다. 크게 표가 나지는 않지만 삐뚭니다. 정말 바르게 설치하려면 눈으로 보고, 감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될 수 있는 ‘자’를 사용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기준이 있어야 그 인생이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올바로 세우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그 기준을 가지고, 그것에 따라 우리의 삶을 세워나가야 하는 겁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시대의 모습, 이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영향을 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우리의 정신입니다. 우리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지성입니다. 우리의 기준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고, 그럴 때 우리는 힘을 가질 수 있고, 그럴 때 우리가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겁니다.

영향력 있는 삶의 비결! 두 번째 키워드는 “사랑”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두 천사는 소돔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고, 그 소돔에서 롯을 그리고 그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왔습니다. 굉장히 긴급한 사명을 띠고 온 것입니다. 시간을 다투는 급박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저녁때에 천사가 왔었고, 롯에게 성 밖으로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롯은 무슨 이유인지 계속해서 지체하고 있습니다. 꾸물대고 있는 겁니다.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까지도 여전히 소돔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이 성을 멸하실 것인데,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마침내 천사들이 롯의 손을 잡아 밖으로 이끌어냅니다. 롯은 천사들에게 등 떠밀려서 소돔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15절과 16절입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여러분, 롯이 왜 꾸물거렸다고 생각하십니까? 동작이 느리기 때문일까요? 롯이 아무리 동작이 느리고, 느긋한 성격이라도 이 상황에서는 움직여야죠. 롯이 꾸물거린 이유는 이것입니다. 소돔에 미련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돔은 롯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구약 학자 키드너의 “유황과 불도 롯을 순례자로 만들지 못했다”는 말처럼 롯은 소돔에 깊이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소돔이 멸망당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소돔이 너무 좋아서 강한 애착이 있었던 것입니다. 소돔이라는 세상에서 만족해하며, 모든 즐거움을 누리고, 적당히 쾌락도 맛보면서 살아왔던 겁니다. 당장에 잘라버릴 수 없을 만큼 너무 좋았던 겁니다. 지금 멸망한다고 말하는데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안 들리고, 좀 더 그곳에 머무르면서, 좀 더 누리고 싶어 할 만큼 소돔이 롯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롯은 소돔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꾸물거린 것입니다.

이것은 롯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도 롯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7절을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롯처럼 소돔을 사랑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를 보면 데마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데마는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어려워지니까 바울을 떠나는데, 그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이 세상을 사랑한 데마가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의 인생은 그냥 이 세상을 사랑했다 라는 이 한마디로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데마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 그 사람, 세상을 사랑한 사람, 그래서 바울을 버린 사람“ 이렇게 기억하는 겁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이런 평가를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데마, 사실은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인데,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 역사를 바꾸는 일에 동참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 그 놀라운 기회를 모두 버리고, 데마는 세상을 사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았던 바울은 어떠합니까? 비록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어야 했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이 바라보고 기대했던 그 면류관이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사모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정말 영향력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자리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 만나기를 기대하고, 그 주님을 바라고 소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 다리를 걸치고,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그렇게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교사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너희는 부자와 나사로 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그러자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생님, 저는 살아서는 부자가 되고, 죽어서는 나사로가 되고 싶어요.” 이 아이가 우리와 얼마나 닮아 있습니까? 우리도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삶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즐기면서, 하나님의 영적인 유익을 누리는 삶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친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영적인 간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자신에게 질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정직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이고, 무엇이 여러분의 잠을 깨웁니까? 무엇 때문에 여러분은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여러분은 슬퍼하십니까? 무엇을 위해서 기꺼이 돈을 쓰고,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어떨 때는 시간이 아까운데, 돈이 아까운데, 어떨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정말 우리의 모든 사랑을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는 분, 온 우주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가장 존귀하신 분, 우리의 소망이 되시며, 우리가 사는 이유가 되시는 그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오히려 나를 속이고 내 영혼을 자꾸 죽이려고 하는 이 세상을 바보같이 짝사랑하고 있습니까?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그분을 버려두고, 혹시 이 세상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을 내 인생의 첫째 자리에 놓으며, 온 마음을 다해서 그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내 인생에서 하나님과 경쟁하는 다른 것들을 물리치고 그분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분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히 우리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더 넓은 마음으로,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롯은 소돔을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며, 의인 10명이 있으면 소돔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롯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위들도 있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몇 명입니까? 6명입니다. 만약에 롯이 자신의 가족과 더불어 4명에게 더 영향력을 미쳤더라면 소돔은 멸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롯의 아내는 멸망당하는 소돔에 대한 미련 때문에 천사들이 전한 경고를 무시해서 소금 기둥이 됩니다. 그리고 롯의 두 딸은 소돔이 멸망당한 이후에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죄악을 저지릅니다. 롯은 소돔의 멸망으로부터 구원은 받았지만, 실패한 인생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그의 가정과 타락한 세상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소돔을 구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냥 나 한 몸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학교, 우리의 주변에 선한 영향을 주며,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멸망을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기회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가 올바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속한 곳은 여전히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아니 더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이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러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고,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교회로 모아주시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세상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말씀에 근거한 기준대로 행하십시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하여 내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