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본문: 요한계시록 22장 13절 – 21절

설교자: 조정의

전도서의 결론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로 시작한다(전 12:13). 베드로후서의 결론은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로 시작한다(벧후 3:11). 요한계시록의 결론이자 모든 성경의 마지막 계시는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시작한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받아 천사를 통해 요한이 쓰게 하신 계시록에서 우리는 일의 결국을 봤고, 모든 것이 어떻게 풀어질 것인지 알았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라고 분명히 선포하셨고(7, 12절), 말씀하신 그대로 속히 오셔서 계시하신 그대로 이루실 것이다. 계시는 이제 끝나고, 당신이 대답할 차례가 되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당신은 ‘아멘’으로 화답할 것인가, 아니면 불신으로 화답할 것인가?

1.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주(13, 16, 20절)

13절의 는 예수님이다. 뒤이어 나오는 의 정체성,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은 항상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계시록에서 사용되었다(1:8; 21:6). 세 가지 표현 모두 시작부터 끝을 가리키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작부터 마침까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을 나타낸다. 존 맥아더는 알파와 오메가에 관한 신선한 설명을 했는데, 헬라어 알파벳 처음(알파)부터 마지막까지(오메가)를 모두 활용하면 인간이 기술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가 나오는데, 그만큼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가 풍성하시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예수님은 충만한 지혜로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계획하신 그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이루시는 절대 주권자이시다.

16절의 화자 역시 예수님임에 틀림이 없다: 나 예수는(16절). 예수님은 계시록의 증언이 자신의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16절). 계시록은 천사의 계시도, 사도 요한의 계시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계 1:1). 천사는 계시를 전달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자에 불과하고, 사도 요한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철저하게 기록한 종일뿐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받은 계시를 교회들을 위하여 증언하셨다(16절). 1차적으로 아시아 일곱 교회(2-3장), 그리고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위해 이 말씀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증언하신 계시자이시다.

또 하나의 수식들로 예수님은 자신을 나타내셨다: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16절). 이 표현은 예수님이 성경이 가리키는 메시아이심을 확증하면서 동시에 또 다른 예수가 없다는 것을 확정한다. 다윗의 뿌리(조상)이면서(사 11:1), 다윗의 자손이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분은 신성으로 다윗이 “주”라 칭한 하나님이시고, 인성으로 다윗의 조상으로 태어난 사람이시다(마 1:1; 22:41-6). 다윗의 자손이 영원한 왕권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구약에 약속하신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신약 시대, 다윗의 후손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러 오신 사람이시다. 성경이 가리키는 예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오직 이 예수만이 끝을 향해 갈수록 짙은 어둠이 깔리는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광명한 새벽 별이 되실 것이다. 가장 어두운 새벽에 떠서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별처럼, 신자를 불러 모으시고, 모든 악을 벌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과 형벌로 통치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이 말하는 다윗의 주 & 자손, 메시아로 영원히 통치하실 왕이시다.

20절을 보면,이것들을 증언하신 이 곧 예수님께서 굳게 약속하신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20절). 앞서 예수님은 두 번 반복하여 속히 오시겠다고 하셨다. 세 번째,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다. 진실로가 더해진 최고 강조 표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그 뜻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절대 주권자, 모든 되어질 일들을 교회를 위하여 증언하신 계시자, 성경의 예언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종말의 어둠을 빛으로 정복하고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실 통치자, 예수께서 반드시 속히 오신다. 당신은 어떻게 그분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2. “아멘”으로 화답하는 자(14, 17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예수님 말씀에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라고 반응한 자들이 있다. 이 대답은 아람어 음역으로 ‘마라나타’이고 초대 교회 성도들이 자주 사용한 표현 중 하나였다(기도문, 인사말). 아멘은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인데, 뒤에 이어지는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에서 다시 한 번 이들이 왕의 빠른 귀환을 반기고 사모하는 백성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라 부른다. 자신들의 주인이자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며 경배하는 호칭이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이 그것을 말해준다. 14절을 보라: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14절). 예수님에게 ‘주여 주여’라고 말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마 7:21). 천국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여 자기 삶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들이다(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삶, 고전 15:34). 예전에 구원받은 경험이 있거나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수님은 처음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다. 그렇게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계 2:7).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경고하셨다(2:5).

하지만, 우리 힘과 지혜로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 아니다. 우리 행위로 천국에 들어가고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게 아니다. 모든 천국 백성은 오직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 성령의 힘으로 천국에 들어가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다. 17절에서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가져다주시는 성령님과 그 은혜와 능력을 받은 교회가 함께 뭐라고 외치는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오라’는 은혜로 초청하는 음성이다(사 1:18). 이 초청을 듣는 사람에게도 ‘오라’라고 외칠 것을 요구한다. 나 혼자 듣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전달해야 할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와서 마실 수 있고, 원하는 자는 얻을 수 있는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 7:37-8). 

그리고 이어서 요한은 믿는 자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 가리키는 대상이 “성령”이라고 밝혔다(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신다(딤후 3:16). 성령이 말씀을 조명하여 깨닫게 하시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신다(롬 12:2).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게 하시고, 육신의 정욕과 싸우게 하신다. 신자가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하도록 소원과 능력을 신자 안에서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게 하시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 은혜로 값없이 성령을 주신다. 성령으로 새 삶을 얻은 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산다(갈 5:25).

‘마라나타’라고 고백하는 자는 항상 준비된 삶을 산다. 자기 삶을 정기적으로 돌아보는 좋은 습관을 가진다(욥).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거나 온전히 이루었다고 자부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바울, 빌 3:11-14, 이기는 자).

3. 불신으로 화답하는 자(15, 18-19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불신으로 화답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먼저, 그들은 불의한 자들이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15절). 개들은 당시에 가장 하찮게 여겨지고 비천하고 더러운 곳을 다니며 토한 것을 먹는 미련한 짐승으로 이방인을 가리키거나 어리석은 죄인을 가리킬 때 종종 성경에서 사용되었다(마 15:27; 잠 26:11). 음행, 살인, 우상 숭배는 상대적으로 큰 죄처럼 보이고 점술가와 거짓말을 좋아하는 자는 가벼운 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죄는 하나님을 불신하고 부정하는 행위다(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즐길 수 없는 악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더욱 사랑하는 반역죄다(점술-자신의 운명, 복, 음행-성욕, 살인-분노, 우상 숭배-다른 대상, 거짓말-자신의 유익, 평판). 그래서 다 천국 성 밖에 내어쫓기기 충분하다. 

불신이 명백한 불의를 낳기도 하지만, 단순한 부정과 무시의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18-19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라: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고대 문서 중에서 내용 보존을 위해 무서운 경고의 문구를 권위자 이름으로 인봉하며 기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무서운 경고문이 기록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아무도 이 계시를 수정할 수 없도록 지키시는 것이다. 이것들 외에 더하면”,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에서 아주 조금의 수정도 용납하지 않으시겠다는 주님의 강력한 의지가 보인다. 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후로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더하는 행위를 엄중히 금한다. 또한 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변개하는 행위는 문서를 직접 조작하거나 왜곡하고 오용하는 일과 함께(덧붙여 자기 견해와 가르침을 전달함) 여기에 기록된 내용의 일부나 전부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태도도 포함된다. ‘설마 이렇게까지 되겠어?’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이러한 불신은 부정과 무시를 낳고 그 결과 진실로 주님이 속히 오셔서 기록된 예언 그대로 일하실 때 경고된 문구대로 재앙을 당하고,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둘째 사망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날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언제나 오늘, 지금이 될 수 있다.

계시록의 마지막 구절은 축원으로 끝난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21절). 모든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은혜가 있기를 간구하는 짧은 기도문이고, 아멘으로 ‘정말 기도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침표를 찍었다. 주 예수의 은혜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 구하는 모든 자에게 값없이 주신다. 계시록에는 분명한 두 개의 길, 두 개의 운명, 두 개의 종말이 제시되어 있다. 은혜를 입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구원을 받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천국의 길로 당신의 운명이 바뀐다. 계속해서 은혜를 거절하거나 값싸게 여기면 당신은 영원한 형벌을 받는 불못의 길로 당신의 운명을 확정 짓는다. 당신은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어떤 종말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가? 당신의 운명을 만물의 주권자, 통치자, 계시자이신 예수님께 맡기겠는가? 아니면 자신에게 걸겠는가?

예수님을 믿고 은혜로 구원을 받아 그분께 운명을 걸고 있는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하기 원하는 말씀은 흥미롭게도 신약 성경에 기록된 또 다른 ‘마라타나’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전 16:22).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로 끝나는 이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기는 자, 두루마기를 빠는 자, 처음 행위를 가지고, 죽도록 충성하고, 주가 맡기신 것을 지키기 위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결국 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의 주님,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예비하고 계시고, 성령으로 우리를 떠나지 않고 이기게 하시며, 영생을 누리며 영원히 함께 통치하게 될 그날을 기다리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이토록 힘들고 버겁고 귀찮고 짐스러워야 하는가? 

주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끝까지 사랑하자. 주가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그분을 따르자. 주가 주께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함께 누리기 원하시는 것같이 우리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우리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자. 주가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우리에게,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쉬지 않고 부어주시니, 우리도 주를 사랑하자. 오늘보다 내일 더, 그렇게 점점 더 사랑을 키우다가 주를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