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본문: 로마서 10장 9-15절

설교자: 조정의

명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맡은 제자로서 어떻게든 선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바울처럼 선교사의 삶을 사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 물질, 재능의 일부가 어떤 식으로든 선교에 사용되어야 한다. 삶의 목적이 선교와 어떻게든 닿아 있어야 하며, 기도 제목에 반드시 선교가 포함되어야 한다. 왜 그런가? 세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진리 때문이다. 

1.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다(9-13)

로마서 10장엔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는 바울의 마음이 담겨 있다(10:1).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의를 내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힘써 거부했다(10:2-3). 바울도 과거에 그랬다. 하나님의 의는 율법을 지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10:4-5). 이것이 바울이 깨달은 복음이고 선포한 복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았다.

우리는 본문에서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한다. 구원은 듣고 시인하고 믿는 공식만 따르면 무조건 얻는 답이 아니다. 구원은 받는 것이다(13절, 수동태). 구원받는 사람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어야 한다(9절). 하지만 그 믿음의 고백을 참되게 하시는 분, 그래서 후에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11절). 주님은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다.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분명한 진리가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으시다(12절). 민족, 나라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고, 계시록에선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다.

네팔에서 몇몇 성도의 구원 간증을 들었다. 힌두교 모태신앙을 가진 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우상을 섬기다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게 된 과정,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구원받은 이야기는 참 감동적이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세계 구석구석까지 이르러 자기 백성을 찾으시고 그들을 불러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에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왔다. 왜 우리가 선교를 생각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마음이 모든 사람을 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삶의 터전을 넘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곳에도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한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민족을 포함하고 그분의 의는 모든 나라에 미친다. 선교를 위해 기도하라.

2. 모든 사람은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한다(14)

본문 13절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고 이어서 14절에서 선교의 필요성이 분명해지는 두 번째 진리를 발견한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4절)

누구든지 주를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는 이 놀랍고 풍성한 은혜의 약속은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데, 반드시 그들이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 순서는 이렇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려면 먼저 주를 믿어야 한다. 주를 믿으려면 먼저 주에 관하여 들어야 한다. 주에 관하여 들으려면 주를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한다. 바울은 17절에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데이비드 플랫은 복음 연합에서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10가지 방법”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는 중에 ‘3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플랫은 또한 ‘우리가 선교에 쏟는 모든 자원의 99%, 보내는 선교사의 97%가 이미 복음이 선포된 곳으로 간다’라고 말했다. 현재 선교 전략이나 사역이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고 여전히 그들은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네팔은 그리스도인 비율이 약 3%(5%)다. 97%가 복음을 들어야 한다.

너월빠라시 지역에 갔을 때 네팔 비전팀은 1시간가량 지프차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산속엔 여러 마을이 군데군데 있었고, 그곳에 흩어져 사는 학생들이 산꼭대기에 있는 훕세콧 학교에 몰려들어 복음을 귀로 들었다. 감사하게도 이런 사역을 통해 학교 선생님 중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 얻은 자매가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복음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울려 퍼지고 산등성이 어딘가 살고 있던 이의 귀에 들렸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의 역사가 펼쳐진다는 사실이! 복음은 반드시 모든 사람의 귀에 들려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주를 믿을 수 있다. 주를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맛보고 구원받을 수 있다. 아직도 듣지 못한 이들이 너무도 많다.

3. 복음을 말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다(15)

바울의 논리는 14절에서 15절로 이어진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다’가 14절의 마지막인데, 15절의 시작은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질문의 답을 성경이 명확하게 주기 때문에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모든 사람이 주를 부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보내심을 받아야 전파한다-전파해야 듣는다-들어야 믿는다-믿어야 부른다-불러야 구원받는다. 그런데 첫 번째 항목 “보내심을 받아야 전파한다”에서 성경의 답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바로 그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보내심을 모든 그리스도인은 받았다(마 28:18-20). 고로 우리는 전파한다. 고로 그들은 주를 듣고 믿고 부르고 구원받는다.

이 시간 당신의 소명(부르심)을 생각하라. 모든 사람의 하나님께서 복음을 들어야 할 이들을 위해 당신을 보내셨다. 바로, 이 소명에 충성한 누군가를 통해 당신은 복음을 들었고 은혜로 주를 믿었으며 구원받았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당신은 복음을 누군가의 귀에 들려줘야 한다. 그들이 듣고 주를 부를 수 있도록. 구원받고 이 소명의 길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명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맡은 제자로서 어떻게든 선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구체적인 적용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당신의 시간, 물질, 재능의 일부를 반드시 선교를 위해 사용하라.
    (1) 시간: 선교학 강의를 듣거나, 선교 보고서를 읽거나, 선교사(지)를 위한 기도를 하거나, 선교사 간증 자리에 참석
    (2) 물질: 선교지나 선교사를 위한 헌금(선교부 계좌), 디모데 출판사(문서 사역, 사람이 가지 못하는 곳까지 영향)
    (3) 재능: 의료선교, 단기선교(주일학교 재능 기부), 선교부에 들어가서 봉사(달력 제작, 재능 기부)
  2.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을 가까이서부터 찾아라. 위하여 기도하고 복음을 들려줄 기회를 잡으라: 가족(부모, 자녀), 직장 동료
  3. 삶의 목적에 어떻게든 선교를 포함하도록 하라. 매일의 기도 제목에 포함, 매일의 목표와 구호로 삼으라: 주를 전파하는 하루, 주를 모르는 이에게 복음을 들려주는(삶으로) 하루가 되자!

예수님은 양 백마리를 가진 목자가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마 18:12-13).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하셨다(마 18:14). 

그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지극히 작은 자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가 아니었나? 우리를 찾으려고 주께서 이 척박한 곳까지 오신 것이 아닌가? 자기 목숨을 바쳐 우리가 다시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것이 아닌가? 그 은혜의 풍성함을 맛본 자들은 아직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주님의 양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지극히 작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그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시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보내심을 받은 그 일에 충성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들어야 하는 이들에게 가서 전하라.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고 우리 삶의 목적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그래서 우리가 기뻐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