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으로 사는자, 성령으로 행하라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설교자: 조정의

성령이 오신 것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주일이다. 예수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 주일을 시작으로 50일이 되는 날(7번째 주일)이다. 최초로 성령이 오신 날은 유대인이 율법에 따라 전통적으로 지켜온 절기 중 칠칠절(맥추절)이었다(오순절(헬), 행 2: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신 이유는 분명했다(눅 24:49): 권능을 받아 예수의 증인이 되라고(행 1:8). 제자들은 증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고난, 영광(부활, 승천)의 목격자. 제자들은 선포해야 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복된 소식을. 복음을 들고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그들에게는 ‘위로부터 입혀질 능력’, 성령이 필요했다.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어떤 권능으로 제자들을 통해 땅끝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게 하셨는지 기록한 생생한 증거다. 성령님은 방언, 기사, 표적, 치유, 예언 등 강력하고 놀라운 능력을, 제자들을 통해 강력하게 나타내셨다.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 공회도 감히 무시하거나 부인할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행 3:16).

그런데, 오늘날 성령의 권능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맡겨진 사명은 그대로인데, 성령의 능력은 왜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가? 방언과 예언은 그쳤다. 치유와 표적과 기사는 기독교를 사칭하는 사기꾼들이나 애용하는 사기 수법으로 전락했다. 진짜 성령의 능력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첫 성령 강림 주일부터 이천여 년이 흐른 오늘까지, 기독교 역사는 최초에 성령께서 제자들을 통해 빈번하게 나타내신 권능이 점차 사라졌다는 걸 입증한다. 만일 성령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지만(가능성), 예수님의 생애와 사도들이 살아있을 때처럼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도 사실이다(현재성). 성령님께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권능을 잃으셨거나 역사하실 마음이 사라지신 걸까? 아니다. 성령님은 오늘날에도 예수의 증인들의 삶에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본문이 그것을 가르친다.

1. 성령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16-18절)

당신이 예수의 제자라면,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것을 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알기 때문에(롬 7:18),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육신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틀림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빌 1:6).

그러면 성령이 그 안에 거하지 않는 비그리스도인은 온통 육신이 원하는 악한 일만 저지르며 사는가? 선과 악 사이에 갈등조차 하지 않는가? 아니다. 그들도 가령 분명한 육체의 일로 소개된 술 취함과 방탕함에 관하여 ‘건강을 위해서 술을 줄여야겠다’, ‘이제 정신차리고 부지런히 살아야지’라고 결단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일반 은혜’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자기를 거역하는 이들에게까지 은혜를 베푸셔서 악으로 완전히 치우치지 않도록, 극심한 고통과 끔찍한 멸망으로 치닫지 않고 은혜 베푸시는 그분께 회개하도록 인내하며 기다리신다(벧후 3:9).

신자에게 베푸신 은혜는 차원이 다르다. 운전자에게 어느 정도 유익을 주는 내비게이션이 일반 은혜라면, 직접 운전석에 앉아 우리 인생을 목적지까지 인도하시는 축복이 바로 신자가 누리는 성령의 은혜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인생을 인도하신다.

본문은 신자에게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명령한다(16절).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는 분명한 방향이 있다는 말이다. 성령님은 분명하고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육체의 욕심을 거스르고 대적하신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했다(롬 8:26). 여기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기 원하시는 강력한 성령의 의지를(탄식, 간구) 발견한다. 육체가 원하는 대로 죄의 종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는 것, 그래서 궁극적으로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삶에 두신 성령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이다.

성령이 없는 이들도 하나님의 일반 은혜로 악이 아니라 선을 택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은 예수님 형상을 닮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선을 행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거나 영광을 돌릴 생각이 없다. 성령이 있는 자들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그렇게 신자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 그래서 신자는 경외함으로 성령께 항상 복종하여(성령을 따라 행하여) 날마다 구원을 이룬다(빌 2:12-13).

방언, 예언, 치유, 표적과 기사처럼 눈에 보이는 엄청난 권능에 비하면 시시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많은 사람이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내면으로부터 시작하여 외면을 바꾸는 힘, 영원한 멸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운명을 영원히 바꾸는 성령님의 권능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

2. 성령은 우릴 통해서 증언하신다(19-26절)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육체의 일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신다(24절). 

본문은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인지 분명하게 밝힌다. 첫째, 그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24절). 둘째, 그들은 성령으로 살성령으로 행한다(25절).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 아닌가? 육체의 일을 대적하고, 성령의 뜻대로 살게 하시는 일. 이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시는 것이다. 성화는 우리 안에서 날마다 일하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사다.

성령님은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입술과 손으로 행하는 방언과 기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의 변화된 삶, 달라진 인품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 천국 시민이 가지고 있는 품격과 아름다운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형상을 나타내신다. 장차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실 그분께서 이미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처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증명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육체의 분명한 일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성령께서 이것을 미워하시고 강력하게 거스르신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주술(마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분쟁, 분열, 파당,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이 대표적인 예다(19-21절). “또 그와 같은 것들”이란 표현은 그 외에도 분명히 육체가 원하는 일이 많다는 걸 말한다. 바울은 거듭 강조하며 무섭게 “경계”한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21절).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삶에서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는가? 당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 있게 증거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당신 삶에서 육신의 욕심이 이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구하라. 성적인 죄를 뿌리 뽑고, 우상 숭배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관계를 망치는 여러 가지 악을 제거하고, 세상 쾌락을 즐기는 죄를 죽여달라고 간청하라. 성령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신다(히 9:14).

‘자백’과 ‘깨어 있음’의 기도를 매일의 기도에 반드시 포함해라. 자백은 성령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서 깨끗이 제하실 죄를 고백하는 회개 기도, 깨어 있음은 당신을 유혹하는 육체와 세상과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건져달라고 성령의 보호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하루를 시작할 때, 시험 중과 후에 성령을 꼭 붙들라.

반면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간절히 맺기 원하시는 열매가 있다: 사랑, 희락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친절, 양선선함, 충성, 온유, 절제(22-23절). 이 외에도 성령이 맺으시는 경건하고 거룩한 열매가 많을 것이다. 이 모든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맺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사랑이 풍성하시고, 기쁨이 넘치셨으며,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고 온유하게 대하셨다. 그들에서 선을 행하셨다. 철저하게 충성되고 절제된 삶을 사셨고,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 그리고 이웃과의 영원한 화평을 가져다주셨다. 

다양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삶이다. 성령 하나님은 이같은 것을 우리 삶에 맺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께서 위임하신 지상 대명령에 충성하기 원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선포하는 증인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성령은 우리에게 천사의 방언이나 모든 지식을 자랑하는 예언으로 예수님을 나타내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다(벧전 1:22).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다(살전 5:16).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하신다(롬 12:18).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하신다(살전 5:14). 

성령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과 표적을 행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오직 서로 친절하게 하고(엡 4:32), 모든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선을 따르라고 요구하신다(살전 5:15).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시고(계 2:10),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고 하신다(딛 3:2). 모든 일에 절제하라고 하신다(고전 9:25). 이로써 주를 증거하라고 하신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같은 것을 맺으라고 명령만 하시는 게 아니라, 이같은 열매를 간절히 맺기 원하는 소원을 주시고, 또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빌 2:13).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다(히 9:14). 당신이 성령께 자신을 드릴 때, 성령이 당신 안에서 권능으로 역사하시고, 당신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증거하신다.

3. 결론

아이는 순수하지만 그래서 육신이 원하는 일을 순순히 행한다. 때로는 자기밖에 모르는 극강의 이기심을 분노와 함께 쏟아낸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부모의 올바른 교육과 돌봄 아래 잘 자라면 성숙한 어른이 된다. 남을 생각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 나의 것을 희생하여 남의 유익을 구할 줄 아는 사람,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고, 맡겨진 사람과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아이를 어른으로 길러내기까지 부모는 날마다 탄식하며 간구한다. 죽을힘을 다해 인내한다.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쏟는다. 부모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은 없지만, 자녀를 잘 길러내는 것은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이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돌보시고 기르신다.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던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벧후 1:4). 예수님의 성품을 담아낸 인격과 삶이 되도록 빚어가신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최대한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세상에 나타내신다. 예수님과 사도가 행한 기적이나 표적을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우리를 예수님 형상으로 길러내시는 것만큼 크고 놀라운 기적은 없다. 

그러니 기르기 좋은 자녀가 되자. 말썽 피우지 말고 고집부리지 말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자녀가 되지 말고, 성령님 말씀을 잘 듣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과 자랑이 되는 자녀가 되자. 그런 자녀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민족에게 가장 큰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