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당신 입에서 나오는 열매 Part.4 “참된 것을 말한다”

본문: 잠언

설교자: 조정의

“참된 것을 말한다”라는 말은 “진실을 말한다”라는 말이다(참/거짓). 우리는 어려서부터 ‘정직하라’는 교훈으로 양육 받았다. “참되거라 바르거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얻었다.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잠언도 ‘거짓말’을 악한 자의 열매라고 가르친다. 

1. 거짓을 말하는 것의 문제

“진실한 입술”에 반대되는 악인의 입술을 가리켜(12:19) “거짓된 입술”(10:18; 12:22) 혹은 “거짓된 혀”(6:17)라 말한다. 그 입에서 나오는 거짓된 말을 가리켜 “비뚤어진 말”(4:24), “구부러진 말”(6:12), “속이는 말”(12:17; 21:6) 등으로 표현한다. 

또한 “정직한 자”와 반대되는 악인에 관하여(12:6) “거짓말하는 자”(26:28), “거짓말을 뱉는 사람”(14:25; 17:4, 7; 19:9)이라고 말하고, 특별히 법정에서 이웃에게 거짓말로 해를 끼치는 악한 자를 “거짓 증인”(12:17; 14:5; 19:5; 21:28),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6:17)이라 부른다.

사람은 왜 거짓을 말할까? 마음이 맺는 열매가 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마음의 문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잠언은 몇 가지 속이는 말의 뿌리를 설명한다. 

1)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21:6). 탐심의 문제다. 돈을 얻으려고 진실을 버리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가? 조금 더 확장하면 우리는 명예, 인기, 인정 등을 얻기 위해 사실을 과장 혹은 축소하거나 왜곡하여 말할 수 있다.

2) “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것(25:18).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미움의 문제다. 원수에게 손해를 끼치려는 목적으로 거짓을 말한다. 미워하는 대상을 해하기 위한 의도적인 거짓말이다. “한담”(11:13), “누설”(20:19), “수군수군하는” 것(롬 1:29), “떠드는 것”, “비방”(엡 4:31) 등의 방법이 있다.

3) “속임으로 그 미움을 감”추는 것(26:26). 그 마음엔 시기와 분냄이 있다. 상대방 앞에서는 미움을 감춘다(10:18). 심지어 거짓으로 자주 입맞춤을 한다(27:6).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에 관한 부정적인 말을 하고 다닌다(10:18). 미워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온유와 용납을 보여주면서, 남에게 말할 땐 어떤 식으로든 그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4) “희롱”(26:19). 속이는 말로 다툼을 일으키고 그저 농담이었다고 가볍게 여기는 문제다.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를 하여 갈등과 싸움을 만들어낸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 마음에 당 짓는 것과 분열함이 있다.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가볍게 정확하지 않은 남의 이야기를 여기저기 전달하여 일을 만든다(딤전 5:11-13,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쓸데없는 말을 하며”).

종합하면, 잠언이 말하는 ‘거짓말’은 그 내용에 있어서 항상 진실과 어떤 면에서든 차이를 갖는다(과장, 축소, 절반, 왜곡, 변질).  그 결과 남을 “속이”는데(12:17; 14:25), 항상 그 대가로 뭔가 얻으려는 악한 욕구에서 시작된다. 또한 거짓은 진실을 업신여기는 마음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정의를 업신여기고”, 19:28).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자를 어떻게 보실까? 잠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이라고 말한다(6:16, 19; 12:22). “거짓 혀”는 영원하지 못하고 잠시 동안만 존재한다(12:19). “거짓말 하는 자”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19:5), 반드시 “패망”한다(19:9; 21:28).

2. 참된 것을 말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은 왜 거짓말을 이토록 미워하실까? 하나님께서 참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참된 말을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된 분의 아들딸은 참된 말을 해야 한다. 진실하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자는 그 입에서 진실을 맺어야 한다.

사탄은 여자를 유혹할 때,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물으며 하나님의 참되심(진실하심)을 의심하게 했다(창 3:1). 그리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여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하게 만들었다(“거짓의 아비”, 요 8:44).

하지만 참으로 하나님은 하시는 말씀과 행하시는 일 모두 다 진실하신 분이시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시 33:4). 하나님은 또한 영원히 진실하신 분이시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시 117:2). 

영원무궁한 진실하심은 하나님의 신성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도 그 속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참이다. 거짓이 조금도 없다. 모세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라고 말했다(민 23:19). 바울은 디도서 1장 2절에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분이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라 말했고, 히브리서 기자도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말했다(히 6:18). 또한 베드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 입에 거짓도 없으”셨다고 말하고(벧전 2:22), 사도 요한은 신자에게 기름 부음이 되신 성령을 가리켜 “참되고 거짓이 없”다고 말했다(요일 2:27). 하나님은 진실로 진실로 참되신 분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을 어떻게 변화시키시겠는가? 참되고 거짓 없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어떤 마음으로 새롭게 하시겠는가? 그 마음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까? 입에 거짓이 없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점점 닮아간다면 우리 입은 어떻게 변할까? 점점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할 것이다. 잠언도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한다고 말했다(13:5). 자기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3장까지 복음의 은혜를 말하고, 4장부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제시하면서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점진적 구원(성화)의 언어생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엡 4:25). 이것이 거듭난 자의 입에서 나오는 합당한 열매다: 거짓 없는 참된 말.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다.

3. 사랑 안에 참된말 하는 방법

우리는 참된 말을 해야 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참된 말을 하는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진실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진실을 말한다. 또한 우리는 진실함으로 이웃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참된 말을 한다. 거짓말이 사탄의 영광과 자신의 이기적인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정반대다. 참된 말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말)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랑 가운데 진리를 말하며우리말성경)

그러면 어떻게 참된 말을 사랑 안에서 할 수 있을까?

① 사랑 안에서 어떤 진실은 감춘다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감춘다. 상대방의 연약함, 부족함, 허물을 사랑으로 덮는 것이다. 성경은 사랑에 관하여 “오래 참고…온유하며…무례히 행하지 아니”한다고 말했다(고진 13:4). 베드로는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명령하면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했다(벧전 4:8). 

우리는 상대방의 잘못에 관하여 자신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항상 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합당한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에 용납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성령께서 상대방 안에서 역사하심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납하신 것처럼 그를 용납하며(엡 4:2),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일을 통해 선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롬 8:28).

② 사랑 안에서 어떤 진실은 반드시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사랑은 언제나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전 13:6). 강단에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감 없이 담대하게 전할 때, 누군가의 양심을 찌르고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럴 소지가 있는 내용은 가르치지 않는 것이 사랑인가? 아니다. 

물론 전달할 때, 비꼬거나 업신여기거나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고 정죄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건 사랑이 아니지만, 말씀이 말하는 내용을 말하는 방식대로 담대하게 전달하는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듣는 자를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성도와 성도의 관계 속에서도 말씀에 기초한 조언과 권면을 사랑으로 나눠야 한다(골 3:16,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 성도가 심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도,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약 5:19-20).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상대방이 권면을 듣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갈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화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서 마땅히 가르치고 권면해야 할 합당한 기회를 버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진리를 말해줘야 할 때가 있다. 물론 자랑하거나 시기하거나 교만하거나 무례한 방식이 아니라 온유한 방식으로(고전 13장).

③ 사랑 안에서 모든 진실은 지혜롭게 말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감출 때가 있고, 반드시 말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언제, 어디까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지혜가 요구된다. 그럴 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항목을 고민해볼 수 있다.

첫째, 자기의 유익을 구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려는 것인가?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전 13:5). 이타적인 사랑(아가페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우선순위에 둔다. 그러므로 참된 것을 말할 때, 이것이 나의 유익(답답, 자기 의, 정죄, 자랑)을 위한 것인지 진실로 상대방의 유익(성화)을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려해 보라.

둘째,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바라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기대하는 것인가? 참된 것을 말하고 나서 말한 것이 내가 원하는 결실을 보지 못하면 실망하거나 분노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말한 진실이 상대방 안에서 마땅한 결과로 나와야 한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전 13:7). 하나님께서 상대방 안에서 진리로 하시는 일을 기다리며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진리의 씨를 뿌리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라.

거짓의 아비가 다스리는 악한 세상에서 우리는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경우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는 때를 만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짓말이 진실하고 참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선택하는 속이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진리를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 거짓이 통하는 세상에서 진실한 삶을 사는 건 두려운 일이다. 손해를 보는 일이고, 손가락질 받는 일이다.

하지만 다윗의 시, 31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23-24).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시고 진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거짓말을 입에서 그치고, 오직 참된 것을 강하고 담대하게 사랑 안에서 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