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누가 참교회인가?

본문: 사도행전 26장

설교자: 조정의

본문의 배경은 주후 60년경, 3차에 걸쳐 소아시아와 그리스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소동에 휘말려 가이사랴에 구금된 지 2년이 지났을 때, 벨릭스, 베스도에 이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를 변호한 장면이다. 이미 총독 베스도는 바울이 로마에 가서 상소할 것을 판결했지만, 황제에게 올릴 상소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아그립바 왕과 높은 지위의 귀족, 관료들이 모인 자리에 죄수 바울을 세웠고 그의 변명을 듣고 심사해 달라고 요청했다(25:25-27).

본문의 대부분은 바울의 자기변호다(변명, 1-2절, 변증아폴로기아). 그는 유대인이 고발할만한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날 때부터 자라면서 유대인 중의 유대인으로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을 믿고 바란 것뿐이다(22절). 그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전한 것뿐이다(20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 곧 죽은 자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자기를 고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것이 바울의 논증이었다.

그런데 바울의 변증은 무죄 입증보다 더 중대한 목적을 지향했다. 그것은 바로 전도다. 아그립바는 이를 알아채고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회피했다(28절). 바울은 분명히 밝혔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9절).

그러므로 바울의 의도대로 본문을 선포하기 원한다. 바울의 간증을(예수님 만나기 전, 만났을 때, 만난 후) 통해 오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이 바울과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 참 교회인지 거짓 교회인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마 13:24-30) 자가진단해 보라. 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는 고생을 멈추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예수님을 만난 자는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며 주를 전파하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간절히 원한다.

1. 참 교회의 표지가 아닌 것(1-12)

바울은 참 교회가 누구인지 정확히 보여주는 기막힌 예시다. 유대인의 시각에서 그는 하나님 나라 입주민 0순위다. 정통 유대인 출신에 바리새인 최고 교육을 받고 철저하게 율법과 전통을 지켰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시각에서 그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대표적인 원수로(마 23:13) 심판과 멸망을 받을 자 0순위다. 바울은 유별나게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여 예수님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꾸지람을 들었다(14절). 바로 이 극적인 대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이 참 교회의 표지가 아닌지 알 수 있다. 바울이 갖춘 화려한 스펙과 경력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① 혈통∙배경

먼저, 바울은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라고 말했다(4절). 정통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인으로 자랐다는 말이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다(빌 3:5). 하나님 백성의 약속과 기업을 받기에 합당한 유대인 혈통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는 이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했다(빌 3:8-9). 그리스도를 얻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 ‘저는 모태신앙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다 목사라고 혹은 기독교 배경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말한다. 복음을 들을 기회가 많다는 면에선 은혜롭고 복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론 참 교회가 될 수 없다. 당신은 결코 혈통으로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없다(요 1:12-13). 세례 요한의 말처럼 하나님은 원하시면 돌로 아브라함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마 3:9). 

② 종교생활

바울은 이어서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라고 말했다(5절, 증인들의 증언).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행 22:3), 바리새인의 생활 곧 율법과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는 삶을 살았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신했다(빌 3:6). 율법에 대한 지식이나(24절) 실천에 있어서 모두 최고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많은 학문과 종교 생활이 그를 예수님 사랑하는 자로 만들어주지 못했다. 바울은 되려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을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했다(9절). 생각만 한 것이 아니다. 아주 광적으로 일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했다(10-11절; 행 8:3). 그의 대단한 성경 지식과 종교 활동이 그를 참 교회가 되게 하기는커녕 참 교회를 핍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종교 생활을 자랑한다. 엄격한 주일성수를 자랑하고, 교회에서 맡은 직분을 내세운다. 얼마나 헌신적으로 섬기고 봉사하는지 모두가 인정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참 교회가 아닌 사람도 그런 철저한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다. 바울처럼 실제론 예수님을 대적하는 삶을 살면서, 종교활동 할 때만큼은 참 교회인 것처럼 자신과 남을 속일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자녀가 될 수 있는가? 바울이 어떻게 회심했는지 살펴보자.

2. 참 교회가 되려면(13-18)

① 만나주심

예수님이 바울을 찾아주셨다. 바울이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다(12절).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려고. 정오에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13절) 곧 부활하여 영광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만나주셨다(변화산, 마 17:2, “해 같이 빛나며”). 흥미롭게도 바울과 동행들 모두가 그 빛을 보고 땅에 다 엎드러졌지만, 예수님의 소리를 들은 것은 바울뿐이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방언인 히브리 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14절).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두 번 부르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런 장면에서는 그분의 긍휼과 자비를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은 ‘네가 지금 나를 박해하고 있다’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15절). 그리고 주인의 말에 고집부리며 불복종 할수록 더욱 고통받는 짐승처럼 굴지 말고 내게 굴복하라고 부드럽게 그를 부르셨다.

참 교회가 되려면 예수님의 만나주심을 경험해야 한다. 이 말을 오해하지 말라. 바울처럼 초자연적인 현상을 반드시 체험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바울처럼 그런 특별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을 통해 자신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란 걸 안다. 어쨌든,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을 때 어둠 가운데 빛이 탄생한 것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자가 참 교회, 빛의 자녀로 거듭나는 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실 때다(고후 4:6).

구원하심

많은 사람이 주님의 만나주심을 신비로운 체험이라 여긴다. 물론 거듭남은 신비롭다. 하지만 체험 자체는 굉장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체험을 함부로 구원의 경험으로 여기면 안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울의 구원은 그가 체험한 초자연적 빛과 음성이 아니다. 이 일로 그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선지자와 모세가 기록한 그대로 이해하고 믿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6-8절)

그는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믿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를 만나주셨을 때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혀 끝나신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부활하셔서 빛나는 영광을 얻으신 분으로 유대 지파가 간절히 바라던 소망, 부활을 주시는 메시아라는 걸 믿었다. 그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고 거룩하게 된 무리(참 교회)가 되어 선지자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기업을 얻게 된다는 걸 믿었다(18절). 그가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관해 어떤 이해와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보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22-23절)

그러므로 참 교회가 되려면 당신은 반드시 예수님의 만나주심을 통해 그분을 알고 믿어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수님,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당신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부활하셔서 당신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예수님. 당신을 거룩한 교회로 불러 하늘의 기업을 얻게 하신 예수님. 당신은 반드시 그 예수님을 알고 믿어야 한다.

3. 참 교회의 표지(19-23)

그러면 예수님의 만나주심을 통해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은 자(참 교회)는 어떤 표지 혹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① 주인으로 모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하신 일에 감동하고 기뻐한다. 누가 내 죗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죽어주셨다는 데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죽고 나면 영원히 행복한 천국으로 데려가 주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 죄 사함과 천국 소망은 정말 무한한 기쁨을 주는 복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기뻐하는 사람 중에 예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다. 예수님을 이생과 내세에 복 주는 고마운 자선사업가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을 부르신 예수님은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고 하셨다(14절). 그리고 앞으로 그를 어떻게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16-18절).

참 교회는 예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은 자들이다. 예수님이 내 삶의 목적을 결정하신다. 이제 내 삶은 내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것이며 예수님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그분의 영광을 위해 내 삶을 사용하실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가장 선하고 유익한 길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나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신 것을 기뻐하고 감사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② 주신 사명 충성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지적으로 알고 동의한다(마 28:18-20). 하지만 참 교회는 지적인 동의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순종한다. 바울이 19절부터 말하는 걸 보라.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19-22절)

바울은 자기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맡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했다(행 20:24). 바울처럼 예수님의 종이 되어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 교회의 사명이다. 모두가 바울과 같은 수준의 충성도를 보이진 못한다. 하지만 참 교회는 바울과 같은 충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순종한다. 오직 자기 힘으로? 아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사명에 충성한다.

결론적으로 만일 당신이 참 교회가 아니라면, 바울처럼 혈통이나 종교활동 등으로 참 교회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면, 그것으로 결코 참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라. 말씀을 통해 당신을 만나주시는 예수님께 마음을 열어라. 성경이 약속하신 예수님을 알고 믿어라. 그분을 당신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여 당신 삶을 사용하시도록 내어드리라.

참 교회여,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맡기신 일에 충성하며 사는 일에 지쳤는가? 어쩌면 당신은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는 의무감과 책임감(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당신에겐 복음이 필요하다. ‘주께서 어떻게 나를 구원하셨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 끝없는 자비와 놀라운 사랑을 맛보면 당신의 짐은 가벼워진다. 순종의 삶은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된다. 사는 동안 풍랑을 만나도 당신은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며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