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그리스도의 승리
본문 : 베드로전서 3:18-20
설교자 : 조정의

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가장 어려운 구절

마틴루터는 이 본문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상한 구절이며 신약성경의 그 어떤 구절보다 더 모호한 구절이다 나는 사도 베드로가 쓴 이 구절의 의미를 아직도 정확히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구절은 정말 신약 성경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구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왜 이 본문이 어려운지 한 번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18절은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19절을 보십시오. “그가(그리스도)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옥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 옥에 갇힌 영들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은 무엇을 선포하셨을까요? 20절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들(옥에 갇힌 영들을 가리킵니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죽으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신 후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는데 그들이 수천년전 노아의 때 불순종 했던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고하는 주석마다 수많은 견해와 해석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고심 끝에 내린 결론 또한 다양합니다. 성경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도 이 본문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문제 해결 방법

이렇게 어려운 구절을 만났을 때 우리는 몇가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이 구절을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본문을 읽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며 같은 본문으로 설교하는 분의 설교를 찾아 듣게 되었는데 그분은 “물에서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이 본문을 다루었고 핵심내용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간단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18절만 이야기하고 19-20절은 대충 얼버무리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억지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가 들었던 설교 중 또다른 설교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육체는 무덤에, 영은 하나님 곁으로 가셨고 혼이 옥으로 내려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선택한 이 방법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건너 뛰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해석하지도 않으며 얼버무리거나 억지로 해석하지 않고 가장 적합한 해석으로 보이는 것을 찾아 전하는 것입니다.

문맥

올바른 해석을 위해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문맥입니다. 이 어려운 난제를 풀어가기 쉽게 도와주는 것은 문맥입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이야기 해오고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고난과 핍박, 비방을 당할지라도 선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은 그 가운데 선을 행함으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몇명은 하나님께 돌아올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는 자들도 결국 그들의 비방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이전 16-17절을 보십시오.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고 나서 18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바로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예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베드로는 벌써 세번째 그리스도를 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어떤 가르침을 주고 나서 그리스도께서도 이렇게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2:21).

그러므로 오늘 본문 18-20절 역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성도의 본이 되셨는지를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앞에서 했던 가르침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보여주시는지 비교해가면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해나가는 것이 오늘 본문을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그리스도의 승리”라고 하였고 본문을통하여그리스도께서고난가운데선을행하심으로어떤승리를얻으셨는지,그를핍박하고비방했던무리들에게어떤부끄러움을가져다주셨는지살펴보기를원합니다.그렇게함으로써세상의핍박과비방속에살아가는우리가계속해서인내하며선을행할수있게하는힘,그리스도께서먼저보여주신것처럼우리에게보장된승리가있다는사실을일깨워주기를원합니다.

  1. 선을 행하심

베드로는 계속해서 선을 행하라고 권면하였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2장 20절부터 다섯 번이나 반복되어 사용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선을 행하는 것에서 본을 보이셨는지 보십시오. 18절입니다. 그분은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죽으사” 대신 “고난을 받으사”라고 쓰여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죽기까지 받으셨습니다. 가장 초라하고 수치스러우며 고통스러운 사형틀인 십자가 위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갖은 핍박과 모욕과 비방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어떻게 이것을 선을 행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죄가 있어서 당한 고난이 아니라 죄인이 받을 고난을 대신 받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 7-8).

베드로는 또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의 죽음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축복이며 최고의 선행입니다. 어떤 돈으로도 이 죄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올라도 안 됩니다. 아무리 많은 권력을 가졌어도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고행을 해도 안 됩니다. 선행을 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죄인이 가지고 있는 죄의 빚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죽어서 망하는 “사망”만이 죄가 요구하는 값이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값을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단번에 갚아주셨습니다.

히브리서는 더 이상의 재물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다”(히 9:28)고 말합니다. “사망”으로만 해결되는 죄의 문제를 대신 죽으심으로 단번에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이 바로 그분이 보여주신 최고의 선행입니다.

  1. 선행의 목적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계속해서 선을 행하라고 하면서 그 목적에 대해 반복해서 말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쉽게 말해서 선행을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스도가 베푸신 최고의 선행의 목적이 바로 그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이는(목적)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값을 해결해주고 나서 이제 알아서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용서함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신 이유, 선행을 베푸신 이유는 바로 죄인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앞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채찍에 맞고 죽으심으로 길을 잃은 양과 같던 자들이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말하였습니다(벧전 2:25).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선행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 시키신 것입니다. 죄인으로 하나님께 감히 나아갈 수 없었던 우리를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선을 열심히 행하라’는 명령을 받은 이유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선행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1. 선행의 결과: 선을 행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

베드로는 선을 행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칭찬받을 일이며 아름다운 일이라 하였습니다(2:19). 또한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2:21)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 말하였습니다(1:7). 여기 우리의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보상을 얻으셨는지 보십시오. 어떤 승리를 얻으셨는지 보십시오. 18절 마지막에 예수님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또한 영의 죽음도 맛보셨습니다. 영의 죽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죽음은 분리를 말합니다. 육체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말합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인의 상태에 대해 “죄와 허물로 죽은 너희”라고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엡 2:1). 그들은 육신이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즉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영적으로 죽으셨을까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까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신 그리스도의 고백이 기억나십니까? 이것은 단지 왜 나를 고통 중에 돕지 않으시냐고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견디다 못해 이 일을 왜 허락 하셨냐고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어느 시점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영적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마지막에 다시 예수님은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몸으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예수님의 영은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를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의 영혼을 죽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를 위해 의인으로서 육체의 죽음과 영적 죽음을 맛보셨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승리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죄를 이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죽음도 이기셨습니다. 죽음이 그분을 묶어둘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영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을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그분의 본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동일한 승리가 보장되어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에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5-58)

  1. 선행의 결과: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베드로는 선을 행해도 고난을 받을 수 있음을 여러 번 이야기 하였습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며 나에게 승리가 보장되어있고, 또 참고 선을 행하는 것이 비방하는 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역사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이 끝까지 선을 거절한 자들, 비방하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을 보십시오. 그분은 죄와 사망을 이기셨을뿐만 아니라 비방하는 원수들에게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19절에 나오는 옥에 갇힌 영들에게 말입니다. 20절에 보면 그들은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며 잘 들어보십시오.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합당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몸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셨을 때 그리스도는 성경 다른 곳에서 “무저갱” 혹은 “지옥” 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범죄한 천사들이 갇혀있었는데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보면 이 장소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누가복음 8장 31절에 “군대”라 불리는 귀신들이 간구했던 것도 바로 이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유다서 1장 6절에서도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못”이라 불리는 영원한 형벌이 주어지기 전 임시적으로 범죄한 천사들이 갇혀 있는 장소가 바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옥”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귀신들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놓인 귀신들이 있습니다(눅 8장), 또 다른 귀신은 바로 갇힌 귀신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여기 “옥”이라는 곳에 갇혔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귀신들을 이렇게 가두셨습니다. 물론 모든 귀신들이 불순종하고 있고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을 넘어서는 악에 대해 하나님은 심판을 하십니다. 20절에 바로 그러한 경우가 등장합니다. 노아의 때 범죄한 천사들입니다. 창세기 6장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었으나 범죄하여 사람의 딸들을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아내로 삼았고 온땅을 하나님 앞에 부패하고 포악하게 만들었습니다(창 6:11). 8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물로 쓸어버려야 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후회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항하는 범죄한 천사들에게 있어서 노아의 때는 승리의 때였을 것입니다. 8명을 제외한 모두를 죽여야 할 정도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단한 타격을 입힌 것입니다. 귀신들은 인류를 장악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항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것처럼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그 무리들은 “불순종의 자식들”을 통해 세상풍조를 만들어내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욕심과 마음이 원하는대로 살게 만듭니다(엡 2:2-3).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심판을 유보하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피할 수 있는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방뿐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란과 불순종 그리고 비방은 그 오래 참고 기다렸던 기간 동안 계속해서 지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옥에 가두셨고 범죄한 인간들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시고 그 옥에 가셔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여셨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노아 때까지 그리고 예수님 때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항했던 그들의 모든 노력이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죄와 사망 뿐만 아니라 모든 악의 세력을 이기셨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비방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당하게 당하는 고난과 비방에 대해 두려워함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을 때 그의 대적들에게 하나님이 심판을 선포하신 것처럼, 우리를 비방했던 자들에게 하나님이 동일하게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방에 대한 대가인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마지막 결론: 나그네와 행인된 자들이여 힘을 내라!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말합니다. 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편지 처음부터 소아시아 성도들을 행인과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 수가 적은 무리들입니다. 세상에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많을 수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선을 행하는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이 세상에서 선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노아의 때 오직 8명만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32절에서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십시오. 삶에서 당하는 고난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직 그리스도를 두려워하십시오. 그분의 승리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어떻게 선을 베푸셨는지 그리고 그 결과 우리가 어떤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어떻게 선포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계속해서 이 승리의 길을 힘차게 걸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