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새해에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
본문: 시편 90편
설교자: 최종혁
새해가 되면 달라지는 것들이 많다. 이제는 새해가 되어도 공식적으로는 전국민이 한살씩 더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떡국이 미역국으로 바뀌었을 뿐 결국 나이 한살을 더 먹기는 하고, 여전히 나이가 더 들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할 것이다. 특히 앞자리가 바뀌는 경우는 더 그렇다. 교통 법규같은 것들도 해가 바뀌면서 달라지는 것들이 종종있다. 그래서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새해가 되면 달라지는 법규들을 정리해 두고, ‘새해에 이거 모르면 큰일납니다. 과태로 30만원!’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두는 경우들이 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그런 영상들 다 믿으면 안된다. 조회수를 위해서 원래 그랬던 것이 바뀐 것처럼 말하거나 혹은 과장하는 경우들도 많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해봐야 한다. 새해에 받는 봉급이 달라질 수도 있고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한편 새해가 되면 달라졌으면 좋겠는 것들도 있다. 몸무게가 좀 달라졌으면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건강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 같은 경우 성적에 대한 기대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성격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새해에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단지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 그동안의 어떤 고민이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도 한다.
달라진 것에 대해서는 적응을 해야 할 것이고, 달라졌으면 좋겠는 것에 대해서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나눌 말씀은 새해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도 결코 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말씀이다. 달라지지 않는 것에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있나 싶을 수 있지만, 오늘 말씀에서 다룰 것들은 굳이 신경 써야하고 항상 기억해야하는 것들이다. 사실 이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한 해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바꾼다. 정말 한 해를 잘 살고 싶다면, 이 달라지지 않는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가장 먼저 알고 인정해야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것이다.
시 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언제나 그렇다. 심지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이셨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 후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실 것이다. 당연히 새해가 되었다고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원과 불변이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문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시편 90편은 모세의 시로서 아마도 광야 생활의 끝자락에서 기록했을 것이다. 모세의 생애는 꽤나 드라마틱해서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음악 등 여러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그 놀라운 사건들을 보면 나도 그 중 하나쯤은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애굽 왕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하고, 홍해를 가르고, 바위에서 물이 흘러 나오고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가 손을 들면 전쟁에서 이기고 내리면 졌던 일도 그렇다. 모세의 삶 자체가 놀라운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 모든 드라마틱한 사건들보다 모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특권은 따로 있었다. 역사를 통틀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부러워할만한 것은 그런 놀라운 기적을 행했던 경험보다 그가 하나님을 매우 친밀하게 알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바위 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도 했다.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모세가 누렸던 가장 중요하고 큰 특권은 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했던 것이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민 12:6–8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7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8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모세가 누렸던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아무나 누릴 수 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말하고(출 33:11), 모세에 대한 마지막 평가도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였다(신 34:10).
그런 모세가 하나님에 대해서 내린 결론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물론 모세가 전혀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말은 단지 어떤 사실이나 정보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그의 경험으로 확인한 사실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나눴던 하나님과의 모든 대화, 그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통해 그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시다라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새해가 되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하나님이시다. 사람을 이 땅에 창조하시고 또한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는 생명의 주관자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을 책망하시고 그들을 심판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오래참으시고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하나님이시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그렇게 하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렘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그 성품이 변하지 않는다. 그분의 능력이 줄거나 늘지 않는 것처럼 그분의 사랑도 그렇다. 그분의 거룩도 그렇고 그분의 공의도 그렇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져도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통제하신다.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이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지키려고 하다가 상황에 따라서 계획을 변경하기도 하고 혹은 아얘 포기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는 그런 것이 없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시다.
시 102:25–27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26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27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말라기 3:6에서 하나님은 직접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야고보서 1:17은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말한다.
새해가 되어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존재가 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인격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약속이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알고 인정해야할 첫번째 사실이다.
사람은 사람이다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 새해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사실은 사람은 여전히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우리는 달라지겠지만, 우리가 여전히 사람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모세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대조되는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 90:3–6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시 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것이다. 이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누구나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많은 사람이 알아주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사실 이미 삶을 마감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죽고 나서 리무진을 타든 버스를 타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든다. 우리의 몸은 결국 이 땅의 티끌로 돌아가게 된다.
다음으로 우리의 삶은 짧다. 그저 끝이 있다는 것 뿐 아니라 그 삶은 짧게 지나간다. 마치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꽃과 같다. 모세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표현한다. 모세는 120세까지 장수했던 사람이다. 그조차도 삶이 짧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순간 순간은 길게 느껴질 때가 있고 지루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에 대해서 ‘너무 한 해가 길었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군대에서는 조금 다르게 말하기도 하지만 심지어 군대에서도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쓴다. 결국 시간은 흘러가고 돌이켜 보면 금방 지나갔다는 느낌이 든다.
나이가 들면 더 그렇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나이가 적어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금방 초등학교 들어간 것 같은데 어느새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된다. 중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2학년이 되고, 적응되었다 싶으면 3학년이다. 어느새 고등학교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다 대학 원서 쓰고 운전면허를 따면서, 내가 벌써 성인이야라고 생각할 나이가 온다.
어느 순간 ‘어리다’는 말보다 ‘젊다’는 말을 더 많이 듣게 된다. 그러다 제일 먼저 결혼하는 친구가 생기고 그 친구가 아이라도 낳으면 정말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러면서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결혼식에 다니다가,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을 가게 된다. 그렇게 나의 부모님도 떠나 보내고 또 내가 떠날 날도 가까이 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도 모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한다. 정말로 빠르게 지나간다.
모세의 표현을 보면 단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 뿐 아니라 그 안에 약간의 ‘허무함’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깐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은 것이 인생이고, 나름 오래 살아도 그 자랑할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그렇다.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비교적 풍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땅을 떠나야 하고,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심지어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런 허무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까지 사람에 대한 사실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들이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그저 신세한탄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모세는 사람의 짧고 유한한 이 땅에서의 삶의 근본적인 원인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자연의 순리가 아니다.
시 90:7–9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시 90: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사실 우리의 ‘죄’가 이 모든 것들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죄로 인해 우리는 자랑할 것이라고는 수고와 슬픔 밖에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죄 가운데 죽은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의 두려움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새해가 되어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 하려고 했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혹은 나쁜 말 버릇을 고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지 않은 성격을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상 실패했던 성경 통독에 성공할 수도 있고, 교회 안에서 열심히 섬길 수도 있다. 모든 것들이 다 좋은 것들이다.
그런데, 아무리 새로운 마음을 먹고 새로운 결심을 해도,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이것도 새해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달라지기 원하지만 우리가 달라지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유한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실제 삶에서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지는 못한다. 지금의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서 살고 있는한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할까? 수고와 슬픔으로 또 다른 허무한 일 년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달라지지 않는 것들을 바로 알고 인정한다면, 우리의 새로운 한 해는 다를 수 있다.
그래서 …
먼저,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은 왜 저러지’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내가 왜 이러지’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여러가지 이유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한다. 하지 말아야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후회할 일들을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상이고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실망하고 좌절한다.
우리가 기대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어차피 그래봐야 안돼’라고 생각하고 어떤 기대도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다만 기대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것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나에 대해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다. 우리가 여전히 사람이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다 연약하고 유한한 사람들이다. 여전히 죄를 가지고 살고 죄와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린 아기가 걷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어린 아기가 걷기 위해 노력하고 부모들도 그런 기대를 가지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다. 나도 그렇고 내 옆의 사람도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서로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실망하고 좌절하기 보다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 기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우리의 거처로 삼아야 한다. 아브라함 때부터 모세의 때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정착하여 살지 못했다. 특히 모세는 그나마 애굽에서 잘(?) 살고 있었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서 그곳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거처가 되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들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거처는 하나님이셨다.
연약한 우리는 의지할 만한 것을 찾는다. 의지할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진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고, 가진 지식이나 힘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어떤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달라지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달라지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그럴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달라지지 않으신다. 웨인 그루뎀은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속성의 중요성은 그분이 변하신다고 가정할 때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변하실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더 좋은 하나님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하나님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하나님이 더 좋은 하나님이 될 수 있다면, 지금 하나님은 그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지금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최고의 선택이 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더 나쁜 하나님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조금 나쁜 것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런 하나님이 무엇보다 강하기까지 하다면 그보다 끔찍한 삶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루뎀의 논리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 목적을 바꾸시거나 약속을 바꾸실 수 있다면 어떨까? 혹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바뀔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 수 있을까? 믿을 필요가 있을까? 없다. 만약 하나님이 그렇다면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사람이다. 하나님 만이 달라지지 않으신다. 하나님 만이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신뢰할 이유는 충분하다. 신뢰해야만 한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대로 일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시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때로는 하나님이 달라지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멀리 계셔서 내 상황은 신경쓰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아예 여기 나와 함께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이 공정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이 아니신 것 같기도 하다.
모세도 아마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였다. 욥도 그런 순간에 이렇게 고백했다.
욥 1:21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바울의 말은 이렇다.
롬 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의 결론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은 달라지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봐도 그렇고,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일을 봐도 그렇다. 새해에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어떤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다. 영원하신 왕이시고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자이시고,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시다. 언제나 그 뜻을 이루시고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날을 계수하며 사는 지혜다.
결국 새해에도 달라지지 않는 또 한 가지는 연약한 우리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모세의 마지막 기도를 보라.
시 90:16–17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17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새로운 해에 우리는 우리 손으로 많은 일들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의미있는 것이 되려면 우리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손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고 그런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다. 지난 나의 삶이 그렇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런 삶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면, 지치지 않고 끝까지 그렇게 나의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