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누구를 예배하는가
본문 : 요한복음 4장 20~24절
설교자 : 이병권
8월에는 세 번에 걸쳐서 예배에 대한 말씀이 증거 될 예정입니다. 증거 될 말씀의 주제는 ‘누구를 예배하는가?’ ‘왜 예배하는가?’ ‘어떻게 예배하는가?’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누구를 예배하는가?”라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무슨 힘으로 이 땅을 살아갈까요? 흔히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 라고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어떨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배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만납니다. 예배를 통해 영원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영적인 힘을 얻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가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예배를 통해 힘을 얻는다고! 예배가 그런 거였어? 그런데 난 왜 예배를 드리고 나면, 오히려 힘이 빠지는 거지? 매주 드리는 만찬예배는 지루하고, 말씀예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나에게 예배는 견뎌야하는 인내를 훈련하는 시간인데…’ 과장된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우리는 예배를 통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할 때가 많은 걸까요? 그것은 우리가 예배를 자주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지만 제대로 예배드리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실패하고 나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순서에 따라 시간을 보내고, 종교적인 의무를 마치는 것뿐입니다.
A. W. 토저는 오늘날 교회의 예배를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배는 교회의 잃어버린 보석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배를 잃어버렸다고요! 예배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교회인데,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예배이고, 매주 교회가 모여서 하는 일이 예배인데, 예배를 잃어버렸다니요!‘ 지나치게 비관적인 평가를 한 걸까요? ‘에이~ 그런 평가는 다른 교회 이야기지! 우리는 아니야!’ 그런가요? 우리와는 별로 상관없는 그런 말일까요? 지금 우리 교회는, 지금 나 자신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예배라는 보석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요? 예배라는 보석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잘 사용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 존재의 가치와 소중함을 잃어버렸습니까?
어느 책에서 오늘날 교인들이 예배를 견디는 유형에 대해서 분류했습니다. 강단을 바라보고 있지만, 딴생각에 빠져있는 ‘생각파’ 부족한 잠을 교회에 와서 보충하는 ‘수면파’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초조파’, 옆 사람과 글을 적어서 대화하는 ‘쪽지파’ 모든 관심이 예배 후 있을 모임에 쏠려있는 ‘동아리파’ 그냥 자신이 읽고 싶은 성경을 읽으며, 예배시간을 보내는 ‘실속파’, 핸드폰으로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멀티파’등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예배드리고 있는 태도를 스스로 한 번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해서 제대로 예배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기쁨과 감동으로 찬양하며 말씀으로 새 힘을 얻어서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예배당을 나섭니까? 아니면 그저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메말라버린 감정으로 아무런 기대감 없이 매주 예배를 보내고 계십니까?
우리가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문제가 우리의 삶, 그 자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 그 기초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의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까요? 더운 날씨에 아침부터 준비해서 수고함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여기 앉아 계십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 앉아있으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된다면 어떻게 합니까? 정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오늘부터 3주에 걸쳐 선포되는 예배에 대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나의 예배는 괜찮은가 점검해보십시오. 그리고 회개할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다시 붙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믿음으로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보다 나은 예배자로 예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구를 예배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세 번에 걸쳐서 답하는 방식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주일학생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를 예배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중에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만나서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특별히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했고,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배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반복해서 예배의 대상을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4절에서는 예배의 대상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 사실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 당연한 거라서 때로는 이것이 우리의 생각 밖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또한, 이 사실은 우리의 예배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필요한 것이 뭘까요? 무엇이 필요한가요? 최신 음향 시설이요?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요? 성능 좋은 노트북이요? 시원한 바람이 쌩쌩하게 나오는 에어컨? 이런 것들이 있으면 좋죠, 또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 자체가 예배에 필요한 본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그분을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배가 사람들이 명절 때마다 지내는 제사랑 뭐가 다를까요?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돼지머리를 앞에 두고 지내는 고사랑 뭐가 다릅니까? 사람들이 불상에다 절을 하는 것처럼,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 거죠? 왜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될까요? 왜 다른 걸까요? 그것은 기준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그분의 말씀에 따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그분을 제대로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남편이 아내를 사랑함으로 아내를 기쁘게 해주기를 원하는데 정작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면 어떨까요? 아내를 위해 근사한 꽃다발을 선물해줬는데, ‘이게 뭐냐고, 돈 아깝다고, 환불은 안 되냐고,’ 그런다면, 어떨까요? 아내를 잘 몰라서 그런 실수를 한 거죠?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분을 아는 지식을 따라 예배드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22절을 보면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구약성경이 있었지만, 사마리아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버전으로 바꾼 모세오경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예배는 그 대상에 대해서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 높으신 가치 앞에 엎드려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말 자체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면서, 그분의 가치를 모르면서, 그분을 예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분을 예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가치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분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며, 어떻게 감동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앎으로 그분이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 알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분 앞에 엎드려 그분을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고려청자, 국보급의 도자기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볼 때, 그 도자기는 그냥 써 먹을 데 없는 낡은 골동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모르면 아무런 감동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보면 어떨까요? 다를 것입니다.
왜 예배가 그토록 지루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예배 속에 감동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예배시간을 소홀히 여기며, 예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까요? 교회가 좋은 시설을 갖추지 못해서 그런 걸까요? 설교자가 은혜를 끼치지 못해서 그렇습니까?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 원짜리 도자기하고 백억 짜리 도자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이 주는 매력에 빠져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기 전에는 예배만큼 지루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안 믿으시는 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까지 나와서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어느 예수님 안 믿는 분이 예배에 참석한 후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날, 여기 안에 모여서, 왜 이러고 계시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이러는 거예요?‘ 그분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죠. 집에서 쉴 수 있는데, 내일 휴일이라 가족이 함께 놀러 가도 되는데, 왜 굳이 이곳에 나와서 힘들게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겁니까? 왜 그러십니까? 이게 뭐가 재미있다고, 그냥 집에서 TV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게 많습니까? 집에서 올림픽 경기 보면 되잖아요. 우리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겁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그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늘 예배가 힘들고 어렵다면, 언제나 그러하다면, 어쩌면 그것은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믿는 분이라면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만큼 예배합니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그 말씀을 실천해보십시오. 경건의 서적이나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알아 가십시오. 그분을 아는 지식으로 즐거워하며, 그분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해 친밀함을 쌓아 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예배는 더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누구를 예배합니까? 우리는 하나님만을 예배합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무슨 말입니까? ‘주 너의 하나님을 오직 그분만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계십니까? 그러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을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겠습니까? 다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것도 함께 예배한다는데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뿐만 아니라 거짓 신들, 우상들도 함께 예배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겼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것을 함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예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가짜 영광을 자랑하며 사람들의 예배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와 다른 뭔가 뛰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감탄하며 그를 높입니다.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고, 세상이 주는 쾌락이나 권세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의 예배 받기에 합당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예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배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예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헛된 일입니다.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기며 내 삶의 이유와 존재의 목적을 그분에게서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에 눈을 돌리기 쉽습니다. 정말 집중해야 할 것보다 쉽게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은 장소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유대인들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이라고 말했고,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이라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제 예배드리는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장소가 아니라 예배드리는 대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입니다. 우리에게는 예배드리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형태, 그 스타일은 바뀔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예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예배합니다. 떡과 잔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예배합니다. 예배 인도자나 설교자를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예배합니다.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을 예배드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는지,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셨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예배시간에는 예배에만 온전히 집중하여 하나님만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예배가 끝난 후에 해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예배합니까? 마지막 대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하나님답게 예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말은 하나님만을 하나님답게 예배한다는 고백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바른 태도로 예배해야 합니다. 23절입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또 2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분을 예배함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분의 존재를 인정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영과 진리로”라는 말은 영적으로 그리고 진리를 따라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참된 예배는 외적인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내적인 태도로부터 나옵니다.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합당한 태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은 하면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못한 태도로 하나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희생으로 자격 없는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몇몇 제사장만이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 놀라운 특권을 받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태도는 어떠한지요? 만약 구약의 제사장이 내가 예배드리는 것처럼 제사를 드린다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만만히 여기고, 가볍게 여길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예배의 기본입니다. 단순히 외적으로 눈에 보이는 몇몇 것들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떠한지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그분을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마음자세로 그분이 계시해주신 진리를 따라 예배드리고 있는지요?
저는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만을 하나님답게 예배하기 위해서 세 가지 제안을 드리기 원합니다. 딱!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만을 하나님답게 예배드리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기억해주십시오. 첫째로 “더 경건”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단순히 주일 이 시간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 경건하게 한 주 동안 말씀을 묵상하며 그분과 교제를 나누십시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드리는 주일 예배는 보다 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더 일찍”입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오셔서 예배를 준비하시고, 예배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배를 기다려야지, 예배가 우리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나름의 생각하는 내가 교회에 도착하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한 그 시간을 조금만 더 일찍 당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몸은 더 수고스러울지 모르지만,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더 집중” 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하기 위해서는 집중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생각하시며, 진행되는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흔들며 방해할 것입니다.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최선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드려진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예배는 우리가 매주 반복해서 드리는 일입니다. 언제나 동일한 상태로, 항상 같은 마음으로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적인 수고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배는 계속되는 과정입니다. 지금 미숙함이 있더라도 예배드리는 나의 태도를 점검하며 훈련함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니 그날의 온전한 예배를 기다리며, 주어진 오늘의 이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워싱턴에 조이 펠로우십 이라는 한인교회가 있습니다.이 교회의 목사님은 예배 제대로 드리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열심히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교회는 2시간 반 정도를 예배드리는데 찬양만 1시간을 하고, 모두 일어서서 합니다. 성소에는 의자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서서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목사님의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초창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주일 예배시간에 성도들과 함께 찬양을 하는데, 그저 입술에서 찬양이 겉돈다는 느낌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설교시간이 되어 단에 올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진짜 하나님을 생각하며 찬양하셨습니까? 지금 우리가 드린 찬양은 하나님이 받으신 것 같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양심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십 분 쉬고 다시 합시다.” 그래서 10분 쉬고 1시간을 드리는 찬양시간을 다시 했다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목사님의 목회 철학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가지고 있는 예배에 대한 진지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교회에서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없이 그럴듯한 모양만 갖춘 예배가 얼마나 많을까요? 정말 10분 쉬고 처음부터 다시 드려야 할 예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떤 형식을 갖추고 어떤 곳에서 예배드렸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예배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예배는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말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배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찾고 계신 자가 누구인지 보셨습니까?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은사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돈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도 아닙니다. 머리가 뛰어난 인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말씀은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예배에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한다하더라도 예배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실패한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존재 목적이며, 우선순위의 최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할 때, 우리가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어느 주일학생이 이런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는 교회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하나님도 함께 계셨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어느 주일학생의 기도처럼 주인공 없이 우리끼리만 모였다가 헤어지는 그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일 때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유평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정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예배합니까? 우리는 하나님만을 하나님답게 예배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경건하게, 더 일찍 와서, 더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당신은 누구를 예배하고 있습니까? 혹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 당신이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과 계획을 말해보세요.
- 예배를 드리는 태도에 있어서 당신이 더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당신에게 예배는 얼마나 중요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