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2년이 지났습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행사가 열렸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때로는 그 안타까움이 원망으로 나타나는데, 그 대상이 하나님일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 왜 그렇게 희생을 당해야했나? 그 사건을 벌어질 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 이런 질문은 세월호 사건만이 아니라 세상에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을 접할 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충분히 비슷한 질문을 가질 수 있고, 누군가가 분명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나요? 하나님이 미리 막을 수 없으셨나요?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당장 모든 고통을 없앨 수 있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신 분이시기에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만나는 걸까요? 솔직히 저는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이 질문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하려는 것은 어쩌면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뛰어난 지성을 가진 많은 신학자들이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한 대답은 없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경에서 욥은 그 누구보다 이와 같은 질문을 가질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왜 제가 이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만약 고통의 문제에 대해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대답이 있다면 그것은 가장 먼저 욥이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다면 하나님이 욥에게 대답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의 이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 위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를 질문의 형식으로 말씀하십니다(욥 38~41장). 만약 하나님이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면 강아지에게 스마트폰에 대해서 설명해주려고 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끝내 왜 이 세상에 고통이 있는지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왜 욥에게 고통이 있었는지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저 인간의 한계와 무지를 지적하시면서 온 세상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그분의 주권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능력에 한계가 있고, 다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더 잘 아시니까, 그분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계시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 고통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해답을 모르는 것은 제한된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와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있는 고통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또 그분의 뜻에 따라 그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 완벽한 때를 위해서 지금도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분은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다시는 고통이 없는, 눈물도 질병도 사망도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염소와 함께 눕는 거룩한 동산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사 11:6~9). 그러므로 고통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거나,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무시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죄가 가득한 세상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사형틀 십자가에 달리셔서 처절한 고통을 직접 맛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고통당하심으로 영원한 고통에 빠져 있는 자들을 건져내셨습니다.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시는 고통과 눈물과 사망이 없는 곳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참된 복음이며,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고통 많은 이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고, 내가 당하는 고통 가운데 침묵하시며, 세상의 죄악들을 마냥 두 손 놓고 방관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 가운데 은밀하게 그리고 위대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당신이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당신을 대신하여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고,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