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대한 유대인의 주석인 미드라쉬에 보면
큰 전쟁에서 승리한 다윗이 승리의 기쁨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반지를 만들기로 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큰 승리의 기쁨에 너무 도취되지 않게 하고,
동시에 큰 절망 가운데서도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글을
반지에 새겨 넣으라고 명하였고
고민 끝에 솔로몬 왕자를 통해 얻게 된 글귀가 바로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라고 합니다.

사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합니다.
페르시아 수피즘을 바탕으로 한 시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고대 영문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 특히 신자들에게 있어
이 말은 위로와 희망의 말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곧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은
사람에게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말은
온전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 아닙니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말이 담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단순히 고통이 곧 끝날 것이라는 것에서 그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순간들이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어떤 의미가 되는지,
하나님께서 왜 그러한 것들을 허락하셨으며,
어떤 목적으로 주셨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가 아닌
”이를 통해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환경과, 상황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명기 8장에서 모세는 광야길을 걷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를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주리기도 하고, 목마르기도 하고, 길이 험하여 고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겪었던 모든 상황에 이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겪은 모든 환경과 상황을 통해
그들에게 알려주기 원하셨던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으로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겪었던 모든 일들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말씀은 모든 것이 결국 잘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장사가 잘되고, 건강하게 되며, 자식들이 잘 될 것이다…등
나 자신의 희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선”은 절대적인 “선”을 말합니다.
뒤이어 바울이 말한 “구원”의 완성 지점을 가리킵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하나님은 나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신 후,
나에게 손 놓고 하늘나라 저편에 홀로 계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간간이 나를 지켜보시다가
마지막 날에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롭다 하신 자를
모든 것을 합력하여 영화롭게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환경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낙심되며 괴롭더라도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된 일들이며,
그 일들은 하나도 빠짐 없이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더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롬 8:29),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단순히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가 아닙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입니다.

 

바울은 로마, 스페인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기 원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야망이 아니라 주의 복음을 위한 이 열정과 노력이
로마에 투옥되면서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바울은
자신이 매여있으며, 자신의 매임 때문에
형제 중 다수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중 자신을 괴롭게 하고 시기하며 질투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참 괴로운 일입니다.

감옥에 갇히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주 안의 형제라 말하는 자들이
자신을 괴롭게 하려는 잘못된 동기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니요…

그러나 바울은 단순히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왜 기뻐했을까요?

19절입니다.

이것이(바울이 처한 환경)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 1:19)

바울은 “이 또한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장 6절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한 말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바울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나는 확신하노라”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 모든 환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랑과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풍성하게 더하시고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의 열매를 가득 맺고
하나님 앞에서 영광과 찬송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단지 이 고통이 곧 지나갈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는 모든 환경이 결국 나를 정금같이 빚어
내가 사랑하는 주 앞에 서게 되는 날
그분의 기쁨과 영광이 될 것이라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소망 아닙니까?

 

인생은 수고와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모두 각자의 짐을 지고, 어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네, 모든 환경은 곧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모든 환경은 그냥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를 통해 이루실 것입니다!

그분을 신뢰하시고 의지하십시오.
우리가 처한 모든 환경은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