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 말씀을 참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잘못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왜 판단하고 그러십니까? 당신은 전혀 죄가 없습니까?
당신 눈에 있는 들보나 먼저 빼십시오.

서로 무엇이 옳다 그르다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서로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 좋을 것을…
나에게 잘못이 있겠지만, 당신에게도 잘못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 눈에 있는 들보나 빼시지요…

무언가 잘잘못을 가리거나, 비판하는 글에는 어김없이 이러한 반응들이 나오고,
그것에 따라붙는 말씀은 대부분 이 말씀입니다.

동성연애에 대한 성경의 분별을 쓴 글 밑에는
동성연애자들 중 도덕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하고,
성경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의 부정 부패를 언급하면서
당신들 눈에 들보나 먼저 빼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타종교나 이단의 교리를 분별해서 쓴 글에도
역시 기독교인들의 비리와 좋지 않은 간증들을 가지고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들보에 비하면 티끌만한 잘못이라고 반박합니다.

물론, 기독교 내에 있는 여러 가지 범죄나 비리들이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반드시 회개해야 할 죄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빼내야 할 들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는 말씀은
분별, 판단 자체를 금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 너에게도 잘못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남을 분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마태복음 7장 1-2절은 마치 분별 자체를 금하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그러나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비판 자체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예수님은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는 것에도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른 태도를 가지고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다른 형제의 잘못에 대해 분별하고 이야기 해주는 것 자체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비판할 때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자신은 거룩한 사람처럼,
자신은 그러한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처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비판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비판할 때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도 비판 받을 수 있는 자라는 사실,
나도 율법의 준행자요 입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는 마음과 태도로 하라는 것입니다.

3-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이 사람은 자기 눈에 들보처럼 큰 것이 있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형제의 눈에 작은 티가 있는 것을 빨리 고쳐주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문제는 보지 못하고, 남의 문제만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태도와 자세를 버리라고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 교훈을 갈라디아 교회 형제들에게 전달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교만을 버리고 나 자신을 살펴보는 것, 바로 겸손입니다.
잘못한 사람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 바로 온유한 심령입니다.
겸손과 온유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만약 상대가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은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잘못된 태도와 동기로 비판을 한다면
이 말씀은 바로 그 사람을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상 이 말씀이 사용되는 경우는
그러한 동기와 태도가 전혀 드러나지 않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단순히 비판과 분별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자신의 의견과 견해를 반대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반항심
때문에
이 말씀을 꺼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성경이 모든 이견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강요함으로
거짓에 대한 침묵과 동의를 명령하며
분별과 판단을 금하고 있을까요?

다음의 말씀을 잘 읽어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분별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면서
진리에 대하여 타협하거나 거짓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4-39)

이 말씀은 참 이상한 말씀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신다 하신 예수께서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슬람교가 이해하듯 자기 종교를 믿지 않는 자들과 싸우고 미워하고
그들과 적이 되어 죽이며, 자기 목숨도 내놓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는데 얼만큼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 타협하지 아니하고
거짓에 대해 거짓이라 말하며
죄를 죄라고 말할 때
가족과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부모와 사랑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되기도 합니다.

내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핍박과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하신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끝까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상호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
타협하고 침묵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그분의 가르침과 다르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지키는 것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말하는 것,
그것이 설사 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가져오거나
사회로부터 핍박을 불러 일으키거나
심지어 내 생명을 위협한다 해도
진리를 내 입술과 삶으로 선포하는 것이 바로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전파해야 합니다.

분별해야 합니다.

비판할 것은 담대하게 비판하고, 죄를 죄라고 말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거짓과 타협하거나 거짓을 옹호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들보를 봐야합니다.

마치 나는 아무 죄 없는 사람처럼, 거룩한 자처럼, 율법의 판단자처럼
교만한 태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온유하지 못한 방법으로 해서도 안됩니다.

예전에 저의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리의 부랑자와 창녀들을 본다면,
‘너희는 다 죄인이야! 회개해라!’라고 하지 말고
다가가서 ‘나는 당신보다 훨씬 외식적이고 더러운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 같은 자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당신도 충분히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라.

내가 지금 구원 받은 것은 내가 뛰어나거나 더 거룩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들을 택하시어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 것이다(고전 1:27).

진리를 선포하고 분별하며 판단하십시오.
절대로 타협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을 입으십시오.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나 인간의 손에 벌레와 같은 취급을 당하시며
죽으실 만큼 낮아지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마지막으로, 누군가 당신이 가진 생각이나 견해를 비판한다면,
동기나 태도의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들보나 빼라”는 말씀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정말 아주 작은 티끌만한 문제라도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고 회개할 부분이 없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정말 내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해도, 모든 심판은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죽은 개와 같은 시므이가 한 나라의 왕,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하며 비난할 때 겸손히 그의 말을 들었던 다윗처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삼하 16:11-12)

예수님을 본받으십시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