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녀였나요?” “다시 태어나도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싶으신가요?” 자녀가 부모에게 이렇게 묻는 이유는 자기 부모에게 언제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지금까지 다 헤아리기 힘든 사랑을 내리받은 자녀는, 그래서 언제나 감사함으로 부모님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과 받은 사랑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자녀는 진실로 부모의 기쁨이 되고 싶다. 부모를 즐겁게 하고 싶어 하는 자녀의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성경이 권장하는 효심이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그런데, 어떻게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로 인하여 기쁠 수 있을까? 부모에게 비싸고 좋은 물건을 선물하는 것, 부모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등 자녀가 부모에게 보답할 방법은 많지만, 자녀를 진실로 사랑하는 부모가 가장 기뻐하는 일은 자녀가 잘되는 것이다. 자녀가 건강하고, 명예를 얻고, 부유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성경은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라고 말한다(잠 22:4).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가 간절히 바라고 또 기뻐하는 일은 자녀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의롭고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는 그래서 자녀가 의인으로 자라날 때, 지혜롭게 살아갈 때, 가장 기뻐한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잠 23:24).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장 크게 즐겁게 하는 일은 자녀가 의롭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의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잠 20:7) 지혜로운 자가 얻는 명철과 영화를 입는 것이다(잠 19:8). 영적 부모였던 사도 요한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 1:4).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겸손한 자로서 하나님께 약속된 복을 받고 그래서 부모에게 큰 기쁨을 주는 자녀의 특징은 무엇일까?

1.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는 부모를 존중한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겸손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특별히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올바르지 않은 자녀는 겸손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자신을 가장 많이 이타적이고 희생적으로 사랑해 준 대상에게도 반항적이고 삐딱한 태도를 보인다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잘해도 그 사람의 본모습이 겸손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겸손은 기본적으로 자기 위에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할 때 생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나님이 자녀 위에 세우신 권위이고, 그 권위는 일반적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발휘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는 그래서 자신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부모의 권위를 존중한다. 잠언 23장 22절에서 ‘낳다’와 ‘늙다’라는 표현이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각각 사용됐다. 이것은 존중해야 할 대상이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포함한다는 사실과 존중해야 할 기간이 자신을 낳아주신 시점부터 부모가 매우 늙을 때까지(돌아가실 때까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늘날 미운 네 살, 사춘기 등 자녀가 부모를 함부로 대하는 특정한 시기를 가리키는 용어가 늘고 있다.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거나 성인이 되어가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부모를 존중하지 않거나 무시해도 되는 기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언제나 요구하시는 것은 부모를 존중하는 것이다.

부모를 존중하는 태도는 각각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피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먼저, 부모에게 청종하는 형태다. “청종”의 기본적인 의미는 ‘듣는 것’을 말하는 데,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 행동에 옮기는 것까지 이른다.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것이다. 또 다른 형태는 부모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경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권위를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한 죄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로 부모를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부모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더 높은 권위를 행사하려고 할 때는 정중히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자녀는 범사에 부모를 존중해야 한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는 부모를 존중한다. 그리고 부모를 존중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2.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는 진리를 간직한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 23:23)

사되 팔지는 않는 이유는 뭘까? 간직하는 것이 무조건 남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그렇다. 지혜와 훈계와 명철이 그렇다. 솔로몬은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라고 말했다(잠 4:7). 모든 재물을 팔아서라도 사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어서 지혜를 소중히 간직할 것을 요구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잠 4:8-9). 지혜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지혜는 인생에 복을 가져다준다. 솔로몬이 말한 지혜는 세상의 지혜와 뿌리가 다르다. 그가 말한 지혜의 뿌리 다른 말로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잠 1:7). 세상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여러 가지 지혜로운 선택과 결정을 따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이 말씀하신 지혜와 명철과 훈계와 진리를 따른다. 그러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된 복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존중할 때, 그 말씀하신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

다윗은 죽을 날이 임박해서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왕상 2:2-4). 다윗의 마음이 곧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는 자녀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말씀을 따르기를, 그 진리를 마음에 품고 간직하며, 그 진리가 성품과 삶을 빚어가게 하고, 그 진리로 온갖 거짓과 시험을 이겨내 형통한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는 하나님의 진리를 소중히 간직한다. 기쁨으로 따른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 10:1).

3.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자녀는 주님과 동행한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4-25)

선량한 시민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법을 잘 지키고, 둘 다 도덕규범을 잘 따른다. 모두 선한 마음을 품고, 모두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려고 애쓴다. 하지만, 성경에서 “의인”은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착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 뜻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이다. 만일 사람이 스스로 진리를 간직하고 따를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지 않으셨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무도 스스로 선량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이유는 모든 죄를 사하시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하시기 위해서다(딛 2:14).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참으로 의인이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를 사함받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선을 열심히 행하는 그리스도인만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롭다.

잠언 23장 24절에선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라고 말한다. 주님과 동행하는 자녀의 아버지, 어머니가 큰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으로 그렇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간 것은 자랑할 만하지만, 주를 모른다면 헛되고 헛되다. 자녀가 많은 재산을 누리고 사는 것도 정말 좋은 일이긴 하지만, 주를 모른다면 그 영혼이 궁핍함에 처한 것이므로 기쁘지 않다. 자녀가 아픈 곳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을 모든 부모가 바라지만, 그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을 오랜 세월 거부한다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종종 하나님을 믿는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 믿기를 요청할 때, 그 동기를 의심받는 경우가 있다. 부모의 종교를 강요한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큰 복이기 때문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장 복된 삶이기 때문에 간절히 원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자녀가 주님과 동행할 때, 부모는 가장 큰 기쁨을 얻는다. 자녀가 가장 큰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도 기쁜 것이다. 만일 당신이 아직까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다면, 부모의 바람과 달리 예수님 믿기를 계속해서 미루고 있다면, (부모를 위하여 구원받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부모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이 당신의 구원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당신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당신의 육신의 부모에게도 참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결론

대한민국엔 특별히 어린이날(5.5)에 이어 어버이날(5.8)이 있고, 어린이날은 공휴일이지만, 어버이날은 쉬지 않는다. 과거엔 어린이들을 소홀히 대하는 시대적 상황 때문에 특별히 그들을 위한 기념일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뒤집어야 할 것 같다.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부모를 존중하고 섬기는 특별한 날로 삼고, 아이들은 조금 덜 신경 써도 될 것 같다. 그만큼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말세의 특징이 갈수록 더 심화된다(딤후 3:2). 부모에게 사랑으로 보답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잠시 멈춰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녀들이여, 부모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심 아닌가? 부모가 우리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을 진실로 보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부모를 존중하라. 진리를 간직하라. 주님과 동행하라. 그것이 부모님께 가장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효도라고 성경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