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우리는 창세기 1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실재가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만물에 담아내셨다. 그래서 만물은 하나님의 속성을 어느 정도 닮았다(선하심). 그중 최고는 하나님이 직접 흙을 빚어 만들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사람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돌볼 책임이 있었다. 가장 많이 하나님을 닮은(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모습으로 나머지 피조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정복하고 다스리고 돌봐야 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가장 많이 담아내야 했다.

하지만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 의해 무시됐다. 현실에 반영되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시작됐다. 사람의 영혼은 혼돈하고 공허한 흑암 가운데 처했고, 사람이 다스리던 만물도 온통 타락으로 물들어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게 됐다(롬 8:22). 그런데 때가 되었을 때, 다시 말씀이 있었다. 이번엔 놀랍게도 말씀이신 하나님이 친히 육신을 입고 어둠을 비추셨다: “빛이 있으라!”

1.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다시 어둠에 사로잡힌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참 빛이 되신 말씀은 태초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계신 말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인격체다(“그가”, 2절).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한 글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또한 하나님이시라고 신비로운 위격을 구분한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절).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구분한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태초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2절). 선지자 미가는 베들레헴에 유다 족속 중에 나실 메시야,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하면서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고 놀랍게 선포했다(미 5:2). 만물이 존재하기도 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셨던 것처럼, 성자 하나님도 태초에—아니, 영원 전부터—계셨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었다(4절). 아버지 안에 생명과 빛과 영광스러운 속성이 있었던 것처럼(약 1:17), 예수님은 그 안에 있는 생명으로 어둠에 빛을, 죽어 있는 공간에 생명을 채우셨다(4, 9절). 하나님 아버지뿐만 아니라 성자 하나님도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는 일에 하나가 되셨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3절). 무에서부터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사람이 되셨다. 사람이 하나님 형상을 닮은 존재였다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체”셨다(빌 2:6). 그분을 직접 목격한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로서 아버지의 영광을 그대로 가지고 계신다.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운 속성과 참된 진리의 말씀을 충만하게 담고 계신다. 사람처럼 어느 정도 닮은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일치하신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그분의 말씀과 그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요일 1:1).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18절).

2. 태초에 계신 말씀이 세상에 나타났다

육신을 입으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을 세상에 담아내셨다. 첫째, 말씀을 현실에 나타내심으로 당신이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입증하셨다. 둘째, 하나님 아버지 뜻대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이 말씀으로 약속하신 구원을 성취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그분을 묘사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오늘날 예수님을 비범한 사람, 위대한 선지자, 뛰어난 랍비 정도로 평가절하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선지자, 율법 교사, 대제사장도 예수님처럼 말씀하지 않으셨다(막 1:22).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 현실이 됐다. 그 입의 권세에 모든 만물이 순종했다.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은 창조의 기적과 같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에서 남자만 오천 명이 되는 무리를 배불리 먹일 음식이 창조됐다(마 14장).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자에게 멀쩡한 눈이(요 9장), 앉은뱅이였던 자에게 완전히 건강한 다리가 생겼다(요 5장). 죽어서 냄새가 나던 시신에게 간신히 숨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몸을 주셨다(요 11장). 무화과나무가 뿌리부터 말라 죽기도 하고(막 11장), 파도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즉시 잠잠해지기도 했다. 물 위를 걷기도 하시고 걷게 하기도 하시고(막 4장), 십수 년을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한 자에게 말씀하시면 귀신이 바로 순종하여 내쫓기기도 했다(막 1장). 요한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라고 고백했다(요 21:25). 그 허다한 기적은 무엇을 입증하는가?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가라사대,” 실재가 되었다. 그 입 기운으로 죽은 자를 살리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만물을 복종시켰다.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하나도 땅에 그냥 떨어지지 않고 모두 현실에 담겼다(사 55:11).

예수님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육신을 입으신 말씀으로 완벽하게 성취하셨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하나님은 창세 전에 놀라운 구원의 뜻을 품으셨지만(엡 1:4), 사람이 범죄한 후에 처음으로 이를 밝히셨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 말씀을 여자의 후손으로 나셔서 성취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갈 4:4). 그분은 옛 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려고 자기 발꿈치가 상하는 일을 감수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창 12:3), 그 언약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나셔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복을 선포하셨다(마 1:1, 28:18-20).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히 견고” “왕위”를 말씀으로 약속하셨고(삼하 7:16),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예수님은 그 말씀을 성취하심으로 영원한 왕좌에 오르셨다(히 8:1). 때가 차면 아버지 말씀대로 그 왕권을 가지고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마 16:28; 계 12:10). 예수님의 초림은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그분의 재림 때, 나라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계 21장).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4).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 1:12).

3. 이 말씀을 믿는 자는 이 말씀을 닮는다

예수님은 친히 만드신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다(10절).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지만, 그 백성은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배척했다(11절). 어둠에 빛이 비추자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고, 빛을 미워했다. 누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가? 누가 그분을 말씀이신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가? 이스라엘 혈통을 가졌다고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개인의 욕구나 의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 자들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그 이름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12절). 요한은 이것을 “은혜 위에 은혜”라고 말한다(16절).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접하도록(담아내도록) 이끄신다. 이것은 성령이 일으키시는 초자연적인 역사이지만,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 믿음의 선물을 “들음” 그것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다(롬 10:17).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셨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졌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 14:24). 그리스도의 피로 맺으신 언약은 이렇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셩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참고: 겔 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그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말씀을 통하여 성취되었다. 하나님이신 말씀이 성령을 통하여 믿는 자의 속에 담긴다.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다. 그리고 관계가 다시금 회복된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 말씀을 담은 만물은 그분의 속성을 반영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았다. 죄로 인해 망가진 그 형상을 아버지 형상의 본체이신 아들을 믿는 자는 다시 회복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의 성취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미리 정하셨다(롬 8:29).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말씀을 듣는 것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에 담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킨다. 성령님은 믿는 자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또 믿게 하신다(고후 4:6). 또한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하신다(벧후 3:18). 그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신다. 그렇게 아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사귐을 누리게 하신다(요일 1:3). 예수님은 이것을 영생,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요 17:3). 쉽게 말해 영생은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더욱 담아내고 그렇게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와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