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가라사대’라는 게임이 있다. 사회자가 ‘가라사대’라고 말하는 것에만 회중이 따르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다. 가령 “가라사대, ‘오른손을 들어주세요’”라고 하면 오른손을 들면 된다. 사회자는 “아주 잘하셨습니다. 이제 손을 내려주세요”라고 의도적으로 ‘가라사대’를 빼고 요청하고 회중은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내리고는 즉시 그들의 실수를 깨닫는다.

‘가라사대’가 붙은 말에만 힘이 있다. 그 말만 현실이 된다. ‘가라사대’가 붙지 않은 말도 똑같이 언어이고 힘찬 목소리에 실리며 모든 청중이 알아듣고 심지어 종종 ‘가라사대’가 붙은 말과 내용까지 같다. 하지만 언제나 ‘가라사대’ 게임에서는 ‘가라사대’가 붙은 말만 능력을 발휘한다. 사회자의 입에서 나가는 모든 말들이 헛되이 그에게 되돌아오지만, ‘가라사대’가 붙은 말은 그가 말한 의도와 목적을 반드시 이룬다. 어떤 면에서 하나님 말씀과 같다(사 55:11).

 1.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창세기 1장은 계몽주의의 발흥과 함께 난데없이 논쟁을 겪는 성경의 첫 장이다. 하지만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본문은 라틴어 “엑스 니힐로”(Ex Nihilo)가 뜻하는 ‘무에서부터’ 만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사람에게 만물이 이렇게 시작됐다고 말씀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은 이와 매우 유사한 선언을 성경 전체에서 두 번 반복하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태초에 하나님이”라고 선언하는 창세기 1장 1절 말씀은 나머지 두 구절에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새롭게 설명됐다. 우리는 섣불리 ‘그러므로 하나님이 곧 말씀이다’라고 인격체를 비인격체와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 즉 그분의 권위, 지혜, 능력, 거룩함, 은혜, 영원함, 불변함, 무오함, 선하심 등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분명한 것은 말씀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은 계셨다는 것이다. 모세에게 그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밝히신 하나님은(출 3:14)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스스로 계셨다. 창세기를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모세도 이렇게 노래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은 그분의 완벽한 속성을 변함없이 소유하고 계셨다. 다만, 태초에 그것을 말씀으로 혼돈하고 공허하며 깊은 흑암으로 묘사할 수 있는 현실에 담아내셨던 것이다(창 1:2). 그렇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무에서 만물이 창조됐다. 그분이 말씀하셨을 때, 말씀하신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다. 그분의 말씀이 실재에 담긴 것이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다른 말로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을 실재에 담아낸다.

 2.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 창조되기 전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창 1:2).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에 물질이(예: 땅, 바다)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무질서하고 텅 비어 있었고 어두컴컴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순차적으로 설명하는 본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3절부터 31절까지), 성령 하나님께서 깜짝 등장하신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요한복음 1장 1절과 요한일서 1장 1절에 가리키는 태초에 계신 말씀은 성자 하나님인데, 여기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두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사역에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학자들은 성부께서 말씀하시고, 성자께서 창조하셨으며, 성령께서 만물을 소성케 하신다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하는 과정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각각 어떻게 협력하시는지 구분한 것이다. 이는 다음에 살펴볼 말씀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이적 사역에서,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말씀으로 성도의 삶을 변화시켜 그들의 주를 닮게 만드는 성령의 사역에서도 발견되는 흥미로운 특징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물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이르시되로 번역된 히브리어(아매어)는 기본적으로 “말하다”, “명령하다”의 뜻을 갖는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다. “이르시되”는 창세기 1장에 총 11번 나온다(3, 6, 9, 11, 14, 20, 22, 24, 26, 28, 29).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말씀하신 것이 현실화됐다. 혼돈이 사라지고 질서가 잡혔다. 공허한 곳에 만물이 채워졌다. 흑암은 첫날부터 물러났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순간, “빛이 있으라!”(창 1:3).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모두 실재가 됐다. 본문엔 “이르시되”에 이어서 매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그대로 되니라”이다(7, 9, 11, 15, 24, 30). 말씀하신 그대로 현실에 담겼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이루어졌다. 물 가운데에 궁창이 생겼고 물과 물이 나뉘었다(6절).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났다(9절).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땅이 냈다(11절). 하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뤘다(14절). 물과 땅과 바다에 사는 만물이 창조됐다(20절). 땅이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냈다(24절).

그분 입에서 나온 말씀은 헛되이 돌아가거나 힘없이 떨어지거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 없었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만물을 조성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사람을 제외하고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셨다(창 2:7).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기운, 다시 말해 능력이 있었다. 바로 그 말씀의 능력으로 하나님은 무에서 우리가 보는 모든 만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그렇게 현실에 완벽하게 반영됐다. 우리는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실재에 담으셨다.’

 3.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만물에 담겼다

하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존재하지 않던 만물을 존재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다. 말씀 곧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단순히 물질을 만들어내셨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물은 그분의 속성을 반영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창세기 1장은 육 일 동안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만드신 만물을 보시고 ‘좋다’라고 평가하신다(4, 10, 12, 18, 21, 25, 31). 히브리어 원어로는 ‘토브’가 사용됐는데, 영어 성경에서는 보통 ‘good’으로 번역했다. 단순히 멋지고 아름답다는 의미를 넘어서 ‘선하다’는 뜻을 갖는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딤전 4:4). 선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물에 그분의 선하심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이것을 절정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사람을 창조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9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모든 만물엔 하나님의 선하심이 깃들여 있고, 그것들 모두 일정 부분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사람은 아주 특별하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다. 사람은 동물의 모양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지음 받았다.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닮아,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대리인의 역할을 맡기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머지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에 이름을 붙이셨는데(가령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창 1:5; 참고: 8, 10), 사람은 하나님처럼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다(창 2:20).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피조물로 창조되었고,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을 닮아 만물을 돌보고 다스리고 보호하고 경작하고 가꾸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 형상을 닮은 사람이 창조됐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르시되” 당신의 속성을 담아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으로 무시된 그 사건

자, 그런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태초부터 지금까지는 하나님 말씀이 무시되거나 불복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먹지 말라는 말씀이 특별히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을 담아내도록 창조된 사람에 의해 거부된 것이다. “먹지 말라”는 말씀에 사람은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에 “죽었더라”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보라.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날로부터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 됐고 그 후에는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망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일반 은혜로 여전히 만물 가운데 그분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계시지만, 사람의 영혼은 무질서하고 공허하며 흑암 가운데 갇히게 됐다.

그런데, 혼돈과 공허와 흑암 중에서 말씀으로 만물에 당신의 선하심을 담아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은 말씀으로 세상에 다시금 빛을 비추셨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요 1:9-10). 말씀이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장 아름답고 충만하게 세상에 담아내신 것이다. 그 사건은 다음에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