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목사는 고약한 고용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재물과 재능, 노동력을 공짜로 이용해 먹을까?’ 궁리하는 목사는 없고, 만일 있다면 참 목자가 아니라 삯꾼 목자임에 틀림이 없다. 교회가 규모가 커질수록 자연스럽게 전문 사역자를 곳곳에 세우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많은 성도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 가장 은사가 뛰어나고 성품이 바르며 시간을 더 많이 들여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하게 하기 위함이지, 오직 고용된 사람만 일하게 하고 나머지는 전혀 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목사와 교사”로 삼으신 이유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엡 4:11-12). 그래서 목사는 한주간 매일 직장에서 땀 흘리며 수고한 성도들에게 주일에 교회에 와서도 여러 가지 봉사의 일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성도가 교회에 와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영혼의 안식을 충분히 얻고 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런데도 교회는 참으로 많은 봉사의 일이 존재하고, 그 일은 목사 혼자서(혹은 몇몇 소수 성도가)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직장은 돈 받으며 일하고, 교회는 돈을 내면서 일한다’라는 지독한 농담이 있다. 봉사하는 것이 힘들고 수고스럽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 청소나 주방일 등 대부분의 봉사는 다 용역에 맡기고, 성도들은 예배 서비스와 자녀 성경 교육 서비스를 받고 가는 교회가 되면 좋겠나?’라고 우려 섞인 책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자기 입장에서 감정적으로 봉사를 바라보면 이런저런 불평이 나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좁혀지지 않는 각자의 생각을 억지로 화합하려 하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뜻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분명 목사의 중요한 책무가 각각의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성경은 더 구체적으로 성도가 봉사하는 이유와 목적을 제시한다.
1. 봉사는 하나님 은혜(은사)를 나타내 서로의 유익을 구한다
모든 신자가 거듭날 때 성령님의 뜻대로 받는 영적 능력을 은사라고 부른다(고전 12:4-11). 은사(카리스마)의 기본적인 뜻은 ‘선물’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로(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로 여기서 은사 곧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나왔다) 각 성도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혼자 즐기고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교회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성도)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시기 위해 주신 능력이다(고전 12:25).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는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다(고전 12:7). 성도는 오롯이 자기 지혜와 능력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오직 우리 힘에 달려있다면 그만큼 끔찍하게 불가능한 책무는 없을 것이다. 성경은 성도에게 은사를 주신 것을 가리켜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이라 말하는데(고전 12:7), 바로 성령의 지혜와 능력이 우리가 서로 봉사할 때 활용하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우리가 봉사할 때 유익을 얻게 하시고 친히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신다.
그러므로 성도가 봉사하는 이유는 맡기신 은혜(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유익을 얻기 위함이다(달란트 비유를 생각해 보라). 우리가 봉사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서 섬김의 대상인 형제자매에게로 넘치고, 우리 안에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요 13:35). 그러므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당신이 신자라면 분명히 여러 가지 받은 은혜가 있다. 당신에게 맡겨진 은혜는 반드시 밖으로 흘러나와 다른 성도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맡기신 은혜를 낭비하는 직무 유기다.
2. 봉사는 예수님 사랑을 닮아서 그분을 세상에 전한다
이번엔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해보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엡 4:12).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를 말한다(엡 1:23; 골 1:18, 24). ‘세우다’를 뜻하는 영어식 표현은 ‘building up’인데, 이를 생생하게 묘사한 구절이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교회는 단지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는 집단이 아니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모인 봉사단체도 아니다. 그런 유익을 얻거나 줄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기관이나 모임과 완전히 구별된다는 말이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을 기초로 그 말씀이 가리키고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다(모퉁잇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이 그분의 인격과 삶과 가르침으로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나타낸다. 아무리 많은 봉사를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외인이 몰려든다 해도 그리스도 예수 중심으로 모이지 않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 되어 예수를 나타내지 않으면 교회는 교회의 기능을 상실한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쓴 위의 본문에서 교회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고 부른 것에 주목하라. 성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성전에서 그 영광이 떠나가는 환상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셨다. 오늘날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잔해가 아니고, 지역별로 세워진 교회 건물도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함께 모일 때 그곳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함께 연결되어 지어져 가기를 원하신다. 세상의 소금으로 그 맛을 잃지 않기를 원하시고, 세상의 빛으로 그 빛을 잃지 않기를 원하신다. 교회가 교회답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를 통하여 세상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시고, 부패한 세상에 거룩한 은혜를 선포하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우리가 밥을 짓고 주차 봉사를 하고 설거지에 참여하며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이 주신 지헤와 능력으로 함께 봉사한다. 서로를 세워줌으로 함께 일어선다. 서로 봉사하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세상이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분명히 알게 한다. 우리의 섬김은 기브앤 테이크 방식이 아니다. 예수님 방식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실 때도 자기 종들의 발을 씻기셨고(요 13:14),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나아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내어주기 위해서였다(마 20:28). 이런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예수님 사랑이 교회 안에 봉사의 일로 나타나야 한다. 돈 때문이 아니다. 인정받기 위함도 아니다. 더 높은 직분에 오르기 위해서도 아니다.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자발적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지어져 가는 자들의 마땅한 섬김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론
물론, 목사는 교회가 지금 요구하는 모든 봉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현재 성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 봉사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고, 현재 성도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이제는 자기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책무에 따라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만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룩한 처소가 되어 하나님이 기쁨으로 거하실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닮아가며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있게 증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성도들이 봉사할 때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하라(벧전 4:11). 자기를 의지하는 자는 금세 지치고 넘어진다. 봉사의 일이 의무를 넘어 특권임을 알게 하라. 짐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하라. 냉수 한 그릇도 상을 잃지 않을 거라 약속하신 주님이 우리의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마 10:42; 계 2:2). 우리 모두 하나님을 위한 설교자, 하나님을 위한 예배 찬양 인도자, 성가대원, 예수님을 닮은 주일학교 교사, 하나님 영광을 위한 애찬 및 주차 봉사자, 설거지 당번, 주보 담당자가 되자. 하나님을 위한 그 어떤 봉사도 하찮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