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사도 바울이 로마에 투옥되었을 때 골로새 교회에 쓴 편지는 함께 쓴 다른 편지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교리와 실천을 균형 있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옥중서신 중 골로새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이라 불린다(1:2). 골로새 교회 성도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1:4).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생명력을 가지며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교회를 충만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이신 분에게서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기 때문이다(골 2:19).
2023년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모든 교회가 건강하고 또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월하신 그리스도로 충만해진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권면한 내용을 통해 살펴보기 원한다.
1. 더 말씀: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교회
먼저, 교회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다. 지체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각각의 은사를 필요로하지만, 개별성은 공동체를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이 되며, 은사는 자신이 아닌 서로를 섬기라고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 됨이 중요하다. 방법과 의견에 있어서 획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있어서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도 이렇게 아버지께 구하셨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성도가 서로 평강을 이루고 한 몸이 되려면, 피차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를 용서하고(골 3:13),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골 3:12). 이것을 포함한 평강을 이루는 모든 자원을 포괄적인 개념인 ‘사랑’이라 부른다면, 이 사랑이 이 모든 것 위에 더해져 성도를 한 몸으로 온전하게 맨다(골 3:14).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공급하시는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는 것이다(골 3:15).
이런 맥락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말한 부분은 매우 적절하다(골 3:16). 그리스도의 평강은 심미적인 작용이나 정신 훈련, 여러 철학적 교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필요하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 평강을 누리게 한다.
말씀은 반드시 교회가 하는 모든 것의 자원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예식을 빚는 원칙, 교회의 가르침을 다듬는 기준, 교회의 행정과 운영을 결정짓는 방향타, 본문에서 뒤따르는 성도 간의 권면과 가르침,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 그리고 말이든 일이든 “무엇을 하든지…다” 말씀이 동력과 지침이 된다. 공예배 설교 시간에 선포되는 말씀뿐만 아니라 교회로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말씀이 최종 권위를 갖고 말씀 앞에 겸손히 굴복하며 기쁨으로 말씀을 따르기 원하는 교회가 정말 건강하고 성장하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지체는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2. 더 교제: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일으키는 일차적인 사역은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성경 본문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된다면 누가 전달하는지와 상관없이 성경적인 가르침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성도는 마땅히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가 그 역할을 감당한다. 하지만 “피차 가르치며”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가르침의 사역은 몇몇 설교자가 전담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영역에서 그리고 교회 권위 아래 허락된 소그룹 영역까지 우리는 말씀으로 서로를 가르칠 수 있다.
‘가르치다’에 해당하는 단어(디다스코)가 지식과 정보의 전달에 강조점이 있다면, ‘권면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뉴테오)는 충고하고 훈계하여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그래서 성경상담을 뉴테틱 상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 주고받는 “모든 지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으로 채워진 지혜여야 한다. 나누는 지식과 정보에 거짓이 없어야 하고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해야 한다. 또한 그 목적은 지식 자랑이 아니다. 바른 지식으로 서로 사랑하는 권면 즉 서로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주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도에서 벗어난 삶을 교정해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설교는 가르침에 중점을 두고 성도가 교제할 때 권면할 기회가 많이 생긴다.
이런 측면에서 설교자와 성도가 하는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설교자는 성경 본문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 하나님께서 본문에 의도하신 참 의미를 성도에게 밝히 말해줄 의무가 있다(본문의 문법적-역사적 해석이 필수적이다). 강해 설교라고 부르는 이 과정을 통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성도에게 전달된다. 성도는 이것을 각 성도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도록 도울 의무가 있다. 교제라고 부르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성도의 삶 속에서 실제로 역사하도록 서로를 권면하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한두 사람이 일하는 교회가 아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모두가 성장하는 교회다. 한 몸을 이루는 각 지체가 풍성한 말씀을 서로에게 전달하고 서로의 삶에서 일하게 하시도록 돕는 교회가 되는 2023년이 되기를 간구한다.
3. 더 찬양: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교회
태초에 하나님께서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지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말씀하신 주님이 교회를 지으신 목적도 같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게 하시기 위해서다. 골로새서와 같은 시기에 쓴 에베소서에 이 부분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교회에 충만한 말씀이 궁극적으로 행하는 사역은 예배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구분하려는 여러 사람의 노력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찬양의 내용이 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하신 일(구속 사역)을 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구약의 시편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가 불렀던 그리스도 중심적 찬송시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악기, 악보의 사용 유무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교회에 풍성히 채워질 때 서로 하나님의 모든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이 일어나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예배가 메마르고 찬양이 형식적으로 드려지는 교회를 건강한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는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인 관계가 아니다. 인격적인 관계다. 사랑하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빠지고 그 사람에 관하여 계속 생각하게 되고 노래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수록 교회는 그 지식을 서로에게 말할 뿐만 아니라 함께 노래하기 원한다. 2023년, 교회의 지체가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찬양받으시기를 구한다. 교회가 부르는 찬양이 악보를 따라 내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참 만족과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노래가 되기를 구한다. 그런 교회가 참으로 건강한 교회다. 성장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뿐만 아니라 그 은혜 안에서 이루어진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