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변질시키는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과 반대로 원수 사탄은 선을 악으로 바꾼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바르게 규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사람을 인도하는 선한 도구였지만, 사탄은 그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로 사람을 내쫓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죄로 갈라놓았다.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은혜의 징표이지만, 사탄은 오늘날 홍수 심판의 원인이었던 사람의 죄, 특별히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를 거스르는 역리의 죄를 상징하는 도구로 바꿨다. 영혼의 구원을 돈으로 얻어내려는 면죄부 복음의 폐해를 고발하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의 복음을 가지고 교회를 개혁한 아름다운 날을 사탄은 온갖 귀신을 숭배하고 기념하는 어두운 날로 대체했다.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시고 종말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하나님을 흉내 내 사탄은 ‘짐승의 표’를 사람들의 이마에 찍고 자기를 숭배하도록 수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이처럼 사탄은 하나님의 선을 왜곡하고 자기의 것으로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인다.
크리스마스는 어떤가?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날을 말한다. 성탄절이 기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사탄은 전혀 엉뚱한 것들로 이날을 기념하게 한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예배하게 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어 사람들이 들뜨고 흥분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건 사탄이 조금도 우려하는 일이 아니다. 그 모든 감정의 동요가 예수님과 그분이 하신 일로 인해 일어나지 않게만 하면 된다. 가령 연인과의 즐거운 시간, 바쁜 연말 하루 종일 쉴 수 있는 여유, 술과 음악을 즐기며 파티를 벌이는 기쁨 등 이날을 기쁘게 만들 이유는 수없이 많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탄절을 기념하기를 원하시는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날은 그분의 탄생보다는 돌아가심과 관련이 있다.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떡과 잔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시고 제자들에게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셨다(고전 11:24). 그래서 교회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며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고 있다(고전 11:26). 그런데 떡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우리를 대신하여 찢기신 살이다. 잔은 우리를 대신하여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살과 피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나신 “성육신”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성탄절이다. 성만찬이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일에 집중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그분이 성육신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나셨을 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이 이를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원하셨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예수님이 나신 소식을 알리며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라고 말했다(눅 2:10). 천군과 천사가 함께 그날 밤 찬양했던 노래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였다(눅 2:14). 시므온과 안나도 아기 예수님을 보고 찬송과 감사를 드렸다(눅 2:28, 38). 이것이 마땅한 반응이다. 초대 교회가 부른 찬송시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서신서의 여러 말씀들은 주님의 성육신을 노래한다. 대표적으로 빌립보서 2장엔 다음과 같은 찬송시가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빌 2:6-8)
어떤 사람은 12월 25일에 성육신을 기념하게 된 유래를 신뢰하기 어려운 정보를 조합하여 태양신 숭배와 연관 짓는다. 그래서 성탄절에 성육신을 기념하는 건 거의 신성모독에 가깝다고 말한다. 하지만 12월 25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념하며 예배하게 된 역사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와 5세기 어거스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어떤 이들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것을 금지한 성경의 가르침을 가지고 성탄절을 기념하는 것을 반대한다(갈 4:10). 하지만 사도 바울이 이것을 금한 이유는 마땅히 돌려야 할 찬양과 경배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날과 절기를 ‘지키는 것’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잘못된 방식이 그가 교회를 위해 수고한 은혜의 복음 사역을 헛되게 만들까 두려웠기 때문이다(갈 4:10-11).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육신을 기념하며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예배의 날이 꼭 12월 25일에 제한될 필요는 없지만, 교회가 계속해서 지켜온 선하고 아름다운 전통을 폐기할 이유도 없다. 사탄이 이날을 다른 제목으로 기념하고 노래하게 만드는 일에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생을 누리는 교회는 속지 말아야 한다(요 6:54). 우리를 위해 찢기신 살과 우리를 대신하여 흘리신 피를 가지고 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모든 영광과 찬송을 오직 주님께만 돌려 드리는 것이 합당하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2). 적어도 성탄절 만큼은 시간을 두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새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신실한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송축하는 일에 집중하자.
성탄절에 다른 즐거움을 얻는 것은 죄인가?
그러면 성탄절에 다른 것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죄인가?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꺼린다. ‘예수님 생신이지 너희 생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 가정도 있다. 한국은 가족끼리 특별한 식사 시간을 갖고 전통적인 음식을 먹거나 하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그렇게 즐기는 경우도 많다(종교와 상관없이). 교회에서는 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성탄 전야 행사를 마치고 밤을 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세속적인 이야기에 치중된 대화에 몰두하거나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일에 매진하다가 12월 25일 00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잠시 반성할 때도 있다. 산타 복장이나 장식은 괜찮을까? 산타의 원조 모델 격인 성 니콜라스가 볼 때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극도로 미워했던 사람이다(관련 칼럼).
주님은 기쁨을 소멸하시는 분이 아니라 기쁨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3)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실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시작이었고,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죗값을 치르신 것도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주 안에서 기쁨의 절정을 누릴 수 있다.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주님이 주신 더 큰 선물을 기억하고 서로를 축복할 수 있고, 식사를 함께하면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주님의 살과 피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 함께 교제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동정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동정할 수 있고, 예수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이들과 더불어 친교의 시간을 누리며 주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하신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기쁨의 원천을 잊지 않는 것이다. 성탄절의 기쁨은 주님과 상관없이 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 때문에 더욱 충만하게 누리는 것이다. 사탄이 주로 사용하는 기만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마땅히 돌려야 할 감사와 경배를 가로채는 것이다. 결국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들을 찾아 헤매도록 만든다. 주님은 우리를 다시금 영생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시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하셨다. 바른 근원을 찾은 우리의 영혼은 이제 하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물을 충만한 기쁨으로 사랑할 수 있다. 성탄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기쁨이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어린양에게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상류로부터 하나님 주신 모든 선한 것에 미치는 하류까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