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언제나 흘러가는 것처럼 똑같이 흘러가지만, 사람은 그 시간을 구분하여 연초와 연말을 맞이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묵은해와 새해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을 지지하면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숙고할 것을 제안합니다.

인간은 시간의 피조물입니다. 묵은해와 새해는 우리에게 다른 느낌을 줍니다. 우리는 묵은 것과 새 것으로 시간을 구분합니다. 이런 시간 구분 자체는 우리가 적절히 활용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질주하던 삶을 멈추고 생각하게 하고, 바쁜 삶을 중단하고 숙고하게 하는 일이라면, 인간과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숙고하게 하는 것이라면, 묵은 것이든 새 것이든 모두 좋습니다.[1]

2020년부터 이제 곧 묵은해가 될 2021년까지 우리는 그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전염병과 길고 답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천연두, 흑사병이나 말라리아처럼 속절없이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진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적지 않은 사람이 죽고 병들었으며 훨씬 더 많은 사람이 고통과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바이러스는 우리 육신의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습니다.

2022년 새해 우리의 바람이나 간절한 기대가 있다면 바로 그런 손상으로부터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를 축복한 것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자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 영혼이 잘되기를 간절히 구합니다(요삼 1:2). 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2022년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회복하여 범사에 잘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사람은 반복적인 일에 금세 싫증을 냅니다. ‘매너리즘’이라고도 부르는 이 현상을 극복하는 최고의 비결은 왜, 무엇을 혹은 누구를 위해 그 일을 하는지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의 만찬을 “행하여 를 기념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고전 11:24-25).

예배에 우리 전인격(마음, 뜻, 힘)이 동원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예수님은 입술로만 자기를 경외하고 마음은 멀었던 예배자를 보며 비통히 여기셨습니다(마 15:8). 미지근한 예배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은 마치 예배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자리에 억지로 앉아있지만, 도무지 진심으로 예배할 마음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입에서 토해내겠다고 경고하신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상태입니다(계 3:15).

만일 당신이 부르심을 받은 예배자의 무리 중에서 기쁨으로 예배하고 있지 못하다면(시 111:1), 매일의 삶에서 당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기쁨으로 행하지 못하고 있다면(롬 12:1), 2022년 새해 반드시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예배의 기쁨은 우리의 결단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 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시며 입술을 열어 주를 찬송하고 전파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시 51:12, 15).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죄를 회개하고 마땅히 돌려야 할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는 허물로 인해 상한 심령을 가지십시오. 당신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십시오. 2022년 새해는우리 모두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갖게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계 2:4-5).

둘째, 교제의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코로나바이러스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만 멀어지게 한 것이 아니라 성도와 성도 사이도 멀어지게 했습니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두게 한 것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영적 접촉도 뜸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성도가 교제의 부재에 아쉬움과 결핍을 느꼈지만, 특별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애써 받아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두기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제 가운데 허락하신 축복과 은혜가 너무나 크고 그것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폐해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합니다.

저는 설교의 중요성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절하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기 몸인 교회에게 필요한 모든양분과 생명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교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이서로의 삶에 더욱 깊이 뿌리내립니다. 사도 바울의 이 권면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설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하나님 주신 은혜의 방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거기서 흘러가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풍성히 채워진 우리는 말씀에 가득한 모든 지혜를 가지고 “피차” 가르치며 권면합니다. 서로교제를 나눕니다. 말씀은 이후에 나오는 노래, 감사, 찬양, 삶의 예배(말+일)를 끌어내는 원동력이고, 무엇보다 우리의 교제를 지혜롭고 유익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입니다.

오랜 교제의 부재가 가져오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영혼에 선포된 말씀이 흘러넘쳐 다른 지체까지 전달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중간에 막혀버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듣고 배우고 나누는 것으로 성장합니다. 지체의 기능은 모두 다른 지체를 돕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교제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우리는 갈기갈기 찢긴 지체를 하나하나 살려보려고 애쓰는 흉측하고 터무니없는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건강한 몸은 지체 간의 교류가 활발한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흐르는 생명력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그 말씀은 사랑과 지혜의 특징을 가지고 서로를 향해 흘러가야 합니다.

2022년 세상은 계속해서 ‘거리 두기’를 이렇게 저렇게 조정하면서 우리 사이를 더욱 멀어지거나 조금은 가깝게 만들겠지만, 아무쪼록 교제하는 기쁨을 풍성히 누리는 새해가 되길 원합니다. 지난 세월, 교제 없는 것이 오히려 편하고 익숙해졌다면 그것이우리 영혼에 끼친 손상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피차 권면하고 가르치며 유익을 주고받는 교제를 회복하기 원합니다.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고, 하나님은 성령께서 감동으로 쓰신 말씀을 통해 우리가 나눌 교제를 하나님의 모든 지혜로 풍성하게 만드십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서로 나누는 일에 우리가 더욱 힘쓰기를 원합니다.

셋째, 섬김의 기쁨을 회복하십시오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0-11)

성령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대로 각각 은사를 주셔서 서로 섬기게 하셨습니다. 은사는 영어로 gift(‘선물’)로 그의미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분명한 선물입니다. 은사는 혼자 즐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다른 지체를 섬기는 일에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서로 봉사하라”). 베드로는 “은사”를 다른 말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선한 청지기 같이 맡”았다고 말합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성도에게 전달하는 봉사를 합니다. 다른 봉사를 하는 성도 역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은혜의 능력을 다른 성도에게 전달합니다. 결국 서로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분께 찬양과 경배가 돌려집니다. 우리는 각각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또 서로에게 흘러넘치는 하나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선행으로 은혜의 빚을 갚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선행은 더 많은 은혜의 빚을 지게 할 뿐입니다”라고말했습니다.[2]

하나님의 불러낸 무리, 성령으로 인해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당신은 2022년 하나님께 받은 여러 가지 은혜를 어떻게 선한청지기처럼 맡아 나누시겠습니까? 어떤 모양이든 상관없습니다. 직분을 가지고 봉사하거나 직분 없이 봉사하거나 그게 중요한건 아닙니다. 말로 섬기거나 몸으로 섬기거나 봉사하는 것은 같습니다. 남들이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그걸 신경 쓰지 마십시오. 중요한 건 내게 성령께서 부어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바닥에 묻어두고 주인을 만나는 어리석고 악한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교회 안에서 어떤 영혼에게 더욱 관심을 두게 하시는지, 어떤 영역에서 성도에게 유익을 끼치고 싶은 소원을 불러일으키시는지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하시는 ‘충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고전 4:2).

존 파이퍼 목사님이 옳습니다. 당신은 오히려 섬김을 통해 더 많은 은혜의 빚을 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빚은 우리를 괴롭게 하여, 지지 않는 게 좋지만, 은혜와 사랑의 빚은 많이 질수록 더 좋습니다(롬 13:8). 우리는 섬길수록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맡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번 것처럼, 두 달란트 받은 자가 두 달란트를 더 늘린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더 많은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로 서로를 섬긴다면 말입니다.

2022년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이 외에도 더 있겠지만, 사람은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회복하는’ 새해가 되길 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기쁨을 충만하게 하시기를, 우리가받은 지혜와 은혜의 말씀으로 서로 풍성한 기쁨으로 2) 교제하며 3) 섬기게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만일 당신이 지난 세월 여러 모양으로 퇴보했다면, 새해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의 강권하심으로 더욱 진일보하게 만드실 것을 신뢰합니다. 그러므로 끝으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자라가시길 원합니다(벧후 3:18). 그분을 떠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없습니다(요 15:5).

 

[1]             마틴 로이드 존스, <복 있는 사람> (두란노, 2021), 23p

[2]             존 파이퍼 <나의 목회자 형제들에게> (좋은씨앗, 2021), 7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