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자손 요셉 그리고 예수님

마태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는 두 핵심 인물이 등장한다. 요셉 그리고 예수님.

요셉과 예수님은 공통점이 많다.

요셉은 ‘여호와는 도움이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예수(히브리어로 ‘여호수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을 갖는다. 요셉은 “다윗의 자손”이었고(마 1:20), 예수님 역시 마태가 처음부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한다(마 1:1).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마 1:19), 예수님 역시 빌라도의 아내 입을 통해 “옳은 사람”으로 불렸다(마 27:19).

요셉과 예수님이 하신 일에도 공통점이 있다.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언약에 기초한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요셉이 한 일
먼저 요셉을 살펴보자. 그는 마리아라는 여인과 약혼했다. 당시 약혼은 오늘날과 달리 매우 강한 구속력을 가졌다. 약혼한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 관계가 되었고(마 1:19-20), 둘 중 하나가 죽는 경우 홀아비나 과부가 되었으며, 파혼하는 경우 이혼과 맞먹는 경제적 보상을 요구했다. 보통은 약혼 후 일 년간 부부 관계없이 약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때가 되면 아내가 부모의 집을 떠나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고 혼인 언약과 함께 잔치를 열고 공식적인 부부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 아내 마리아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죄인이라는 걸 발견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던 것이다(18절). 마태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처음부터 밝혔지만, 요셉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요셉이 확실히 알게 된 건 자신과 약혼한 아내가 누군가의 아기를 임신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본은 19절을 “그러나”로 시작한다.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지만, 요셉은 그보다 더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첫째 그는 “의로운 사람”답게 대처했다. 보통 우리는 이 표현을 바로 따라오는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와 연결시킨다. 요셉이 마리아의 죄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요셉의 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요셉의 의로움이 요구한 행동은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지키려는 의로운 사람 요셉은 간음한 여인과 도저히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다(레 20:10). 의로운 자는 마땅히 죄를 멀리한다.

둘째, 하지만 요셉은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자비를 마리아에게 베풀기 원했다. 규율대로 간음한 남녀를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은 당시 로마 정권 아래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요셉은 원한다면 공적으로 마리아의 부정함을 드러내고 이혼을 진행하며 그녀를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세 증인과 함께 조용히 이혼 절차를 밟으려 했다. 약혼이 파기되고 마리아가 아기를 낳으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정죄가 일어나겠지만, 요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긍휼을 마리아에게 베푼 것이다.

요셉이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에”(20절),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꿈속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먼저 하나님은 요셉의 오해를 풀어주셨다. 마리아가 간음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0절). 그리고 하나님은 요셉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셨다. 첫째, 마리아가 낳을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21절). 둘째,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약혼 언약대로 결혼하여 아내를 데리고 와서 부부로 살라는 명령). 특히 예수의 이름 뜻을 풀어주실 때 “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라는 시편 130편 8절 말씀을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주권 아래 마리아를 통하여 아기가 탄생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요셉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했고, 요셉은 분부하신 그대로 행하여 첫째, 그의 아내를 데려왔고(24절), 둘째,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이름을 예수라 지었다(25절).

요셉이 한 일을 정리해보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죄인 마리아와 관계를 끊으려 했다. 그는 최선의 자비를 베풀어 조용히 그 일을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나타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있음을 알려주셨고, 요셉은 하나님 명령에 따라 약혼 언약을 이행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성령으로 잉태한 아들 예수님을 양자로 삼고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을 했다. 결혼 언약에 따라 마리아와 예수님을 가족으로 삼고 신실한 사랑을 베푼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
그러면 예수님은 육신의 아비 요셉과 얼마나 유사한가? 나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일을 하셨는가?

먼저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요셉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분이다. 그분은 죄인과 도저히 함께하실 수 없는 분이다. 빛이신 그분은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고(요일 1:5), 진리이신 그분은 거짓이 조금도 없으신 분이다(민 23:19). 의로운 하나님은 죄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베푸신 은혜는 요셉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요셉은 대놓고 죄를 드러내지 않더라도 조용히 그 관계를 끊으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과 관계를 가만히 끊으려 하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화목을 이루려 하셨다. 성령으로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을 보내셔서 죄인이 가지고 있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죄를 완전히 사해주기를 원하셨다. 최선이 아니라 최고의 사랑, 적절한 수준이 아니라 풍성한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예수”의 이름 뜻이 무엇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21절). 당시 많은 유대인이 경제적, 군사적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더 본질적인 문제, 죄로부터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를 보내주셨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고 말한다(22-23절). 하나님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요셉에게 말했지만, 선지자 이사야에게는 아들의 또 다른 이름을 알리셨다. 바로 “임마누엘”이다(23절).

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다(23절). 예수님은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죄인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함께 계시러 오신 하나님이시다(마 28:20). 요셉은 하나님을 통해 오해가 풀렸을 때, 부정하다고 착각한 아내를 데리고 와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베풀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참으로 죄가 있는 부정한 백성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기시고 신부로 데리고 와 새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영원히 베푸신다.

요셉과 마리아, 예수님과 그의 백성을 비교하며 마태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약혼-결혼의 강력한 언약 관계를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망가뜨리는 죄는 간음이다. 사랑하여 내 인생을 걸고 함께 하려는 사람이 배신한 것만큼 분노와 원망을 일으키는 죄가 없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요셉이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이행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전에 요셉이 마리아에게 보인 반응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다.

한편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한 행위는 영원한 고통을 수반한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올 만큼 심각한 죄다. 그런 심각한 죄와 허물로 죽어 세상과 마귀와 타락한 육신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 아닌 대상과 평생 간음하며 사는 우리에게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생각해보라(엡 2:4).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시고, 그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우리를 신부로 삼아 하늘의 혼인 잔치와 함께 영원히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결론

성탄절의 가장 기쁜 소식은 가까이할 수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름 속에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고, 언약궤와 성막을 통해 백성을 만나러 오신 것도 아니며, 천사나 사람을 대신 보내신 것도 아니고, 꿈이나 환상을 통해 잠시 보여주신 것도 아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셨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모양(사람의 모양)과 방식(잉태-출산-성장)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만나주셨다. 일시적으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하러 오셨다. 임마누엘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마 28:20),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과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다(계 22:5).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비밀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 쉽게 말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곧 영생이라는 것이다. 죄많은 우리가 어떻게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겠는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를 알고 믿는 자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영생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선물, 하나님과 영원한 사귐이 있는 선물만큼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감사할 선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