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처음으로 유평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부터, 유평교회는 약 48년 가까이 구원 받은 여자들이 교회의 공적 예배에 참석할 때
머리에 너울을 쓸 것을 가르쳐왔습니다. 유평교회가 이렇게 해왔던 것은, 단지 교회의 전통이나 관행을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전서 11장 2-16절에 말씀하신 명령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유평교회를 인도하는 목회자들이 고린도전서 본문을 공부하고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있는 교회들과 교제하면서, 과연 성경이 여자의 너울에 대하여 어떻게 명령하고 있는지 더 분명히 연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미국 리틀톤 바이블 채플에서 목회 하시는 알렉산더 스트라우크 형제님의 견해와 그 교회가 순종하고 있는 모습은 유평교회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또한 우리는 신자주석성경의 저자이자 신실한 성경학자이신 윌리암 맥도날드 형제님도 알렉산더 스트라우크 형제님의 해석을 ‘가능한 해석’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평교회 목회자들은 고린도전서 11장을 다시 연구하였고 2013년 상반기에 교회 전체가 고린도전서를 공부하면서, 여자의 너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재정립하였습니다.

4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어져온 방식이 있기 때문에 이 새로운 관점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여자의 너울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 여러분에게 자세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베뢰아 사람처럼 성경이 과연 그러한가 상고하는 자세로 고린도전서 11장과 함께 이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 안에 자유와 확신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Q. 너울은 써야 합니까?

네. 너울은 반드시 써야 합니다. 너울은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두 가지 ‘전통’을 가르치고 있는데,
첫 번째는 2-16절에 기록된 ‘여자의 너울’이요, 두 번째는 17-34절에 기록된 ‘주의 만찬’입니다.
이 전통은 사도 바울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역할은 전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의 만찬에 대해서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23절).

사도 바울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이와 같은 ‘전통’을 지키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살후 2:15; 3:6)
[1].
왜냐하면 이 전통이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너울을 쓰는 것 역시 어떤 특정 교회의 낡은 전통이 아니라
성경의 직접적인 명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써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여자가 너울을 쓰는 것에 대하여
매우 근본적인 이유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
이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7-10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3절).

사도 바울은 7-9절에서 태초의 창조 질서,
즉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돕는 배필로 여자가 창조된 질서를 언급하고,
3절에서 동등하지만 분명한 질서를 가지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로 이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조질서와 하나님 안에서의 질서를 들어 여자의 너울을 쓸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10절에서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머리 위에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문화나 환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울의 명령은 특정 교회와 특정 시대, 특정 사회에 국한되는 명령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과 문화를 막론하고 주님의 교회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6절을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Q. 누가 써야 합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여자’에게 머리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바울은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자’가 반드시 머리에 써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6절은 쓰지 않으려면 차라리 머리를 깎으라고 말합니다.
이는 실제로 머리를 깎으면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머리에 쓰지 않는 것은 민 것과 다름이 없으니(5절) 머리에 쓰지 않으려거든
차라리 머리를 깎거나 밀어서 부끄러움을 당하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매우 강한 어조로 여자에게 너울을 쓸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도 바울은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라고 말하면서
반드시 여자는 너울을 쓸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남자들은 절대 쓰지 말아야 합니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4절),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7절)
에서
남자는 머리에 쓰지 말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14절에도 남자의 본성이 긴 머리를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듯,
머리에 쓰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남자들에게는 너울을 쓰지 말 것을,
여자들에게는 너울을 반드시 쓸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Q. 언제 써야 합니까?

여자가 기도하고 예언을 때입니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5절),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마땅하냐”(13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아주 특정한 때를 말하고 있는데
바로 ‘여자가 기도하고 예언을 할 때’입니다.
바울은 여자들이 항상 머리에 써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잠을 잘 때, 밥을 먹을 때, 화장실에 갈 때, 일할 때, 이동할 때 등
일상생활에서 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도와 예언을 할 때 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기도’가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본문 어디에도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만약 그것이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를 의미한다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한 사도 바울은
여자들에게 “쉬지 말고 너울을 쓰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바울은 쉬지 말고 항상 너울을 쓰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또한 ‘예언’도 마음 속으로 하는 예언은 없습니다.
예언은 분명히 듣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받은 것을 그들 앞에서 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와 ‘예언’은 사람들의 모임 가운데 공적으로 행해지는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 4절에서 남자가 드리는 기도와 예언에 대하여 말한 뒤,
바로 이어서 5절에 여자의 예언과 기도에 대하여 말한 것을 볼 때,
여자가 드린 기도와 예언이 남자가 드린 것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기도와 예언”이라는 동일한 행위에 있어서 남자는 쓰지 말 것을,
여자는 쓸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교회의 어떤 모임에서 공적인 기도나 예언을 할 때
(기도나 예언을 하는 그 여자가) 너울을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지는 않지만
그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여자들은 너울을 써야 할까요?

성경은 그 자리에 참석하는 여자들도 너울을 써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이 유평교회가 그 동안 지켜왔던 방식과 다른 부분입니다.
저희는 그 동안 예배 시간에 참석하는 모든 주 안의 자매들에게
너울을 쓸 것을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지 않는 여자들도 너울을 쓰라고
명령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울에 대한 가르침은 고린도전서 11장 2-16절에 기록된 것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너울에 대한 구체적인 명령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울에 대해 언급한 유일한 말씀인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예배 시간에 참석한 모든 자매들에게 너울을 쓰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직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는 여자들에게,
그들이 지금 하나님이 남자에게 주신 권세(하나님의 형상과 영광)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표시인 너울을 쓰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은 권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권세 아래 있는 표”인 너울을 쓰고 하는 기도와 예언은,
여자가 하는 그 예식이
남자의 권위(또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질서에 순종함으로 행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기도나 예언을 하지 않는 여자들은 “권세 아래 있다는 표”를 보여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여자들에게 아무런 명령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여자가 남자와 본질적으로 동등하게 창조된 자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11, 12절).

여자와 남자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한 특별한 경우 (여자가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너울을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남성 우월주의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그런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권세 아래 있는 표”를 두라고,
창조의 원리와 하나님의 질서, 그리고 천사들의 이유를 들어 강하게 명령한 것은,
바로 여자가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고 분명히 가르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에서 너울을 쓰라고 명령하지는 않았습니다.
권세 아래 있는 표, 너울은
오직 고린도전서 11장에 기록된 이 특별한 상황,
여자가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입니다.

Q. 어디서 써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1장 본문은 여자가 공적으로 예언과 기도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혹은 어떤 모임에서 여자가 공적으로 기도와 예언을 했을까요?
사도 바울은 어디에서 너울을 쓰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일까요?

고린도전서 14장과 디모데전서 2장 말씀을 통해 그것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고전 14:34).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딤전 2:11-12).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여자들이 공적으로 예언과 기도를 할 때 너울을 쓰라고 명령했는데,
14장에 와서는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의 말씀은 여자들에게 일체 조용할 것과 가르치는 것을 금함으로써
고린도전서 14장 말씀을 더욱 지지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앞선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분명히 너울을 쓰고 예언과 기도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여자들이
공적으로 예언과 기도를 할 수 있었다면 이것은 어떤 모임이었을까요?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고린도전서 14장과 디모데전서 2장에 나오는 ‘교회’는 전체적인 모임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여자는 교회에서…”라고 언급하여
이 곳이 교회가 모인 장소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 11장은
이와 다른(전체적으로 모인 모임이 아닌) 경우의 모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면서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전체적인 모임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소규모 모임들에서도 가르쳤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들도 전체적으로 성전에 함께 모이기도 하고 각 집에서 소규모로 모이기도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나이가 많은 여자들이 어린 여자들을 가르치는 모임도 있었습니다(딛 2:3-5).

이러한 소규모의 가정집회나 구역집회 등에서 여자들이 기도하거나 가르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모임에서
여자가 공적으로 기도하고 가르칠 때 너울(권세 아래 있는 표)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1장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해석을 실제 교회의 여러 모임에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세세한 상황들에 대하여
우리는 지혜와 양심에 따라 다음과 같은 두 성경적인 원리에 순종하면서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 교회 전체로 모일 경우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지 말라.

둘, 그 외의 모임에서 여자가 가르치거나 기도할 때
너울을 써서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것을 보이라.

고린도전서 11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여자들이 은사에 따라 가르치거나 기도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전체로 함께 모일 때에는 “잠잠하라”는 분명한 명령에 순종해야 하지만,
그 외의 모임에서는 여자들에게 기도와 예언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주
님 안에서 가르치는 은사는 남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여러 가지 소규모 모임들 중에
자매들이 자신의 은사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자매들은 사도 바울의 “잠잠하라”는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나도 가르칠 수 있으니 언제든 가르칠 기회를 달라’고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여자의 가르침은 항상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남자의 권위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너울의 의미입니다.

Q. 써야 합니까?

왕이신 하나님의 질서를 선포하기 위해서 써야 합니다.
너울은 하나님의 놀라운 질서를 보여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사이에 질서가 있는 것처럼(3절),
남자와 여자도 창조되었을 때부터(죄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그 안에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있었습니다(8-9절).

이 창조의 원리는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원리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존재이지만(11-12절),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질서를 너울이라는 도구를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남자는 머리에 쓰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보여주고(7절),
여자는 머리에 쓰는 것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울을 쓰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분이 세우신 질서에 남녀가 순종함으로써
창조주이시며 모든 질서 위에 왕으로 계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약

너울을 반드시 써야 합니까?
네, 반드시 써야 합니다. 누가 써야 합니까? 주 안의 모든 여자들이 써야 합니다.
그러나 항상 쓰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가 기도하거나 가르칠 때 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전체로 모인 경우가 아닌 여러 작은 모임들에서
자신의 은사에 따라 가르치거나 기도할 때 너울을 써야 합니다.
너울을 쓰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여자의 너울’입니다.

태도의 문제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여자의 너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유평교회는 이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교회의 전체적인 모임 외의 모임에서
여자가 자신의 은사에 따라 공적으로 가르치거나 기도할 때
너울을 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과 의심을 가진 채 억지로 순종하려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은 고린도전서 11장 말씀의 참된 의미를
진지하게 공부해보고 확신을 얻은 뒤 자유함으로 이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너울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혹은 너울을 쓰지 않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다른 교회에 참석하는 경우, 만약 그 교회가 유평교회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너울을 습관적으로 써온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해석은 어려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는 그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충분히 상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고린도전서 11장 말씀은 모든 믿는 여자들이 전체적으로 모일 때,
공적으로 기도나 예언을 하지 않더라도
항상 너울을 쓰고 있을 것을 명령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원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러한 명령을 찾아볼 수 없다면,
어떤 근거로 모든 여자들이 다 너울을 쓰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합당한 대답을 성경 안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유평교회는 우리가 해왔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사람의 관습이나 견해를 따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항상 상고하고 그 말씀의 진리를 순종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평교회의 오랜 꿈과 목표인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세우기를 소망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모든 수고와 노력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높여 드리기 원합니다.


[1] 데살로니가후서 2:15 –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3:6 –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2] 어떤 이들은 디모데전서 2장 11-12절을 인용해 여자들은 어떤 곳에서도 기도하거나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전서 3:15 말씀을 통해 위의 말씀이 교회 전체가 모였을 때 적용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디도서 2:4에서는 늙은 여자가 젊은 여자를 교훈하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