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은 참 놀라운 일로 가득 차 있는 장입니다.
1-15절에서는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16-20절에서는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온
아이를 칭찬하고
‘우리의 적은 것을 크게 사용하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것을 드리자’고 말하지만
요한이 이 사건을 기록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요한이 이 두 가지 놀라운 사건을 기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축사하시고 물고기와 떡을 계속해서 만드심으로
오천 명(여자와 아이를 포함하면 만 여명)의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그 누가 떡과 고기를 창조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님은 자연 법칙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연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은
그 모든 자연 법칙을 초월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창조하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은 이 것을 증거하는 두 가지 놀라운 표적을 요한복음 6장에 기록한 것입니다.
저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또 다른 놀라운 장면을 소개하기 원합니다.
앞의 두 가지 엄청난 사건,
예수께서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키는 놀라운 표적들이 분명하게 주어지고 나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더 놀랄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요한복음 6장 22절부터 시작됩니다.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람들이었습니다. 1, 5절에 기록된 “큰 무리”들 입니다.
그들에게 지난 밤은 엄청난 밤이었습니다.
수 많은 병자들이 그 분의 말씀 한 마디에 말끔히 씻겨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눈 앞에서 빵과 고기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이분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이분이야 말로 우리의 소망이며 우리를 구원할 자라는 마음에 흥분되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6:14)
구약성경에 계속해서 예언되었던 바로 그 분이 오셨습니다.
그가 하신 일을 볼 때 이 분이야 말로 약속된 그 메시아입니다!
그들은 이튿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어제 저녁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두고 가버나움으로 떠난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분명히 이 곳에 계실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디베랴에서도 예수님을 찾던 무리들이 배를 타고 와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도 보이지 않자, 그들은 혹시 가버나움으로 가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들을 타고 가버나움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예수님을 마침내 찾게 되었습니다.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요 6:25)
그들은 애타게 예수님을 찾았고 마침내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사실 그것이 예수께서 전날 밤 그들을 떠난 이유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느니라 (6:15)
큰 무리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들이 얻게 되는 것들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배를 채워주는 사람이 왕이 되어 언제든 걱정 없이 먹고 살기 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두 가지 표적은 바로 이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영생을 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영생이신 예수님 보다는
그분을 통해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물질과 양식을 기뻐하였습니다.
자신들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왕으로 모시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음식을 주고 자신들의 병을 고쳐줄 수 있는 이 사람을
왕이라는 타이틀을 주고 자신들을 섬기게 하기 원했습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는 자로 섬기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봐요! 전날 그 두 손으로 물고기와 빵을 만들어내고
질병들을 말씀 한 마디로 고치시고
바다 위를 걸으신 이 분은
정말 당신들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당신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데
고작 빵이나 주고 이 세상 살 때 불편한 것 없게 도와주는
사람으로 생각 하는 것이 말이나 되오?
여러분이라면 이렇게 그들에게 외쳤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물질적인 것들 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필요를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6:27)
빵이나 먹고 병 고침 받는 일로 나를 찾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영생을 주는 사람이다.
너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영혼의 구원을 내가 주노라.
이 땅에서의 배부름과 건강함은 아주 일시적이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이 영생은
영원한 것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예수님은 바로 이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6:40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제공한 것들에 기뻐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별로 흥미로운 것이 못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들이 좋아서 그분을 찾았던 것이지
그분이 누구신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라는 이 청년은 요셉이라는 목수의 아들 아닙니까?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별 성과가 없자
사람들은 예수를 떠납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66)
장난하십니까?
여러분들 눈 앞에서 떡과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의사들도 약들도 소용없던 병들을 말씀으로 깨끗이 치유하시고
자연 만물을 다스리시며 그 법칙을 초월하시는 이분이
여러분 앞에 서 계시는데
이분을 못 알아 보시겠습니까?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그저 목수의 아들 예수로만 생각이 되십니까?
그저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줘서 이분을 찾고 따라다녔단 말입니까?
영생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는데
빵을 주지 않아서 떠난다고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신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표적들
그가 진정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지배자이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두 사건 이후에
그 하나님을 단지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인간으로 취급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자
차갑게 돌아서는 소위 “제자”라고 불리는 이 큰 무리들…
정말 충격적으로 대조되는 이 장면은 사실 오늘날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나에게 무엇을 주실까? 무엇을 달라고 구할까?
사업의 번창, 직장 생활에서의 승진과 성공, 사회에서의 인정
건강, 음식, 부, 명예, 물질, 재물, 소유, 소원성취…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종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예수를 “주인님” 혹은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말입니다.
자신들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을 때 기대했던 것들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그들이 예수를 좇는 분명한 이유들이 드러납니다.
‘왜? 어떻게 이런 일들을 제 삶에 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 왜 공급해주시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 당신을 따라다녀야겠습니다. 당신은 별로 저에게 도움이 안됩니다.’
‘저에게 주실 때까지 당신을 좀 괴롭혀야겠습니다.’
불평, 불만, 원망, 분노, 시기, 질투, 낙심, 실망…
삶 가운데 그들이 표출하는 것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를 따라다니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진정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섬기는 자들은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6:68-69)
그들은 환경에 따라 예수께 불평하지 않습니다.
물질과 환경은 이 세상에서 유한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제자”입니다.
자신들이 선택한 분이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종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로 섬깁니다.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왕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그 왕이 주시는 썩지 아니하는 영생의 가치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 영생을 맛보고 그 영생을 누리기 원하는 자들입니다.
영생을 가지고 계신 그분을 절대로 떠날 수 없는 자들입니다.
현재 자신들의 삶 가운데 배고픔과 아픔과 눈물과 핍박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만족하는 자들입니다.
삶 가운데 자신들을 불 같이 태우는 수 많은 시련들 가운데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키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 예수께서 믿음의 결국 영생을 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라고 대답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7-9)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좇고 있습니까?
예수는 여러분의 삶 가운데 주시는 건강, 물질 등
여러분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주고 여러분을 섬기는 자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제자”들처럼
여러분 삶 가운데 건강, 물질, 가족, 친구, 소원, 기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는다 해도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