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For you have been called for this purpose
베드로전서 2:21

여기서 "너희가"는 베드로가 계속해서 거론한 "노예들"을 말합니다.
노예들을 그들이 처한 환경가운데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그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것입니다.
당시 노예들이 악한 주인에게 부당한 고난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받으시어 그들에게 본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본을 보이셨는지 22-2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먼저 그리스도는 아무런 죄가 없으셨습니다.
입술에도 행동에도 죄가 없으셨습니다.
이는 종들이 주인들에게 순종할때에 반드시 따라야하는 본입니다.

그들은 주인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순종해야합니다.
(험담하거나 욕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부당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셨지만, 욕을 받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나무에 달려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당시 종들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예수님은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능력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욕하는 자를 벌하시고 핍박하는 자를 멸하실 수 있는 힘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인정하고 신뢰함으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심으로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바로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베드로의 편지를 받았던 소아시아 성도들은
자유인이나 노예들이나 영적인 관점에서
한때 모두 사단의 노예들이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 계약된 사단의 노예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저주아래 있었습니다.
평생토록 육체가 원하는대로 죄를 짓고
그에 따른 형벌을 당하다가
죽고 나서도 영원히 고난과 피박을 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당하고 가혹한 고난을
죄없이 받으시고 그 고통을 참으심으로
그들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2:25)

이제 그들의 주인은 그들의 영혼을 기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23편은 목자되신 하나님을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노예들이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그들이 처한 곳에서 자신들의 육신의 상전들에게 주게하듯 순종하는 것
때로 악한 주인들로부터
부당한 핍박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참는 것
그것이 맺는 열매는 곧 영혼의 구원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은 분명하게 이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방인(불신자)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2장 9절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에 대하여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처한 자신의 일터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신 특별한 목적과 뜻이 있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
주위의 불신자들을 나의 선행을 통하여 빛가운데로 인도하며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선행은 특별히 상전에게 주께하듯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할때
믿지 않는 사람처럼 회사나 상전을 욕하고 비방하고
혹은 그들처럼 회사를 무너뜨리거나 물리적 불법적 항의를 하는 것은
말씀에서 볼때 선행이 아닙니다.

물론 합법적으로 회사에 불의하고 불합리한 점을 건의하고 수정하는 것은 옳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불가능할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직장 내에서 당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하나님을 기억하며 참고
오히려 말씀에 순종함으로 계속해서 성실하게 순종해야합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순종과 인내로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덕이 선포되며
불신자의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을 알기 원하게 되며
그들의 영혼이 영원한 사단의 노예로 부터 해방되어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이렇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직장 내에서 어떤 것을 얻고자 하십니까?

예 맞습니다.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일하려고 나갑니다.

예 맞습니다. 내게 주신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또다른 계획과 뜻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회사에 나가서 수고하고 때로는 부당한 것들을 참고 견뎌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통하여
여러분이 처한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주께 하듯 성실하게 순종하고 부당한 대우에 대하여
그리스도처럼 참고 견딜때에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하여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악독하고 포악한 사단의 노예로 부터 해방되어
우리는 모두 이제 그 아름답고 달콤한 사랑의 주인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인내로 맺어진 열매들입니다.

내 일터에 아직도 사단의 노예로 가혹한 고난을 당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돈이 전부이며, 타락하고 더러운 것들을 사랑하고, 부패한 것들을 즐거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섬기는 종이 최종적으로 그들에게 줄 것이
사망과 멸망 뿐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선하시고 인자하신 영혼의 목자되신 하나님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바로 우리들의 순종과 인내로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들을 지금 처한 일터에 두신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