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 시민의 품격

본문 : 로마서 13장 1-7절

설교자 : 이병권

오늘 선거 결과로 우리나라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말도 많고 문제도 많았던 선거였지만 어떤 결과가 있든지 관계없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확신하고 우리 확신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민주 시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늘에 속한 하늘 시민으로서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하늘 시민의 품격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 가운데 하늘 시민으로서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이 땅에서 우리를 통해 하늘 시민의 품격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쁜 뜻이 아니라 좋은 뜻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좀 다른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늘 시민의 품격을 나타내는 걸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명령을 통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명령에 어떻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하늘 시민의 품격이 달라질 것입니다. 하늘 시민에게 주어진 명령,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복종하라” 입니다.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복종하라는 명령은 군사적인 용어인데 자기가 낮은 자리에 있음을 알고 어떤 사람이나 제도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권위를 인정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가 복종합니까? 각 사람이 복종해야 합니다. 여기 말씀에서 사람으로 번역된 단어는 보통 영혼이나 생명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종종 사용되는 표현인데 전인격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명령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이 명령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이 누구에게 복종합니까? 위에 있는 권세들입니다. 권세라는 단어는 구체적으로 몇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힘을 의미하기도 하고 힘이 적용되는 영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힘을 가진 존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에 있는 권세들은 통치 권력을 가진 사람들, 그러한 힘을 가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디모데전서에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딤전2:2)이라고 말씀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종이라는 말자체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복종하라는 명령은 군대에서나 통하는 명령이라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명령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우리가 복종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13:1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권세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모든 권세 위에 높으신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다스리고 계신 것입니다. 권세들이 힘으로 그 자리에 올랐든지, 혈통으로 그 자리에 올랐든지, 시민의 선택으로 그 자리에 올랐든지 예외 없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19:11)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권세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권세를 생각할 때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권세도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권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복종할 이유로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첫째 명령과 그 이유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13: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하나님이 권세를 정하셨으니 그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를 인정하지 않고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심판입니다. 권세를 대항하는 것은 심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명령은 모든 일에 대해서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복종하라는 명령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유입니다. 왜 복종해야 합니까?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권세들에게 복종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권세에게 불복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같은 이유로 권세에게 복종하기도 하고 불복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시민의 품격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을 따르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권세에게 복종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권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권세에게 복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권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종하는 것도 복종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하늘 시민의 품격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말씀으로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악용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소수의 백인들은 이 말씀을 악용하여 흑인들을 억압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군부통치시절 이 말씀이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자격 없는 교회 인도자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악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일에 얼마든지 불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합법적인 방법으로 저항할 수 있습니다. 이 명령의 원리는 분명합니다. 권세에 대한 복종은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명하거나,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금한다면 우리는 복종할 수 없습니다.

바로가 히브리 산파들에게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고 모든 신하에게 엎드려 절하라고 했을 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기도하는 것을 금했을 때 다니엘은 그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공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와 권위는 하나님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권위가 최우선 순위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 시민에게 주어진 명령, 둘째는 “행하라” 입니다.
13:3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13: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3절과 4절을 보면 서로 짝이 되어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12장에서도 짝으로 봤었던 표현입니다. 바로 선과 악입니다(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기서도 선과 악이 짝을 지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에 주어진 명령이 있습니다. 선에 대해서는 행하라악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라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권세들을 정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권세를 정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 악을 두려워하도록 하기 위해서, 선을 장려하고 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권세들을 세우셨고 하나님이 권세들을 통해 이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3절과 4절에 그에 대한 권세의 다양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3절에서 권세는 다스리는 자로 4절에서 권세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그리고 선을 베푸는 자, 보응하는 자로 표현됩니다. 정리하면, 권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서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선을 베푸는 자로서 선을 장려하고 보응하는 자로서 악을 억제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다스리기 위해 권세를 세우시고 사역자로 사용하십니다.

만약 누군가가 선을 행한다면 권세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악을 행한다면 권세가 두려울 것입니다. 범죄자가 경찰을 보면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권세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서 칼을 가진 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의 두려움이 되고 심판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권세들을 세우셔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십니다. 만약 권세가 없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죄의 본성대로 행하게 될 것이고 사회는 엉망이 되어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악에 대한 복수를 금하셨을 때 악인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권세들을 통해 악인들에게 진노하심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바울 당시를 생각해보면 로마는 하나님 뜻에 맞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자신을 숭배하게 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권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서 그 역할을 했습니다. 로마의 권세가 이룩한 평화로 인해 제국은 질서가 유지되었고 제국의 통치가 전 세계에 영향을 주었기에 선교사들이 비교적 안전하게 다른 나라를 오갈 수 있었습니다. 로마가 마련한 도로와 전쟁을 위해 발달한 항해술 덕분에 복음이 다른 나라에 쉽게 전파될 수 있었고 로마가 공용어로 사용했던 헬라어로 인해 복음이 더 쉽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권세들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이런 일들을 했겠지만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하늘에 속한 하늘 시민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합니다. 그리고 선에 반하는 악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하늘 시민의 품격은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칼을 가진 권세들을 두려워서 선을 행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이 땅에 속한 시민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늘 시민인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진노가 아니라 양심을 따라 행합니다.
13:5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우리는 단순히 진노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복종의 이유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에 양심을 따라 행합니다. 이것이 하늘 시민의 품격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로 하여금 복종하게 하고 다르게 살도록 합니다. 내 양심이 하나님을 의식하기에, 내 양심이 하나님에 대해서 반응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게 됩니다.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할 때,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할 때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늘 시민에게 주어진 명령, 셋째는 “주라” 입니다.
13: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마지막으로 살펴볼 명령은 7절에 나오는 “주라”는 명령입니다. “모든 자에게” 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모든 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서 바로 앞에 나오는 대상에게 한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4절에서는 권세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역자로 말씀했는데 이번에는 권세에 대해서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권세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서 맡겨진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수고에 대해서 우리의 할 일은 합당한 것으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주라는 명령은 단순히 주는 것이 아니라 빚진 것을 갚는다는 의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을 때, 갚지 말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권세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 수고에 대해서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주어야 합니다.

줄 것을 네 가지로 말씀하는데, 조세와 관세, 그리고 두려움과 존경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우리의 태도에 대한 것으로 둘씩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경은 자연스럽게 번역하기 위해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하며 존경하라고 번역했는데, 주라는 하나의 명령에 네 가지가 묶여 있습니다. 직역을 하면 ‘주라. 조세 받을 자에게 조세를, 관세 받을 자에게 관세를, 두려움을 받을 자에게 두려움을, 존경 받을 자에게 존경을’ 이라는 말입니다. 네 가지 빚지고 있는 것들을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갚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로 잡아줍니다. 사람들은 세금에 대해서 내 돈을 세금으로 빼앗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하늘 시민을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 나오는 조세는 직접세로 관세는 간접세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러한 모든 세금은 내 것이 아닙니다. 권세들의 수고에 대해서 내가 빚지고 있는데 세금은 그것을 갚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늘 시민의 품격은 한 차원 더 높은 것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세금을 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성실한 납세자가 될 뿐만 아니라 마땅한 두려움과 존경으로 합당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 시민의 품격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권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어떠합니까? 인터넷을 보면 권세에 대한 조롱과 욕들이 넘쳐납니다. 권세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는 비단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와 권위에 대한 무시와 불순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권세에 대해서 무조건 옹호하고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건전하고 합당한 태도로 평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 시민으로서 품격을 지키는 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됩니다. 주어야 하는 대상에 따라서 한없이 아까워지기도 하고 더 붙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 나에게 있다고 해서 다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기에 마땅히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권세에게 줄 것을 주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려야 합니다. 물질을 드릴 뿐만 아니라 합당한 태도를 함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 시민인 우리가 세상에게 보여주어야 할 품격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른 견해와 도전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명령하는 것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적용할 수 없고 우리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은 특별한 상황을 무시하는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 본문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것이고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1절의 명령과 이유는 명확하고 확실합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습니다.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예외가 있을까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그리고 인류 역사가운데 하나님 손에서 벗어난 권세가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요? 없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모든 권세들,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과정으로 권세의 자리에 있든지 상관없이 그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고 하나님이 세우셨고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 사실은 바울 당시는 물론,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권세에 복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권세에 불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권세가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것을 알고 그 뜻에 따라 선을 행하고 악을 두려워합니다. 양심을 따라 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권세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알고 합당한 것을 돌려줍니다. 합당한 물질을 주고 합당한 태도를 줍니다. 그것이 이 땅을 살면서 하늘 시민으로서 품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비호감들의 경쟁으로 불릴 만큼 역대 최악의 후보들의 선거로 평가됩니다. 누가 더 좋을까보다 이 사람이 되면 안 되니까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뽑는 선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섭리 가운데 권세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정하신 권세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을 따라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복종하며 선을 행하며 악을 두려워하며 줄 것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권세가 세워지든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 시민이기에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권세는 이 땅에 없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나라와 완벽한 권세를 기다립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우실 그 나라와 그 통치를 기다립니다. 이미 그 나라의 시민이 된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그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기다려지지 않으십니까? 그 나라를 온전히 경험하게 될 그 날이 기대가 되지 않으십니까? 그러하다면 하늘 시민으로서 그 나라를 기다리는 이 땅에서의 삶을 하늘 시민의 품격을 드러내는 시간으로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 하늘 시민의 품격을 체험하는 시간으로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볼 때도 있을 것이고 힘들 때도 있겠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우리에게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