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주께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본문: 고린도전서 1장 4-9절

설교자: 조정의

성도가 리더에 따라 편을 가르고, 부와 지위에 따라 차별하고, 뛰어난 언변과 지식을 자랑하지만, 서로 사랑하기보다는, 판단하고 정죄하고, 문제가 생기면 평화롭게 해결하지 못해 고소까지 이르고, 노골적으로 사도를 폄훼하면서 거짓 교훈을 퍼뜨리는 사람과 범죄한 성도가 있어도 교회가 전혀 이를 성경적으로 권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런 교회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당신이 이런 교회를 살리기 위해 일꾼으로 세워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엉망진창인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급하게 처방을 내린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는가?

본문은 우리가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바울의 반응을 담고 있다. 인사가 끝나고 편지는 10절부터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다(책망). 하지만 바울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어떤 사람은 고린도 교회의 실정과 바울의 감사가 너무 이질적이라 감사가 아닌 비꼬는 말로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한 주석가가 바르게 파악한 것처럼 바울의 감사는 진실하며, 교회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비전/소망을 제시한다(BST, 31p). 아무리 엉망이어도, 교회를 불러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게 하시고 지금까지 은혜를 풍성하게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한다. 바울의 감사와 신뢰의 내용을 살펴보고, 우리가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항상 감사해야 할 것과 신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워보자. 교회가 견고하게 함께 지어져 가려면 반드시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1. 감사: 지금까지 견고하게 하신 것에 관하여(4-7절)

바울의 감사 대상은 하나님이다(4절).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게 은혜시고(4절), 모든 일풍족하게 하시며(5절), 견고하게 하신다(6절, 수동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를 주시고(4절), 그 안에서 모든 일에 풍족하게 하시며(5절), 그리스도의 증거로 그들을 견고하게 하신다(6절). 결과적으로 교회는 아무런 은사의 부족함 없이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7절).

바울이 교회에 산적한 문제를 다룰 때, 교회가 저지른 일이나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 않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했다는 것에 주목하라.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본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라고 정의되는 은혜를 기억한다. 교회가 지금까지 받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주신 선물로 교회에게 과분하다. 당연한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무엇으로도 되갚을 수 없다.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것은 은혜에 마땅한 반응이지, 은혜를 사는 수단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어졌다. 교회의 공로와 전혀 무관하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래도 먼저 감사는 해야지’라고 우선순위를 급히 세운 것이 아니다. 그는 항상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했다(4절).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고 많은 눈물이 났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고후 2:4). 바울이 감사한 하나님 은혜는 무엇인가?

첫째, 바울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를 모든 일에 풍족하게 하신 것에 감사했다(겉으로 드러난 은혜):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5절).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모든 일”에 있어서 풍족하게 나타났지만, 특별히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교회 안에 언변 곧 말하는 은사가(방언, 예언, 지혜와 지식의 말씀) 뛰어난 사람이 많았고, 또 하나님께 속한 지식을 받거나 깨우친 자들이 많았다. 이 외에도 고린도 교회는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다(7절): 병 고침, 능력 행함, 영들 분별함, 방언 통역,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등(고전 12장).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뛰어난 은사를 많이 받았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받지 않은 것처럼, 원래부터 자기 것인 양 자랑했다는 데 있다(고전 4:7).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나님이 풍족하게 주셨다는 것은 분명 감사 제목이다. 다만, 그들이 그 풍족한 은사로 그리스도를 높이기보다는 자기를 내세우고 서로를 사랑하기보다는 자기 유익을 위하여 잘못 사용함으로 은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다룰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 자체를 부정하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싸잡아 비판하는 실수를 범한다(‘은사가 많으면 뭐 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문제를 바르게 진단하는 것도 실패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도 내팽개친다. 문제에 질식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은혜를 주셨는지 잊어버린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주신 거잖아’라고 불평한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태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알되 감사하지도 않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거나 틀어진 사람의 특징이다(롬 1:21). 좋은 일 생기면 감사하고, 나쁜 일 생기면 불평하는 건 누구나 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주 안에서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며 항상 감사할 수 있다.

바울이 두 번째로 감사한 내용을 보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단지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 부어주신 여러 은혜가 나타난 것에 감사한 것이 아니다. 그 풍족한 은혜가 6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증거가그들 중에 견고하게 된 것을 입증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거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증거는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 곧 그리스도가 누구시고 무엇을 하셨는지에 관한 증거다. 한 마디로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이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효력을 발휘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풍족한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복음을 통해 견고해진 그리스도와 그들의 관계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보았고, 그래서 산적한 현실의 문제를 보면서도 진심으로 하나님께, 그것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항상 감사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형성된 사람의 차이다. 그들은 문제나 문제 앞에 무력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과 함께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바라본다. 

이스라엘에게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라고 언약의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실 때 전무후무한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럼에도 현실의 문제를 만났을 때,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위기부터 파나 양파같이 지극히 작은 문제까지,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하고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문제만 바라봤다(출 17:7,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지금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당장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했다. 모세, 여호수아, 갈렙과 같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던 자들은 똑같은 환경에서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들과 맺은 언약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풍성하게 부어주신 은혜에 감사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민 14:9).

바울이 감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이 비천에 처하고 배고프고 궁핍해져도 기뻐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능력과 은혜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빌 4:12-13). 교회를 향한 바울의 감사도 자연스럽게 신뢰로 연결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와 견고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풍족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지금 비록 엉망진창인 상황이지만, 반드시 끝까지 그들을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바울은 굳게 믿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주신 은혜만 해도 감사해야지’라고 다짐해서가 아니다. ‘끝까지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기 때문이다. 떡과 물처럼 보이는 것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다(마 4:4).

2. 신뢰: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에 관하여(8-9절)

감사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신뢰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너희를…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8절), 하나님은 미쁘시도다(9절, 구약의 용어, 신 7:9,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하나님은 교회를 부르셨다(9절, “너희를 불러”). 믿는 우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셨다(9절). ‘사귐’, ‘동행’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더불어 교제하다’의 참 의미는 언약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일치됨,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곧 우리의 죽음과 부활이 되고, 그분의 의가 곧 우리의 의가 되고, 그분의 기업이 곧 우리의 기업이 되며, 그분의 아버지께서 곧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분의 왕권에 우리가 함께 통치하는 것으로 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 놀라운 특권과 은혜에 감격하여 예수 그리스도우리 주로 영접했다(9절).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나라를 온전히 실현하실 때까지 우리를 끝까지 지키실 것이다(8절).

한 가지 분명히 하자. 바울이 신뢰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번영하고 평안하게 해주실 것이라는 게 아니었다.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라고 하셨고(요 16:33), 베드로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다(벧전 4:12). 우리의 죄나 세상의 죄 때문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마귀의 세력과 세상의 부패한 풍조 아래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 모든 것을 교회가 통과하게 될 것이라는 데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을 신뢰했다: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3-24).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바울은 고린도 교회 문제를 다룰만한 자기 능력과 권위를 의지하지 않았다(지혜와 설득력, 많은 은사, 사도권). 그동안 쌓은 정이나 맺은 관계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신뢰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불러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들을 견고하게 지키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에 교회를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사랑을 담아 문제를 다루려 했던 것이다.

작은 교회 안에서 참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성도 개개인의 삶 속에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자녀의 구원, 진로, 결혼 등의 문제로 믿음이 요동치는 성도가 있고, 건강, 경제, 관계의 문제 등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신뢰를 잃어버린 성도도 있다. 너무 오랜 세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계속 문제 속에 머물러 있는 성도는 ‘과연 참 성도가 맞나?’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생긴다. 큰 눌림과 걱정으로 기도하지만, 그냥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사와 신뢰의 회복이다.

마지막으로 감사와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을 제안하기 원한다. 신박한 비법은 아니지만, 매일 규칙적인 식습관이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것처럼, 매일 규칙적인 영적 훈련, 경건의 훈련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된 복을 가져온다(딤전 4:8).

먼저,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훈련을 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1-2). 당신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자체에 감사하라. 그리고나서 그분이 베푸신 모든 은택을 되새기며 감사하라(죄 사함, 병 고침, 구원, 좋은 것, 새롭게 하시는 역사, 심판). 감사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알고, 우리가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지 알 때, 더 깊어진다. 반대로 감사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끌어내리거나, 나를 끌어올린 것의 결과다.  하나님 주신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증거다. 바울처럼 자신, 타인, 혹은 교회를 생각할 때, 항상 감사의 자리에서 시작하라.

둘째, 하나님을 의뢰하되 잘못된 것을 기대하지 말라. 가령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주실 것이란 기대. 그것은 결코 나에게 선한 것이 아니다. 주가 오셔서 온전한 나라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하나님은 당신을 거룩하게 빚어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하게 만들어주실 것이다. 당신의 믿음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되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불로 연단하여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실 것이다(벧전 1:7). 신실하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겠다고 고백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