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유산, 바울이 남긴 고백

본문: 디모데후서 4장 5~8절

설교자: 이병권

 

얼마 전에 삼성 이건희 회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이 20조가 넘는다고 합니다. 20억도 아니고 20조라고 하니까 딴 세상 이야기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재산을 남기고 갔으니 그의 유산이 어떻게 될지 상속세는 얼마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음을 이길 수 없고 다 두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돈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돈보다 더 값지고 중요한 바울이 남긴 유산을 나누어 드리기를 원합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나를 풍족하게 하는 유산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나의 영혼을 풍족하게 인생을 복되게 하는 유산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산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이 하나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소중한 유산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이 유산을 마음에 담고 소중히 간직할 때 이 유산은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이기에 우리 인생을 바꾸고 우리 인생을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게 할 것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바울 그의 인생을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의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이 땅의 기준으로 볼 때 바울은 충분히 좌절하고 낙심에 빠질 수 있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괴롭혔고 공격했습니다. 배신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모욕적인 일을 당하기도 했고 위험에 빠졌고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채찍에 맞고 돌에 맞고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럴 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때문에 주님께 충성했기 때문에 당한 일입니다.

지금 감옥에 있는 바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인생에서 만난 고난들, 그의 몸 곳곳에 흉터와 상한 곳, 고생의 흔적들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초라한 모습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고 지금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이 이러한 모습입니다.

그런 바울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평가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인생의 마지막이 이런 건가? 그동안 수고한 결과가 이 좁고 어두운 지하 감옥이라니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처량하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르게 살 걸!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바울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고백은 다릅니다. 그래서 그 고백이 우리에게 소중한 유산이 됩니다.

그럼 바울이 남긴 고백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바울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바울의 유산을 가진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 이렇게 세 부분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현재에 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딤후 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바울은 지금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두 가지 그림 언어를 사용합니다.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자신의 현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비유는 제사에 대한 비유입니다. “전제”라고 하는데, 전제는 제사를 마무리하며 드리는 마지막 제사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태워지는 제물에 포도주를 붓는데 포도주를 부으면 포도주가 증기로 증발하게 되고 그 증기는 하나님께 제물이 바쳐지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제물로 생각합니다. 죽을 날이 다가왔기에 제사는 “벌써” 시작되었고 자신의 인생은 그 제물 위에 부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도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자신의 인생을 희생 제물로, 전제로 드리는 것이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음을 알고 그것으로 만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비유는 여행에 대한 비유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나의 떠날 시각”이라고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이 말은 ‘묶인 것을 느슨하게 푼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묶어둔 짐승을 풀 때는 자유를 준다는 의미가 되고 묶어둔 천막을 풀 때는 이사를 간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육지에 묶어둔 배를 풀 때는 떠난다는 의미가 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은 육신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고 낡은 옛집에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을 떠나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마음에 불평과 낙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릅니다. 죽음을 앞둔 바울의 고백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차분하게 이 땅을 떠날 것을 준비합니다.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바울이 이 땅에서의 떠남을 준비하는 방법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현재에 대한 바울의 고백을 통해 얻기 원하는 유산은 ‘인정’입니다. 현재를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실망하고 누군가를 탓하며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뜻과 다르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더라도 주님이 허락하신 오늘의 어려움, 오늘의 문제,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주님을 위해 수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이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는 주님 안에서 감사함으로 오늘을 받아들일 수 있고 주님 안에서 현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실하신 주님을 항상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변할 수 있지만 주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주님께 인생을 맡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과거에 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현재의 상황, 죽음을 앞두고 있는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봅니다. 죽음을 앞두면 자연스럽게 인생의 지난날을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과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바울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 세 가지 그림 언어를 사용합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첫째 비유는 군사입니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많은 수고가 필요한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바울은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아낌없이 자신의 인생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렇게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둘째 비유는 선수입니다. 바울은 선수로서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고백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정말 이 고백처럼 살았습니다. 자신이 달려갈 길, 주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주님께 택함 받은 선수로서 최선을 다해 달렸고 완주했습니다. 물론, 지금 결승점을 통과한 것은 아니지만 그 마지막이 분명했기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 이루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주님이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과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셋째 비유는 목자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진리의 말씀을 계속 신뢰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진리의 말씀을 계속 수호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견해이든 문제는 없지만, 바울이 계속해서 디모데에게 강조했던 것이 진리를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후자의 견해가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진리를 보물처럼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진리를 자신이 받은 그대로 순수하게 지킨 것입니다.

바울은 군사로서 선한 싸움을 했고 선수로서 경주를 마쳤고 목자로서 진리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원문의 순서에 따라 강조해서 말하면 이러합니다. ‘선한 싸움을 나는 싸웠고, 달려갈 길을 나는 마쳤고, 믿음을 나는 지켰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과거에 대한 바울의 고백을 통해 얻기 원하는 유산은 ‘매듭’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며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과거를 생각하면 분명히 나를 붙잡는 과거의 일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지난날의 잘못이나 실수, 잊고 싶은 일들,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나에게 버리고 싶은 무거운 짐과 같은 기억들,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죄들, 나의 마음을 낙심케 만드는 그런 과거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는 부족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바울과 같은 고백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에게는 그런 과거가 없었을까요? 바울은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바울에게도 그런 지난날의 잘못과 실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과거에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회와 자책과 죄책감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털어냅니다. 과거의 상처와 과거의 잘못, 그 모든 실수에 대해서 매듭을 지은 것입니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나에게 은혜와 자비를 주시는 주님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과거의 잘못에서 돌이키고, 새로운 마음을 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 선한 싸움에서 져서 패배했다면 매듭짓고 다시 일어나 주님을 의지함으로 힘써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듭지을 수 있는 은혜, 그 은혜를 허락하신 주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 열심히 주님을 위해 수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의 잘못보다 더 풍성한 주님의 은혜로 인해 우리의 과거는 주님의 향한 수고와 헌신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니 오늘의 넘치는 은혜를 기억하시고 과거의 일을 매듭지으시기 바랍니다.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돌이켜야 할 잘못이 있다면, 해결할 문제가 있다면 미루지 마십시오. 그것이 과거를 털어내는 매듭입니다. 주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놓치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미래에 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바울은 자신의 인생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마지막에 이른 곳이 로마의 지하 감옥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인생은, 그 인생의 여정은 이곳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감옥은 잠시 동안, 아주 잠깐 스쳐가는 과정입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정거장일 뿐입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여행이 끝나면 영원한 하늘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나타나심, 바로 그날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바울의 고백이 그러합니다. 이제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미래를 내다봅니다. 그날이 예비 되었고 그날에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약속이 성취될 것입니다. 소망이 이루어지는 그날입니다. 모든 수고에 대해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 그 모든 약속이 바로 현실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연약함과 죄를 벗어버리고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믿었던 것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하며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과 심판에서 구원받은 진짜 인생, 인생의 진짜 행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날에 자신이 받게 될 상을 “면류관”이라 말합니다. 면류관은 당시에 승리한 운동선수가 받았던 월계관을 비유한 것입니다. 바울이 받을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입니다. “”라는 것은 면류관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바울이 받게 될 보상이 영원한 의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정에서 의로우신 재판장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받을 때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평생에 걸쳐 죄와 싸우며 그 의로움을 이루어 갑니다. 그리고 그날에 그 나라에서 완전한 의를 얻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 땅에서 바울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곧 처형을 당할 것입니다. 그는 죄인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고 이 땅의 기준으로 봤을 때 비참한 최후를 맞는 사람입니다. 실패한 인생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어떠합니다.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인생을 살았고 주님 안에서 성공한 인생입니다. 하늘의 법정에서 의로우신 재판장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을 것입니다.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그의 인생을 역전 시키는 놀라운 반전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성공이라 생각했던 인생에서 영원한 실패로 떨어지는 반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미래에 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이 유산을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합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 그날을 바라며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들, 그 모든 자들이 바울과 같은 미래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속한 진정한 유산을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날을 고대하며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미래에 대한 바울의 고백을 통해 얻기 원하는 유산은 ‘준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에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날을 준비합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하고 가치를 결정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지만 우리는 하늘의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바울은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날을 준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날을 준비하기 위해 명령을 다시 생각합니다.

딤후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바울은 3절과 4절에서 세상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 바울 자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5절 그 사이에 디모데가 있습니다. 세상과 바울 사이에 디모데가 있고 그에게 주어진 명령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 믿음으로 승리한 바울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다음으로 디모데가 세상에 대해서 싸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그 사이에 있습니다.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명령이 지금 우리를 향해 명령합니다. “그러나 너는” 바울이 디모데를 도전했던 것처럼 다시 우리를 도전합니다.

‘세상이 어떠하든지, 사람들이 어떠하든지, 그러나 너는 너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여라.’

‘나의 인생이 너의 인생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유산이 되길 바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충성함으로 내가 달려간 길을 달려가거라!’

해마다 연말이 되면 여러 시상식이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빛낸 사람들, 그 수고를 격려하며 상을 주고 기념합니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는 영광스러운 일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비록, 우리가 TV에 나오는 연말 시상식에는 설 수 없지만 우리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런 시상식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썩지 않는 면류관,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되는 영광스러운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날에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모든 수고에 대해서 주님께서 칭찬하시며 보상하실 것입니다. 그날이 기다려지지 않으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 그날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날에 주님께 더 큰 기쁨과 영광을 드리기 위해 수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 죽음을 앞둔 바울의 이 고백이 여러분의 유산이 되게 하십시오. 현재를 인정하고 과거를 매듭짓고 미래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날에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무엇보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왜 그날을 기다립니까? 왜냐하면 그날에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