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
본문 : 누가복음 2장 8~20절
설교자 : 이병권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오늘 저는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서,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다섯 장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탄생, 둘째: 주변 반응, 셋째: 할례와 이름, 넷째: 예언적 찬양, 다섯째: 성장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둘째에 해당하는 “주변 반응”에 대한 장면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과 그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좋은 소식과 반응입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탄생 소식, 그리고 하늘로부터 땅으로 이어지는 반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반응은 하늘에서 천사로부터 시작되어, 땅으로 목자들에게 그리고 목자들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서 목자들은 하늘의 반응과 땅의 반응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럼 먼저 좋은 소식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천사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선포합니다.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나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1장에 있었던 사가랴와 마리아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천사가 등장하고, 천사를 본 사람은 무서워합니다. 그러면 천사는 무서워하지 말라, 말하고 메시지와 함께 표적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이 1장과 조금 차이 나는 것이 있다면,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메시지를 전하는 천사 역시 이름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1장에 등장했었던 가브리엘 천사인거 같으면서도,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닐 수도 있고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이 누구지?” 라는 질문보다 이들 가운데 벌어진 사건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이제 그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목자들은 밤중에 베들레헴 어느 들에서 자기의 양 떼를 돌보며 있었습니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캄캄한 밤, 모두가 잠들어 있는 고요한 밤, 목자들은 그 밤에 양을 보호하기 위해 잠을 쫓으며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천사가 그들 가까이, 그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는 놀라운 빛이, 하나님의 영광이 목자들 주위를 비춥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캄캄한 밤에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밤을 밝힐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조명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에 대해서 아주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지금처럼 길에 가로등이나 전등이 있던 때가 아닙니다. 목자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밝은 빛을 봅니다. 그 눈부신 빛이 목자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무서워합니다. 아주 많이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천사가 나타나거나, 초자연적인 일을 만나게 되면 두려워합니다. 이럴 때 천사가 꼭 하는 말이 있죠? “무서워하지 말라” 10절입니다.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는 자신과 목자들 사이에 장애물이 되는 두려움을 제거하고, 자신이 전해야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합니다. 천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로 표현됩니다. 첫째, 이 메시지는 좋은 소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복음입니다. 그들을 벌하기 위한 심판의 소식이 아니라 그들의 복을 위한 소식입니다. 둘째, 이 메시지는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될 놀랍고 커다란 기쁨을 전하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은 커다란 기쁨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소식들은 많이 있습니다. 소소하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여러 종류의 소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것입니다. 지금 천사가 말하는 소식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전하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어떤 소식입니까? 11절입니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구주, 다시 말해 구원자가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구원자가 태어나셨습니다. 그럼 이것이 왜 기쁨의 소식이 될까요? 이 소식이 기쁨이 되는 이유를 세 가지 질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언제?” 라는 질문입니다. 이 소식이 기쁨이 되는 이유는 “오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주가 나셨습니다!”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기다림은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디서?” 라는 질문입니다. 이 소식이 기쁨이 되는 이유는 “다윗의 동네에”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냥 어쩌다가, 우연히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누구?” 라는 질문입니다. 이 소식이 기쁨이 되는 이유는 “너희를 위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일차적으로 목자들입니다. 천사가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이 소식이 개인에게 적용되는 측면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온 백성”을 위한 소식일 뿐만 아니라 각 개인을 위한 소식입니다. 그리고 목자들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적용되는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바로 나를 위한 소식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왜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좋은 소식입니까? 하나, 더 이상의 기다림이 필요 없는 이미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둘,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셋, 우리를 위해, 바로 나를 위해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입니다. 천사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예수님께 두 가지 호칭을 덧붙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다시 말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가 되십니다. 절대 주권을 가지신 주님이십니다.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은 로마 제국 배경 속에서 제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강력한 통치자인 로마 황제를 역사의 주인공이라 생각했고, 로마 황제를 구주라 부르며, 구원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천사는 진정한 구주가 누구인지 분명히 선포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태어난 아기 예수, 이 분이 구주이십니다. 이 아기가 그리스도이시며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천사는 이어서 목자들에게 아기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12절입니다.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사는 자신이 전한 메시지의 표적을 줍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강보에 싸여 있는 것은 일반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구유는 짐승의 여물통입니다. 가축의 밥그릇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구주이자 메시아인 아기 예수님은 가축을 위한 장소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침대는 구유입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카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 아닙니다. 뭔가 따뜻하고 낭만적인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위대하심과 너무도 대조되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그분이 하실 일과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이제 13절부터는 좋은 소식에 대한 반응이 이어집니다. 먼저 그 반응은 하늘로부터 시작됩니다. 13절과 14절입니다.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사가 목자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하고 나자, 갑자기 그 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천사들이 메시지를 전한 천사와 함께 찬송합니다. 누가는 천사들의 찬양을 간략하게 들려주는데, 표현에서 둘씩 서로 짝이 됩니다. 14절에 보시면, 지극히 높은 곳과 땅이 짝이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짝이 됩니다. 그리고 영광과 평화가 서로 짝이 됩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합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사람들이 평화를 누립니다. 여기서 “평화”라는 말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라는 말은 구약에서 “샬롬”에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많은 경우에 ‘평안’으로 번역이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평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화목한 관계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평화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은 이미 마리아의 찬양에서 언급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그 의미를 같이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겁니다.

하늘로부터 시작된 반응은 이제 땅으로 이어집니다. 먼저 그 소식을 들은 목자들입니다. 15절 보겠습니다.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임무를 마친 수많은 천사들은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다시 어둠 속에 남겨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은 그 어떤 때보다 환하게 밝아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움직입니다. 자신들이 들은 것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 하며 가서 보자고 말합니다. “자,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얼른 베들레헴으로 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이 놀라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직접 보자!”

목자들은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알리신 것을 단순하게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아기를 찾으려고 재빠르게 움직입니다. 가서 아기를 찾습니다.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직접 보기 위해서 갑니다. 마침내 목자들은 아기를 찾았고, 부모와 함께 있는 아기를 만납니다. 천사가 말한 그대로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봅니다.

특별히 누가는 이 목자들의 반응에 대해서 동사를 연이어 말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생동감 있게 전합니다. 목자들은 서로 말했고, 빨리 가서, 아기를 찾았고, 그 아기를 보고, 그리고 자기들이 이 아기를 찾아오게 된 이유를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목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들은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들은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들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 들은 말씀에 반응했습니다.

이 반응은 이제 목자들이 전한 소식을 들은 사람에게까지 이어집니다. 18절입니다.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목자들이 전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듣는 자”라고 되어 있는데, 원래 단어는 복수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목자들이 그 소식을 전할 때, 마리아와 요셉 외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자들의 증거를 듣는 사람들은 놀람으로 반응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놀랐다는 것은 단순히 한 번 놀라움을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9절에 나오는 마리아의 반응과 대조를 이룹니다. 19절입니다.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우리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래 19절은 ‘그러나’로 시작됩니다. 목자들이 전한 소식을 듣고 놀랐던 사람들과는 달리,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합니다. 전해들은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지속적으로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1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말씀을 듣고 바르게 반응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목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찬송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합니다. 목자들은 천사를 통해 들은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목자들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흘러 넘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돌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서 천사로부터 시작된 찬송은 이제 땅에서 목자들에게까지 연결되어 울려 퍼집니다. 그 아름다운 찬송이 하늘로부터 이 땅까지 메아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러 궁금한 것들이 생깁니다. 목자들은 지키던 양들을 어떻게 했을까? 천사들이 함께 부른 찬송은 어떤 노래일까? 천사들은 우리교회 임마누엘 찬양대처럼 화음을 넣어서 불렀을까? 혹은,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때 누가 아기를 받았을까? 하지만 성경은 이와 같은 질문에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는 이런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이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땅에 구주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동네에,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주,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누가복음의 기록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유에 뉘어져있는 아기입니다. 천사가 말합니다. 11절을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시작!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구유에 뉘어져있는 그 아기가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 메시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이 정하신 완벽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 모든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입니다.

찰스 스윈돌은 그의 책에서 그가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하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위대한 교육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술이었다면 하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위대한 과학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하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위대한 경제학자를 보내셨을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오락이었다면 하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위대한 연예인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죄 사함과 용서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주를 보내셨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주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구주가 필요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구주, 우리를 사망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해줄 수 있는 구주, 우리는 구주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구주 없이는 안 됩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구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평화가 없는 자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소망이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 기쁨이 없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생명이 없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주가 오셨다는 이 좋은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빨리 달려가서 그 이루어진 일을 확인하고, 자신이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송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목자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좋은 소식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뭐 당연히 천사가 말한 대로 됐겠지”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 그냥 머물겠습니까? “에이, 귀찮게 뭐 하러 힘들게 그래!” “난 그런 일에 별로 관심이 없거든!” 이렇게 말하시겠습니다.

이 목자들에게는 자기 생애에 다시 있을 수 없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는 그 역사적인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에 우리나라가 월드컵 결승에 진출했고, 여러분이 결승전을 제일 좋은 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경기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정말 값비싼 표가 생겼습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표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 귀찮으니까, 그냥 집에서 TV로 볼까요? 우리는 멋진 풍경을 보고 색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차를 타고 가야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유명한 식당을 찾기도 하고, 놀이기구나 특별한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에 반응함으로, 그 말씀을 경험하는 일에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다양하게 반응합니다. 어떤 사람은 듣지 않습니다.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딴 생각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듣고 놀라기는 하지만 그러나 좀 더 깊은 생각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계속해서 들으면서도 그냥 그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듣고 때때로 놀라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취해야 할 반응은 단순히 놀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들은 모든 말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간직하고 다시 되새기며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여러분이 이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분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이 단지 일시적인 감정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우리가 들은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반응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들어야할 말씀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씀을 따라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말하고 말씀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말씀이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해서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는지 생각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그 소식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과 그에 따른 우리의 반응”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는 것, 이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우리 구주의 나심을 알고,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은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응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유익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자입니까?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이 좋은 소식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아기가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참된 평화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입니다.

자! 이제 우리가 이 좋은 소식을 들은 자로서 합당히 반응할 차례입니다. 목자들이 말씀을 듣고 길을 떠났던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길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들은 이 기쁨의 소식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소식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누며, 말씀을 신뢰함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그러한 동기가 부족하다면, 그러한 열정이 식었다면, 다시 그분께로 돌아가십시오. 십자가를 기억하며, 그분을 묵상하십시오. 지금 내 상태가 어떠한지를 그분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며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힘을 얻어 주님을 위해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